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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5월 20일 서명된 소파 합동위원회 각서. 반기문 당시 외무부 미주국장(우측 아래)의 서명이 선명하다.
ⓒ <뉴스위크> 제공

위헌 논란이 일던 1990년 미군기지 이전 관련 양해각서와 합의각서를 한국 정부가 합법적이라고 재확인해준 91년 5월 소파(SOFA) 합동위원회 각서가 <뉴스위크> 한국판에 의해 공개됐다.

미국이 그동안 기지 이전과 관련한 협상에서 '절대 양보할 수 없다'며 배짱을 부릴 수 있던 것은 90년 각서보다는 오히려 91년 소파 합동위원회 각서 때문이었다.

또 <오마이뉴스>는 '91년 5월 당시 반기문 외무부 미주국장(현 청와대 외교보좌관)이 미국 압력에 굴복해 소파 합동위원회 각서에 강제로 서명했다'는 내용이 담긴 국가안전기획부의 정세보고 문건을 입수했다. 지난 20일 통합신당 안영근 의원도 91년 5월 작성된 이 문건을 입수해 같은 내용을 폭로했으나 문건 전문은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이 믿는 것은 91년 소파 합동위원회 각서

독소조항 가득찬 최악의 불평등 협정
[해설] 90년 미군기지 이전 양해-합의각서

미군 기지 이전과 관련한 한미 합의·양해각서는 지난 90년 6월 25일 당시 이상훈 국방부 장관과 루이스 C. 메네트레이 주한미군사령관이 서명했다.

이 각서에 따르면, 한국이 미군 기지 이전 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것은 물론 △모든 건물은 미국 기준에 맞춰 건설 △이전하는 동안 발생하는 미군 기지 안 각종 복지·휴양 시설의 손실을 한국이 금전 보상 △기지 이전 중 미국 요원 및 한국 고용인 등이 입은 손실에 대해 금전 보상 △주한 미군 가족 및 모든 정규·비정규 고용인들의 이사 비용 한국 부담 △문서 번역료 등 행정경비까지 전액 한국 부담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한 마디로 미군 기지 이전과 관련해 발생하는 시설·용역·서비스와 관련된 모든 비용을 한국이 부담하도록 되어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1990년 당시 용산기지를 정상적으로 이전할 경우 비용이 16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며 "그러나 이 각서대로 진행된다면 이전 비용은 당시에도 6배나 늘어난 96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고 말했다.

현재 국방부는 용산 미군 기지 이전 비용이 30~5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인 시설 이전 비용에 불과하다. 이 각서대로 진행될 경우 이보다 5~6배인 300억달러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21일 발간된 <뉴스위크> 한국판 최신호는 1991년 5월 반기문 당시 외무부 미주국장(현 청와대 외교보좌관)이 서명한 소파 합동위원회 각서의 전문을 공개했다.

각서는 "1990년 6월 25일 서명된 미군 부대 이전을 위해 한미 양국이 서명한 합의각서가 합법적이고 구속력이 있는 것으로 인정한다"며 "기본합의각서(MOA)와 이의 양해각서(MOU)는 소파 규정에 따라 효력이 발생할 것"이라고 규정했다.

90년 합의·양해각서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등은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한 헌법 제60조를 위반해 위헌이라는 의견이 강력하게 제기됐다.

또 주한 미군에게 시설과 구역을 제공하려면 소파 합동위원회를 통해 협의하고 양국 대표가 서명해야 하는데도 이들이 아닌 한국 국방부 장관과 주한 미군사령관이 직접 서명했다. 이는 기관상의 약정일 뿐 국가간의 약정이 될 수 없어 무효라는 논란이 일었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한미 양국은 이미 존재하는 소파의 규정에 따라 90년 합의·양해 각서가 법적 효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각서를 체결했다. 이 각서에 소파 합동위원회 한국 대표인 반기문 당시 외무부 미주국장과 로널드 포글먼 주한미군 부사령관이 서명했다.

90년 합의·양해 각서에는 한국이 최악을 피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 90년 합의각서 '제9조 유효일시'는 "만약, 하기(下記) 최종 서명 이후 어느 한쪽이 정부내 검토결과 본 합의각서 또는 어떤 부분을 수용할 수 없다고 하면, 합의각서 전체를 법적 효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나 소파 합동위원회 각서는 90년 합의각서가 법적 구속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본합의각서(MOA)와 이의 양해각서(MOU)는 SOFA 규정에 따라 효력이 발생할 것이다"라고 규정해 90년 합의각서의 9조 조항을 무력화시켰다.

91년 안기부가 작성한 '용산미군기지 이전 합의각서관련 대책 필요'라는 제목의 문건은 한미 양국 정부가 90년 각서의 문제점을 잘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 문건은 "90년 합의각서가 소파 합동위원회에서 서명한 것이 아니어서 무효고 무엇보다 국회의 동의를 받지않아 위헌이라는 주장이 있다"며 "주한 미군도 90년 합의각서가 소파에 위배된다고 보고, 사후에라도 합법적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 외무부측의 자인서를 얻으려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기부 문건은 "90년 합의·양해 각서대로 미군 기지가 이전된다면 애초 예상 17억달러보다 최소한 4배가 많은 54억달러가 들 것"이라고 적고있다. 이처럼 한국 국민들에게 막대한 비용을 부담시키는 이 각서가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는 한 법적 효력이 없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 91년 5월 반기문 청와대 외교보좌관(당시 외무부 미주국장)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각서에 서명했다는 내용이 담긴 안기부 정세보고 문건
ⓒ 오마이뉴스
▲ 91년 5월 안기부 문건의 반기문 당시 미주국장 관련 부분
ⓒ 오마이뉴스

미군 협박에 반기문 당시 외무부 미주국장 굴복

안기부 문건에 의하면 한국 외무부 내부에도 각서가 법적인 효력이 없다는 의견이 강했다. 그러나 소파 합동위원회 한국 쪽 대표인 반기문 당시 외무부 미주국장이 미군으로부터 협박을 받고 견디다 못해 서명한 것으로 나와있다.

