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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평윤씨 母子 미라
ⓒ 한성희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당하리에서 발견됐던 430년 전 모자 미라가 긴 잠에서 깨어나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7일부터 고려대학교 박물관 2층 전시실에서 22일까지 ‘파평 윤씨 모자 미라 및 특별유물전’이 열려 미라와 유물들을 전시한다.

발굴된 수의와 얼레빗, 바늘꽂이 등 부장품과 누비장옷, 화려한 금박의 겹 단저고리와 겹 단치마 등 사대부 집안 부인의 복식을 복원해 전시하고 있다.

1566년 매장된 미라는 수의 홑바지 허리끈에 ‘병인윤시월’이라는 한글묵서가 적혀 있어 정확한 사망연대를 알 수 있고 부장된 화려한 색상의 복식이 쏟아져 나와 언론과 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은 2002년 9월 파평 윤씨 종중에서 미라를 기증받아 고대 의과대학에 정밀조사를 의뢰했다. 조사 결과, 고대 의과 대학은 '출산 과정에서 자궁 파열로 인한 과다 출혈'이 미라의 사망 원인이라고 밝혔다. 남아로 밝혀진 태아도 자궁에서 미라상태로 남아있었다. 이에 미라를 ‘파평 윤씨 모자(母子) 미라’로 명명했다.

모자 미라는 전세계에서 유일한 것이라는 희귀성과 완벽한 보존성, 출토된 많은 복식류와 언문편지, 쪽지 등으로 인해 어떤 신분의 누구인지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고대박물관이 이를 조사해 공개한 것이다.

▲ 미라가 입고 있던 수의
ⓒ 한성희
모자 미라는 누구일까?

미라의 주인공은 파평 윤씨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타 집안으로 출가했다가 친정에서 출산 도중 사망한 20대 중반의 젊은 여인이다. 친정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친정인 파평 윤씨의 종산에 묻혀 있는 것이다.

파평 윤씨 종중 무연고 묘역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모자 미라는 묘석이나 묘표가 발견되지 않아 '병인윤시월'(병인년 윤시월에 사망)이라는 습의의 기록과 파평 윤씨 족보기록, 한글편지 등으로 추정한 것이다.

또 인종의 후궁인 숙빈이 쓴 한글편지도 출토돼 미라의 신분 확인에 한 역할을 했다. 숙빈은 문정왕후의 오빠인 윤원량(1495-1569)의 딸이다. 따라서 윤원량 집안의 인물일 가능성이 높고 윤원량의 자식인 윤소(1515-1544)의 첩실 외동딸일 것이라고 정호섭 고대박물관 학예사는 추정한다.

▲ 미라가 발견된 목조 내관. 위에 칠성판이 얹혀있다.
ⓒ 한성희
관에서 발견된 4품 단령과 흉배는 미라 남편에 대한 기록이 전무해 미라의 아버지(윤소)나 할아버지(윤원량)의 것일 가능성도 있다. 아버지의 사랑을 느껴보지도 못하고 친정에서 출산도중 사망한 손녀딸에 대한 애틋한 애정으로 할아버지가 넣어주었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문정왕후 오빠인 윤원량은 미라가 사망할 때까지 살아있었고, 손녀의 장례를 주도했을 것으로 보여 미라의 관속에서 발굴된 부장품은 모두 윤원량과 관계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관속에서 발견된 언간(言簡)과 시신의 머리카락에서 참빗을 싸서 발견된 편지 등은 모두 부장품을 싸는데 사용된 것이다. 망자가 애지중지하는 편지를 염을 하는 과정에서 정식으로 넣은 게 아니라 단순히 부장품을 싸는데 이용했다. 그래서 보낸 사람과 받은 사람이 분명하지 않고 훼손이 심해 해독하기가 어려웠다.

