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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사회도 '똘레랑스'(관용)의 중요성을 점차 깨달아 가는 중이다. 똘레랑스를 말할 때 그 핵심적인 요소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일 것이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민주주의 이념에 있어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에 속한다. 그러나 분단과 냉전의 광기가 서슬 퍼렇게 살아 지배하는 이 나라에서 그러한 가치들은 지금까지 제멋대로 무시되어 왔다.

자신의 사상을 말했다는 이유만으로 '간첩', '빨갱이', '용공좌경분자'가 되어 고문받고 투옥되어야 했던 숱한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들의 이야기를 접하면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이토록 잔인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당장은 놀라고 분노가 치밀어 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폭력에 맞서다 희생된 자들을 오래도록 기억해주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큰 병폐다. 그러니 파시즘의 망령은 거듭 되살아나 시대를 비웃으며 설쳐대곤 하는 것이다.

ⓒ 자작나무
독일의 유명한 전기작가인 츠바이크는 히틀러의 독재가 확고해지고 세계 전쟁으로 치닫던 당시에 이 작품을 썼다고 한다. 미친 운전사인 줄도 모르고 독재자 히틀러에 열광해 마지않던 동포들에게 찬물 한 사발을 끼얹으려 함이었을까. 어쨌든 이 책은 일반에 완전히 잊혀져 있던 16세기 최고의 인문주의자이자 양심적 지식인인 카스텔리오를 부활시켜 우리에게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카스텔리오는 루터와 더불어 대표적인 종교개혁가로 손꼽히는 칼뱅의 최후의 적수였다. 그런데도 칼뱅이 위대한 종교개혁가로, 장로교의 아버지로, 사람들에게 한껏 추앙받는 동안, 카스텔리오는 참으로 긴 세월 동안 거의 잊혀진 존재나 다름이 없었다. 한데 칼뱅의 폭력과 종교적 광기에 온몸으로 저항한 이 외로운 전사가 뒤늦게나마 재조명되고 있다는 사실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감히 카스텔리오를 에밀 졸라, 볼테르, 로크, 흄 같은 사람들과 함부로 비교하려 들지 말라고. 예컨대 카스텔리오가 벌인 싸움은 칼라 사건에 대한 볼테르의 항변이나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졸라의 항변과는 한마디로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 두 사람이 카스텔리오가 살던 당시보다 훨씬 개명된 인문주의적 시대에 살았다는 사실은 놔두고라도, 그들이 타인의 운명을 위해 자신의 명성과 안락만을 걸고 싸웠을 때 카스텔리오는 양심의 자유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것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단자에 관하여>와 같은 그의 저서를 통해서 드러난 바, "관용"에 대한 카스텔리오의 외침은 유럽에서 거의 선구적인 것에 속했다. 그럼에도 그는 마치 없었던 존재인양 부당히 취급되어 왔던 것이다.

칼뱅이 세르베토라는 박식하고 창의적인 신학자를 교리상의 이유를 들어 이단자로 몰아 화형시킨 사실은 이 책을 접하기 이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제네바시를 장악하고 성서정치(Bibliokratie)를 펴면서 많은 무리를 낳았다는 것도 대충은 알고 있던 바다.

그러나 칼뱅이 얼마나 잔인하고도 비열한 인물인지에 대한 진면목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제 보니, 그는 가톨릭과의 싸움을 빌미로 제네바시 전체를 오로지 자신의 의지만이 관철되는 파시즘적 광기로 채웠던 사람이었다.

그의 신정 통치 처음 5년 동안에 13명이 교수대에 매달리고, 10명이 목이 잘리고, 35명이 화형당하고, 76명이 추방당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감방마다 죄수로 가득차서 간수장이 시 당국에 단 한 명의 죄수도 더 받을 수 없다고 통보할 정도였을까. 이것만 봐도 종교개혁을 내세운 그의 공포정치가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칼뱅은 광신적 주지주의자로 오로지 가르치려고만 했지 도저히 남에게 배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자신과 조금이라도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기필코 제거해야 속이 시원했던 지독한 독선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칼뱅의 본모습을 알지 못했던 카스텔리오도 처음엔 멋모르고 그의 문하에 들어가 일했다. 그러나 칼뱅의 독재와 그의 측근들의 위선이 시 전체를 망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하고 까놓고 문제제기 하다가 결국 제네바에서 쫓겨나고 만다. 쫓겨난 카스텔리오의 삶은 비참했다. 칼뱅보다 훨씬 위대한 학자가 칼뱅의 입김으로 일정한 직업도 얻지 못한 채 구걸을 해야할 정도가 되었고, 기껏해야 바젤의 오포린 출판사에서 교정을 보는 일로 입에 풀칠을 해야했다.