안기부 문건은 당시 정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번 합의각서의 미측 실제 서명권자인 포글만 주한 미군 부사령관은 5.13 외무부 반기문 미주국장을 방문해, '외무부 내에 동 각서가 법적인 효력이 없어 무효라는 주장이 있다는데, 청와대에 공식 항의하겠다'면서 동 각서의 합법성을 인정한다는 내용(미군측이 일방적으로 작성)의 서류에 서명할 것을 강요했다.

반국장은 그간 국방부가 '군사비밀'을 이유로 외무부에 이첩을 보류해 오다 최근에야(5.8) 합의각서의 사본을 전달, 아직 검토중임을 들어 서명을 거절해 왔으나, 미군측의 반발을 의식하여 5.20 서명했다.

(외무부 안에서는) 88.7 '주한 미군숙소로 무상대여한 내자호텔을 반환받는 조건으로 48억원을 지급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맞서온 유광석 미주국안보과장이 미군측의 로비로 전보(일본연수)된 바 있어, 반 국장도 같은 사례로 피해를 입을 것을 우려하여 서명할 수 밖에 없었다는 자조적인 분위기마저 산견(散見)되고 있다."


즉 △미군 쪽이 반기문 국장에게 각서의 합법성을 인정하라고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만든 서류에 서명할 것을 강요했으며 △반 국장은 처음에는 검토중이라며 서명을 거절했으나 △결국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서명했으며 △외무부 안에서는 미국의 불합리한 요구에 저항했던 한 과장이 좌천된 사례가 있어 반 국장이 자신도 이같은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 서명했다고 본다는 것이다.

소파 합동위원회 각서는 91년 5월 15일 한국과 미국 쪽 소파 합동위원장이 체결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반기문 미주국장이 서명한 것은 그로부터 5일 뒤인 91년 5월 20일이다. 따라서 소파 합동위원회 각서에 "1991년 5월 20일 긴급조치에 의해 승인되다"는 문구가 들어있다.

안기부 문건은 "현재 이 각서에 대해 위헌성 논란이 있고 야권이나 대학가 등에 알려지면 반미감정이 유발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 각서가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보안에 유의하고, 외부에 노출시 위헌성·불평등성 등에 대한 대응논리를 개발해야 한다"고 대응 방침을 제시했다.

당시 협상 참여자들 현재 청와대 외교-안보라인 장악

▲ 반기문 청와대 외교보좌관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런데 90·91년 협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사람들이 현재 청와대의 외교·안보 라인을 장악하고 있다. 반기문 현 청와대 외교 보좌관은 당시 외무부 미주국장, 김희상 청와대 국방보좌관은 당시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 등으로 용산기지 이전 협정에 관여했다.

과거 정권은 물론 개혁을 내세우는 현 정권에서도 90년 합의·양해 각서와 91년 소파 합동위원회 각서가 전혀 공개되지 않았던 것은 이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과거에 저지른 일을 절대 노출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지난 10월 6일부터 3일간 열린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 공동협의' 제5차 회의를 끝으로 용산기지 이전 협상은 끝났다. 국방부는 지난 9일 "한미 공동발표문을 발표하기로 했으나 세부 사항 합의에 실패해 발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불평등 조항이 많이 삭제됐으며 이전 비용은 30~50억달러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 일각에서는 오히려 더 개악됐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국민 반발을 의식해 발표만 안했을 뿐 협상은 사실상 타결됐다"며 "한국 쪽이 비용을 전액 부담한다는 원칙은 그대로 살아있다, 오히려 일부 분야는 이전보다 더 개악됐다"고 전했다.

국방부는 국회 비준이 필요한 '포괄협정'에는 대강의 내용만 담고, 불평등 조항은 국회 비준이 필요없는 '기술양해각서'와 '이행합의서'에 담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한미 양국은 11월 초 최종 타결안에 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20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안영근 의원은 "불평등하고 위헌요소가 다분한 합의각서와 양해각서를 법적으로 유효한 문서라고 인정한 사람이 현재 청와대 외교보좌관으로 있다"며 "현재의 외교안보팀으로는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지속시켜 바람직한 한미동맹관계를 해치게 되고, 국익도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기지이전과 관련한 최근의 협상은 기존의 불평등 내용과 함께 컴퓨터 설치, 건물증설, 통신시설과 같은 인프라건설 등 한국이 새 부담을 져 불평등 요소가 더욱 증가했다"며 "그런데도 국방부와 외교부는 대외용으로 최소한의 미측 양보를 얻어내되 전체적으로는 미국 측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는 협상전략을 세웠다, 협상팀을 전면 교체하고 처음부터 다시 재협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의 협상 진행과정과 90·91년 각서를 공개하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던 한국쪽 협상당사자들의 태도로 볼 때 안 의원의 주장은 충분히 근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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