인종의 후궁 숙빈 윤양제의 언문편지는 윤원량의 부인인 친정 어머니에게 보낸 것으로 아들인 윤소의 첩녀(妾女)인 미라의 염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 너울과 겨울용 누비장옷
ⓒ 한성희
피부의 탄력성이 아직도 남아 있다

미라의 피부는 이집트 미라와는 달리 탄력성과 촉감이 부드러운 것으로 밝혀졌다. 이집트 미라는 만지면 부서지는 딱딱한 형태지만 모자 미라는 사지를 벌리면 벌어질 정도로 탄력과 살아 있는 피부 같은 부드러운 촉감을 유지했다.

키는 153.5cm이고 몸은 비교적 영양상태가 좋은 비만체형이다. 처음에는 암으로 사망한 것이 아닐까 추측했지만 고대의과대학의 복부해부 결과 난산으로 인한 사망으로 밝혀진 것. 음모가 그대로 있고 미라의 외음부는 쉽게 벌어져 태지에 둘러싸인 태아의 머리와 머리카락도 관찰됐다.

43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미라의 장 속에서 선충류로 추정되는 기생충이 발견돼 신분이 상류층에 속하는 미라가 음식을 설익혀 먹거나 날로 먹었다는 증거가 되었다. 이는 전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사례로 식물성 섬유소와 꽃가루가 장에서 발견됐고, 위샘세포 역시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보존되어 학계에서는 매우 중요한 발견으로 보고 있다고 한다.

왜 미라가 됐을까?

우리나라는 산성토양이고 기온 특성상 온대 습윤지역이라 미라가 되기는 매우 힘들다. 그러나 모자 미라가 발견된 파주시 교하읍 당하리와 와동리 파평 윤씨 분묘주변에서는 1980년대 농수로 공사 때 예상하지 못한 무연고 묘지가 상당수 발견됐고, 이때 미라가 5-6기 발굴된 적도 있다고 한다. 또 1999년 국지도 공사 때도 처녀미라가 발굴돼 이 지역은 미라의 발굴이 빈번한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20만 평에 이르는 파평 윤씨 정정공파 종중묘역은 오랜 세월이 경과함에 따라 누구의 묘인지 모를 무연고 묘역이 많은 편이다. 모자 미라도 문인석과 상석과 향로까지 갖춘 묘역이었다고 한다. 파평 윤씨 묘역은 비석의 역사적 가치로 현재 도(道)지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미라가 되려면 시신이 들어 있는 목관을 에워싸고 있는 회곽에 공기 유입이 차단되어야 하는데 그것이 미라가 되는데 토양보다 주요한 원인일 것이라는 게 고대 생태공학부의 판단이다.

우리나라는 미라 발견도 드물지만 전통적인 관습에 의해 미라가 발견돼도 화장하는 관례 때문에 단국대에서 처음으로 남아 미라를 발굴보존하여 최초로 전시회를 가진 이후로 이번 고대박물관 '특별전시회'가 두 번째 사례다.

▲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펴낸 '파평윤씨 母子 미라 종합연구논문집'
ⓒ 한성희
고려대학교 박물관이 파평 윤씨 종중의 모자 미라 기부로 학술종합연구를 하고 전시회를 하게 된 것은 매우 큰 성과로 평가받는다. 역사학, 국어학, 복식학 등 인문학과 의학, 자연과학, 법의학 등 여러 학문을 총동원하여 연구를 진행했고, 전 과정을 영상화하여 자료를 남겨놓았다.

고고학자들은 고대박물관이 이번 모자 미라 연구로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발돋움했다는 극찬을 하고 있다. 고대박물관은 그동안의 연구 결과로 '파평 윤씨 모자 미라 종합논문집(고려대학교박물관 발행)'을 출간했다.

모자 미라 발굴부터 전시회까지 관계했던 김우림 박사(고대박물관 학예과장)는 "이번에 전시된 미라의 보존을 위해 특수제작한 전시관이 마련됐고, 미라 신체부위마다 습도와 온도가 다르게 조절되었다"며 "미라를 기증해주신 파평 윤씨 종중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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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출생, 현 파주저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