카스텔리오가 추방된 이유는 너무나 사소한 문제에 기인한다. 그가 성서를 라틴어와 프랑스어로 번역하면서 일부 용어 사용에 있어 칼뱅의 생각과 차이가 있다는 것, 아가서를 방탕한 연애의 기록으로 보았다는 것 등이다. 칼뱅은 이러한 사소한 트집을 잡아, 카스텔리오를 제네바시의 목사로 임명하기를 거부했고 끝내는 시에서 몰아내기까지 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칼뱅이 자신과 견주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는 학자 카스텔리오를 질투했다는 의심을 할 만하다.

추방된 카스텔리오와 칼뱅과의 싸움이 절정에 달한 것은 세르베토가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했다고 칼뱅에 의해 이단자로 화형에 처해진 다음부터다. 정치적 반대자들에 의해 한참 수세에 몰려 있던 칼뱅은 세르베토를 본보기로 처형하면서 그 모든 반대자들을 잠재웠다. 중세 가톨릭이 행했던 무시무시한 종교재판과 하등의 다를 바 없는 개신교 최초의 종교적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세르베토는 처참히 죽어가면서도 "예수,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것을 보면 그는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죽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삼위일체 교리에 어긋난 주장(<삼위 일체론의 오류>)과 칼뱅의 <기독교 강요>를 비판한 책(<기독교의 재건>)을 썼다고 하여 공개적인 신학적 토론 한 번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비극적인 생을 마감해야 했다.

여기에 카스텔리오는 침묵을 깨고 <이단자에 관하여> <칼뱅의 글에 반대함>과 같은 글을 써서 이에 목숨을 걸고 맞서고자 하였다. 만일 이들 내용이 당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면 칼뱅은 자신의 국가권력으로 월권을 행사하여 살인죄를 저지른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 치명타를 입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만큼 빈틈없이 치밀한 내용으로 칼뱅의 잘못을 낱낱이 공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르베트 사건을 말하는 카스텔리오의 명쾌한 문장 한 대목을 읽어보자.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은 절대로 교리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을 뜻할 뿐이다. 제네바 사람들이 세르베토를 죽였을 때, 그들은 교리를 지킨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을 희생시킨 것이다. 인간이 다른 사람을 불태워서 자기 신앙을 고백할 수는 없다. 단지 신앙을 위해 불에 타 죽음으로써 자기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다."<214쪽>

카스텔리오의 이와 같은 빛나는 명구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 그의 글은 칼뱅에게 별로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칼뱅의 명령에 따라 미리 행해진 검열에 의해 카스텔리오의 글들이 인쇄조차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리어 나중엔 카스텔리오가 이단자들과 어울렸다고 하여 화형에 처해질 뻔했던 일이 벌어진다. 그러나 다행히 카스텔리오는 쇠약해진 몸 때문에 격렬한 위경련을 일으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런 불행한 사태만은 모면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단순히 종교적 폭력과 광기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어떤 단일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성되고 조작, 지배되는 사회가 얼마나 끔직한 파시즘을 낳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 본유의 양심과 자유는 철저히 유린당하고 만다. 그래서 저자는 결말에 이르러 다음과 같은 말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인류는 언제나 진보를 위해서 싸워야 하며, 극히 당연한 것도 새로이 의심받는다. 우리가 자유를 습관으로 여기고 더 이상 신성한 소유물로 여기지 않는 순간에 충동세계의 어둠 속에서 신비한 의지가 자라 나와 그것을 유린하려고 드는 것이다. 인류는 너무 오래 너무 근심 없이 자유를 누리고 나면, 언제나 힘의 도취에 대한 위험한 호기심, 전쟁에 대한 범죄적인 열망에 사로잡히게 된다."<271쪽>

폭력에 대항한 양심 - 칼뱅에 맞선 카스텔리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자작나무(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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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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