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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세의 빈민운동가 아베 피에르
ⓒ 아베피에르재단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질병도 전쟁도 아닌 서로에 대한 무관심이다."

프랑스에서 종종 듣게되는 말이다. 자신의 울타리를 낮추고 상대방을 향해 다가가는 일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삶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동경을 잘 말해주는 조사결과가 발표돼 눈길을 끈다.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인물에 아베 피에르,
넝마주이의 어머니 엠마뉘엘 수녀는 여성 1위에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인물은 여전히 아베 피에르(피에르 신부, 프랑스인들이 그를 부르는 애칭이다)이며 다음이 프랑스의 축구 영웅 지네딘 지단, 가수 쟝 쟈크 골드만 순이다. 이같은 결과는 여론조사기관 IFOP가 <일요신문>을 위해 지난 6월 24일부터 30일 사이 전국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응답자가 제시된 50명의 명단 중 자신이 '더 좋아'하거나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물 10명을 고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아베 피에르는 지난해 12월 실시된 유사한 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한 바 있으며 이번 조사로 다시 한번 프랑스인들은 아베 피에르에 대한 사랑을 유감없이 표시했다. 반면 지난해 4위에 그쳤던 지단은 프랑스의 유도 영웅 다비드 두이예를 제치고 2위로 뛰어올라 두이예와 자리를 맞바꿨다.

이밖에 넝마주이의 어머니 엠마뉘엘 수녀, 국민가수 저니 할리데이, 배우 미미 마티, 가수 르노와 플로랑 파니 그리고 배우 쟝 뽈 벨몽도가 차례로 뒤를 이었다.

남성 응답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인물은 단연 남성표 42%를 얻은 지단이었으며 아베 피에르는 여성들의 몰표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18세에서 24세 사이의 청년층의 우상도 이들의 51%를 얻은 지단이었으나 모로코 출신의 인기 코미디언 쟈멜 드부즈가 지단의 뒤를 바짝 좇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반면 65세 이상의 프랑스인들은 단연 피에르 신부와 엠마뉘엘 수녀를 선호했다.

여성으로서는 엠마뉘엘 수녀가 저니 할리데이를 제치고 전체 순위 5위에 올랐으며 이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근 다이나믹한 60세 기념 콘서트를 선사한 록가수 저니는 지난해 12월 순위에서 한단계 떨어진 6위를 차지했다.

정치인으로서는 쟈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총 20%의 지지율로 21위에 올랐으며 1971년 '국경없는의사회' 공동 창시자이며 전 프랑스 보건부 장관을 지낸 베르나르 쿠쉬네르가 지난해와 비교해 18단계 떨어진 44위, 그리고 유전자변형작물(GM) 벼 재배지 훼손 혐의로 지난 6월 22일 전격 구속됐다가 한달여 만인 8월 2일 석방된 프랑스의 대표적인 대안세계주의 운동가 죠제 보베는 19%의 득표율로 지난해보다 5단계 올라선 27위를 차지했다.

한편 정치적 성향을 구분한 조사에서 좌파 응답자들이 지단과 아베 피에르, 저니 할리데이를 꼽은 반면 우파 응답자들은 시라크 대통령, 아베 피에르, 엠마뉘엘 수녀에 집중됐다.

지단, 골드만, 두이예…사회활동 두드러진 각계 인사들 상위에 올라

각각 36%, 34%, 33%로 근소한 득표차를 보인 아베 피에르, 지단, 골드만은 프랑스인의 확고한 우상 트리오로 부상했다. 지단과 골드만 그리고 4위에 오른 두이예가 제각기 해당 분야 최고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나 이들 세 사람이 모두 남다른 사회 봉사활동에 열정을 쏟고 있는 것도 이번 조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지단이 난치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의 치료비 마련을 위한 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낸 일이나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프랑스의 대표적인 코미디언 꼴루쉬가 노숙자들의 겨울나기를 돕기위해 창설한 '마음의 식당(Restos du Coeur)' 사업에 앞장서고 있는 골드만, 그리고 대통령 부인 베르나데뜨 시라크 여사와 함께 마찬가지로 난치병 어린이 후원사업의 일환으로 쓸모없는 잔돈을 모으면서 시작된 '노란 동전(piece jaune)' 성금 작업을 이끌고 있는 두이예의 활동은 프랑스인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아베 피에르, 레지스탕스에서 빈민운동가로

아베 피에르의 경우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프랑스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 1위를 차지하면서 총 17번째 1위를 기록하는 영예를 안았다.

올해 91세의 아베 피에르는 1912년 8월 5일 리옹에서 견직물 상인의 8자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앙리 그루에였다. 1930년 꺄퓌쌩 수도원에 들어가 1938년 신부 서품을 받았으며 같은 해 그르노블 대성당 교구장에 임명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 활동에 가담, 특히 유대인들을 스위스로 피신시키는 일에 앞장섰으며 바로 이때부터 아베 피에르 즉 피에르 신부로 불리기 시작했다. 1945년 하원의원에 당선돼 1951년까지 정치의 길을 걷기도 했지만 당시 의원 월급은 노숙자들을 거두는 데 쓴 것으로 알려졌다.

1949년 노숙자들의 임시 숙소 건설을 목표로 넝마주이 건축가 단체인 엠마우스(Emmaus) 재단을 설립한 아베 피에르는 특이하게도 비종교성을 부르짖으며 종교와 무관한 빈민구제 운동에 헌신했다. 엠마우스 운동은 오늘날 4000명의 회원이 함께 살면서 노동하는 공동체로 전세계 5대륙 30국 84지부로 확대됐다.

레지옹도뇌르(Legion d'honneur) 3등 훈장 수훈자인 동시에 빈민운동 지도자이기도 한 아베 피에르는 끊임없이 인류에 대한 사랑을 호소하며 프랑스인들로부터 두터운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인물이다.

"산다는 것, 그것은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Vivre, c'est apprendre a aimer)"
"세상에 있는 돈을 가지고 사람을 만들지는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Avec tout l'argent du monde, on ne fait pas des hommes, mais avec des hommes et qui aiment, on fait tout)"
"굶주린 자는 빵을 갖게 하고 빵을 가진 자는 정의와 사랑에 굶주리게 하라(Que ceux qui ont faim aient du pain ! Que ceux qui ont du pain aient faim de justice et d'amour !)"
"미소는 전기보다 싸지만 전기만큼의 빛을 준다(Un sourire coûte moins cher que l'électricité, mais donne autant de lumière)"

그의 말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극빈자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아베 피에르가 인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 언어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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