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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꾸라지마 페리 터미널에서 후루사또(古里)행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후루사또 간꼬 호텔에서 나온 봉고차 한 대가 우리 가족 앞에 와서 멈춰 선다. 이 섬에 자리잡은 온천의 한 호텔에서 호객행위를 하러 나온 것이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기사가 우리 가족 3명만을 태운 채 운전을 시작한다.

얌전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아주 낮은 운전석에서 부드럽게 운전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 소형차는 화산섬을 한참 동안 돌아가는데, 차창 밖으로 야자수와 검은 현무암 바위가 스치듯이 지나간다. 이 화산섬, 사꾸라지마는 겉모습이 너무나 제주도를 닮아 있다. 그래서 왠지 나와 아내는 제주도에서 택시를 대절하여 여행을 나서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후루사또는 사쿠라지마 언덕에 펼쳐진 온천마을이다. 이 후루사또에는 현대적인 호텔과 여관들이 즐비하고, 각 숙소마다 온천, 사우나, 수영장 시설들이 완비되어 있다. 호텔 카운터에서 흰색의 유까따(일본 숙소의 실내복 겸 온천 옷)를 먼저 받아들고, 사물 보관함에는 비밀번호를 입력한 후 귀중품을 넣어두었다.

우선 남탕으로 갔다. 항상 우리 가족은 사우나에 가면 1:2로 나뉘고, 이 때부터 딸 녀석은 아내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게 된다. 무언가 섭섭한 마음도 들지만 오랜만에 홀로 되는 시간에 여유가 생긴다. 사우나의 겉모습은 우리나라의 그 것과 크게 다를 바는 없지만, 일본의 사우나 욕탕에서는 유황 냄새가 나고, 몸에 닿는 물의 감촉이 매우 매끈매끈한 점이 다른 점이다.

귀중품은 로비 앞 사물함에 넣어 두었기에 입고 간 옷들은 바구니 속에 넣어둔다. 이 곳 일본의 욕탕에서는 작은 타월로 앞 부분을 가리는 것이 예의이다. 이 타월로 몸을 먼저 닦은 후 앉은 자세로 샤워를 하거나, 큰 욕조에 몸을 담근다. 그러나 나는 이 사우나가 본론이 아니기 때문에 얼른 몸을 씻은 후 아내와 딸이 기다리는 노천탕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노천탕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는 남쪽의 절벽을 타고 비스듬히 옆으로 내려가고 있다.

▲ 후루사또 노천온천
ⓒ 노시경
서서히 짙푸른 긴꼬만의 바다를 안은 로뗀부로(노천온천)가 눈앞에 드러난다. 다른 일본인들과 같이 유까따를 입고 드디어 온천물에 몸을 쑥 담갔다. 드디어 아내가 벼르던 바닷가 노천온천 속에 들어 온 것이다. 뜨거운 온천물의 열기가 온 몸을 타고 전율처럼 흐르는 것 같다.

▲ 후루사또 온천의 용신
ⓒ 노시경
노천온천이 절벽과 만나는 곳에는 용신을 모신다는 거대한 적수(赤秀)라는 고목이 뿌리를 드러내고 있다. 조금이라도 신기한 것이라면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는 일본사람들의 성격을 고려하더라도, 이 나무의 모습은 정말 신심을 가지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장관이다.

이 거대목에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금줄이 둘러처져 있고 제단까지 만들어져 있다. 안내문에는 '한 스님이 이 나무에서 용신을 만났고, 그 후부터 이 나무를 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올린다'고 되어 있다.

활화산이 만든 '진짜' 온천수의 따뜻함에 몸을 담그고, 눈앞에 거대하게 자리잡은 용신을 바라본다. 이 노천온천에서 바라보는 긴꼬만 바닷가는 한적하고 고요하다. 나의 머리는 긴꼬만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노출되어 시원하고, 아랫도리는 따뜻함을 즐기고 있다. 온 몸이 노곤히 풀리고 있다.

그런데 유까따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사람들은 이 옷을 입고 온천욕을 하는 것이 약간 곤혹스럽다. 남녀 모두 유까따 안에 내의를 입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물 속에서 갑자기 일어설 때에 조심하지 않으면 유까따가 벌어지면서 성기가 노출될 수가 있다. 그리고 가슴이 큰 여성들은 상체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아리따운 한 서양 아가씨의 몸매에 많은 일본 총각들의 시선이 내리꽂히는 것이 느껴진다. 나 혼자 이 온천탕에 들어섰다면 안 보는 듯이 사람들을 쳐다볼 것 같은데, 2명의 여자를 데려온 가장으로서 내 가족들의 옷매무새가 더 신경이 쓰인다. 신영이는 가끔 자기 엉덩이가 나오는 줄도 모르고 물 속에서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닌다. 신영이가 뜨거운 물 속을 다니면서 발을 헛디딜까봐 계속 그 뒤를 졸졸 따라다녀야 했다.

▲ 후루사또 온천 수영장
ⓒ 노시경
내가 신영이에게서 해방된 것은 잠시 후였다. 신영이가 온천 옆에 자리한 시원한 수영장에서 놀기 좋은 곳을 발견한 것이다. 신영이는 이 수영장에 온천이 아닌, '냉천'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원래 유까따를 입고 수영장에는 들어올 수 없도록 되어 있는데, 다행히 이 곳을 지키는 할아버지는 우리를 제지하지 않고, 자상하게 웃고 있다. 신영이는 이 수영장에서 도무지 나올 줄을 모른다.

▲ 후루사또 앞바다, 긴꼬만
ⓒ 노시경
신영이에게 깊은 곳에 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아내가 앉아있는 바닷가 바로 앞의 벤치 옆으로 갔다. 아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명상에 잠겨 있다. 아내의 무릎에 머리를 묻고 눈을 감아봤다. 이 순간만은 모든 세상사를 잊고 싶다. 이 순간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으면….

▲ 긴꼬만
ⓒ 노시경
주변에서 온천욕을 즐기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고 없다. 긴꼬만에 떨어지는 태양까지 느긋하게 감상하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너무 오래 물 속에 있어서인지 온 몸이 풀린 듯하다. 사꾸라지마 페리 선착장까지 가는 마지막 버스가 우리 가족 앞에 와서 섰다.

어둠이 깔린 후루사또. 낮과는 다른 분위기로 다가온다. 버스 운전석 옆의 행선지를 알리는 지명이 하나둘씩 바뀌어간다. 인적도 없는 해안 도로. 우리 가족밖에 타지 않은 이 시골의 버스는 화산섬의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신영이는 엄마의 품에 안겨 골아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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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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