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해성
8월 24일. 홈 팀 대전 시티즌과 원정 팀 전남 드래곤즈간의 K리그 3라운드 경기.

이날 경기에는 J리그로 진출하는 김은중의 고별행사와 '이관우 vs 김남일'의 라이벌전이라는 화젯거리들이 수많은 축구 팬들의 가슴을 사로잡고 있었다.

경기 결과는 팽팽한 접전 끝에 3-3 무승부. 이관우도 김남일도 최고의 경기로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켰지만 이날 최고의 활약으로 그라운드를 호령한 선수는 놀랍게도 이들이 아닌, 전남의 2년차 '중고 신인' 노병준(24·전남).

노병준은 청소년 대표, 올림픽 대표, 국가 대표까지 엘리트 코스를 두루 거치며 최고의 기대주로 각광 받았지만 계속되는 병마와 부상 등 악재가 잇따르며 팬들의 뇌리에서 서서히 잊혀져가야만 했다.

이대로 포기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으로 축구화 끈을 다시 동여맨 노병준은 2003 K리그를 통해 다시 '제2의 전성기'를 누리며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Killing Time'

이날 경기에서 2-3으로 패색이 짙던 후반 43분. 후반 10분 강철과 교체 투입된 노병준은 이따마르의 헤딩 패스를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 극적인 무승부를 이끌어냈다.

시즌 6호골. 빠른 스피드와 활발한 몸놀림으로 패배의 수렁에 빠져 있던 팀을 '한방'에 구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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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감각이 특출한 공격형 미드필더로 비에라, 김도근 등에 가려 간간히 투입되는 조커 요원에 불과하지만 올 시즌 그의 팀 내 비중은 이미 상당하다.

대전과의 이날 경기를 비롯해 올 시즌 그가 터뜨린 모든 골이 극적인 상황에서의 동점골 혹은 역전 결승골.

이미 프로축구에 정통한 전문가들로부터 원조 '킬러' 이원식(부천), 황연석(성남)과 함께 '해결사 트로이카'로 불릴 정도로 노병준의 평가 가치는 급상승 중이다.

전남 이회택 감독은 "진정으로 축구를 즐길 줄 아는 선수다"며 "악조건 속에서도 스타근성을 버리고 팀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는 다른 선수들이 충분히 본 받을 필요가 있다"며 노병준의 최근 자세와 활약상을 높이 샀다.

비에라에 밀려 주전으로 나서지는 못하고 있지만 다시 못 설 것만 같았던 그라운드에 설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즐거움을 감출 수가 없다.

"평생 축구만..."

뭔가 비장한 분위기가 베어나는 노병준의 다음 카페 (http://cafe.daum.net/happyNBJ) 아이디는 그의 축구에 대한 애정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부산 장산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축구를 시작한 노병준은 가능성은 충분했지만 힘든 가정형편으로 축구를 포기하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곁에는 늘 축구를 계속 할 수 있도록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동래고 시절에는 박수관(부산시 협회 부회장)씨의 도움으로 축구를 계속할 수 있었고 현재는 한 중소기업 사장이 골을 넣을 때마다 2백만원의 후원금으로 노병준을 격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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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고 1학년 재학 시절부터 이회택 감독의 눈에 발탁되어 한양대에서 활약하며 아마추어 무대를 호령한 뒤 유고(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되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 노병준은 지난해 팀 내 최고 대우(계약금 2억5천만원, 연봉 2천만원)로 은사가 있는 전남에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그의 상종가는 여기서 주춤하기 시작했다. 입단과 함께 가진 메디컬 테스트에서 B형 간염보균자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된 것. 늘 남들보다 쉽게 피곤에 지치곤 했던 이유가 간염 때문이란 것을 뒤늦게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기대 속에 출장한 지난해 별다른 성과 없이 다섯 차례 그라운드를 밟는데 그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킬레스건까지 다치며 암울한 시간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여기서 주저앉을 수만은 없는 법. 노병준은 그토록 즐기던 술도 끊고 꾸준한 약물 복용과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일차적인 휴유증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간염 투병 중 필수인 절대 안정과 휴식이 필요했지만 노병준은 자신을 위해 힘들게 생활해 온 가족들을 생각하며 축구화 끈을 더 세게 조여 맸다. 강도 높은 동계훈련을 통해 체력을 증진시켰고 꾸준한 개인훈련으로 기량도 한 단계 성숙할 수 있었다.

분위기 메이커 '뱅달이'를 아시나요?

노병준의 활약상은 그라운드에서만이 아니었다. 연습 때나 숙소에서나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남 선수단의 분위기 메이커 노릇을 독특히 해주고 있다.

아직 병마와의 계속되는 싸움을 벌이고 있는 노병준은 "내가 투입되면 팀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소리를 들을 때 무지 기분이 좋았다. 경기장에서 뿐만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팀 분위기를 즐겁게 이끌어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건강도 많이 좋아졌고 팀도 상승세를 타고 있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 거둘 수 있게 한 몫 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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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히 경기를 풀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해결사 역할도 색다른 짜릿한 묘미를 느낄 수 있다"며 조커로서의 임무에 대한 각오와 함께 "아직은 시기상조지만 비에라와의 포지션 경합에서 이겨 고정적으로 출전하고 싶다. 열심히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행운은 찾아 올 것이라 믿는다"며 주전 자리에 대한 솔직한 욕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회택 감독은 "개인 기량도 원체 탁월한 선수지만 넉살도 넉넉해 인간적으로도 마음에 드는 선수다. 목표에 대한 근성도 뛰어나기 때문에 충분히 병마를 떨치고 자기 기량을 100%이상 펼쳐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깊은 신뢰를 보냈다.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선수단의 분위기를 이끌고 있는 노병준은 알토란같은 활약으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또, K리그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약방의 감초' 역할까지도 단단히 해주고 있다.

최근 활약을 바탕으로 코엘류호의 새로운 대안으로까지 거론되고 있는 노병준의 '성공 스토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2003-09-07 10:59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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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사커뱅크(기자), 축구닷컴(에디터), 풋볼매거진(기자), 한국일보(리포터), 전남드래곤즈 매치데이웹진(발행)을 거쳐 에히메FC(J리그구단), 이룸스포츠(선수관리팀장), 프라임스포츠인터내셔날(부사장)까지 에이전시와 마케팅 업무까지 다양한 스포츠 산업분야 현장을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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