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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우르르 읽는 책은 잘 읽지 않는 성격이어서, 해리 포터도 뒤늦게 읽은 편이다. 2년 전, 친구가 영국판 해리 포터(Bloomsbury 출판사의 페이퍼백)를 선물했고 읽기 시작하니 매우 재미있었다. 영어에 대한 열등감이 많았는데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는 문장 구조와 어휘가 사용된 책이긴 하지만 영어 책을 다 읽었다는 기쁨도 컸다.

▲ 해리 포터 5부
ⓒ 리건
얼마 후, '문학수첩'에서 나온 해리 포터 한글판을 뒤적뒤적하다가 원서와 내용이 약간 다른 부분을 발견했다. 그 뒤에 좀더 자세히 찾아보니, 봐줄 수 없을 정도로 번역이 잘못된 부분이 많았다. 꼭 틀렸다고 하기는 어려워도 번역을 대강대강 했다는 느낌이 드는 부분도 그랬다.

게다가 이 책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읽은 베스트셀러인데, 그 많은 사람들이 요기조기 틀린 번역본을 들고 읽고 있으니 뭔가 사회적인 자원이 잘못 배분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잘못 번역된 문장을 인쇄하는 데 잉크와 종이와 에너지가 다량 쓰였다는 개인적인 아쉬움이다.

몇 가지 짚어 보기로 하자.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란 제목부터 트집거리이다. 원제는 "Harry Potter And The Philosopher's Stone"이다. Philosopher's stone은 보통의 영어사전만 찾아봐도 나오는 말로, '현자의 돌'이라는 뜻이다. 해리 포터에 나오듯이, 이 돌은 연금술(alchemy)에서 다른 금속을 황금으로 바꿀 수 있게 해주는 신비로운 존재로 여겨졌다. 저자 롤링이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 서양에서 전통적으로 고유한 용법을 가지고 있던 용어인 것이다.

그런데 미국판에서는 이 '철학자'(Philosopher)라는 말이 어린이들에게 어렵게 느껴진다는 이유로 제목을 "Harry Potter And The Sorcerer's Stone", 즉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로 바꾸어놓았다. 그리고 이 제목은 영화 제목으로도 이어진다.

한글판에서는 분명히 블룸즈베리 출판사의 "Harry Potter And The Philosopher's Stone"을 번역했다고 되어 있는데도 다른 설명도 없이 '마법사의 돌'이라고 번역해놓았다. 원제를 살리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해리 포터 시리즈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Mr and Mrs Dursley, of number four, Privet Drive, were proud to say that they were perfectly normal, thank you very much." '정상적'인 것에 집착하고 속물적인 더즐리 부부의 특징을 드러내기 위한 도입부이다. "우리는 아~주 정상적이랍니다! 캄사합니다!"(시상식에서 유난스럽게 굴면서 인사하는 사람들을 연상하면 될 듯)의 뉘앙스.

그런데 이렇게 번역되었다.

프리벳가 4번지에 살고 있는 더즐리 부부는 자신들이 정상적이라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문학수첩 11쪽. 이하 문학수첩 *쪽은 모두 한글판 1부 첫 권을 말한다.)

'thank you very much'라는 부분이 아예 빠진 채로 번역되었다. 한글과 어순이 달라서 번역하기가 애매했겠지만, 이 소설의 얼굴같은 첫 문장인데 좀더 신경써서 번역할 수 없었을까 싶다. 정 힘들면 "프리벳가 4번지에 살고 있는 더즐리 부부는 이렇게 말하기를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이었다. '저희는 완벽하게 정상적이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식으로 두 문장으로 나누었어도 될 듯.

해리 포터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각종 고유명사의 음역을 잘못한 부분도 상당하다. 심술이 더덕더덕한 해리의 사촌 Dudley는 '더들리'라고 발음되지만 처음부터 '두들리'라고 옮겨졌다. 똘똘한 해리의 친구 Hermione는 '허마이오니'라고 발음되지만 '헤르미온느'라고 엉뚱하게 옮겨져, 시리즈 4부에서 빅터 크룸에게 이름 발음을 정정해주는 부분에서는 실소가 나오게 된다.

그 외에 Cedric은 '세드릭', Gilderoy는 '길드로이'가 더 정확한 음역이었다. 또 티블, 포우(피그 할머니네 고양이들), 스캐버, 크룩생크, 스멜팅(더들리가 다니는 학교), 호그와트 등은 모두 Tibbles, Paws, Scabbers, Crookshanks, Smeltings, Hogwarts 등으로 모두 s가 붙어 있지만, 번역하면서 모두 뺐다. Smeltings는 처음에는 '스멜팅스'라고 옮겼다가 몇 쪽 뒤부터 '스멜팅'이라고 나온다. 그리고 Paw는 포우가 아니라, '포'가 맞는 발음이다.

또한 영어에는 반말과 존대말이 없는데도, 더즐리 부부는 반말과 존대말을 비대칭적으로 하도록 번역된다. 더즐리 부인은 계속 남편에게 존대말을 하고, 더즐리씨는 아내에게 반말을 하는 것이다. 이런 번역의 관행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대강 했다는 티가 나는 오역들

역시 해리 포터 1부의 첫 쪽에 나오는 문장이다.

When Mr and Mrs Dursley woke up on the dull, grey Tuesday our story starts, there was nothing about the cloudy sky outside to suggest that strange and mysterious things would soon be happening all over the country.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었다고 세상에 금방 기이하고 신비스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더즐리 부부가 잠에서 깨어난 그 우중충하고, 흐린 화요일에 우리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문학수첩 12쪽)

제대로 번역하면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우중충하고 흐린 화요일에 더즐리 부부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바깥의 구름낀 하늘에는 이제 곧 온 세상에 기이하고 신비스러운 일이 일어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가 된다.

영국은 햇볕나는 날이 드물 정도로 매일 구름끼고 비가 온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배운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영국 하늘에 구름이 잔뜩 낀 것은 평범한 일이지, 기이하고 신비스러운 것과는 연관이 없는 것이다. (화창한 날이 많은 한국에서는 구름이 잔뜩 끼고 비가 내리려는 음산한 날씨에 범상치 않은 일이 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만.)

버논 더즐리가 매는 'his most boring tie'는 아주 희한한 넥타이(문학수첩 12쪽)라고 번역되었다. 더즐리 가족은 희한하고 비정상적인 것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들이라고 이미 나오지 않았는가. 그런데도 "최고로 따분하게 생긴 넥타이"를 어떻게 "아주 희한한 넥타이"라고 번역했는지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squeaky'는 '끽끽거리는, 삑삑거리는'의 뜻이지만 '아주 맑은'(문학수첩 17쪽)이라고 옮겨졌다.

어이없는 오역들을 몇 가지만 더 짚어보자.
whatever 'everyone' was saying - '모두'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든지'(문학수첩 27쪽)
본래 뜻 : '모두들' 뭐라고 말하든지간에'

snorted in disgust - '더러운 콧물을 쭉 들이켜더니'(문학수첩 60쪽)
본래 뜻 : '넌더리내면서 콧방귀를 뀌더니'

for holding them up - '그것들을 모두 갖고 가려 한다는 이유로'(문학수첩 70쪽)
본래 뜻 : '그들의 갈 길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또는 '그들의 출발이 늦어지게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There were only two rooms - '방도 하나뿐이었다'(문학수첩 74쪽)
본래 뜻 : '방도 둘 뿐이었다'

맥락을 잘 살피지 않아 생긴 오역도 많다. 더들리가 자기 생일에 동물원에 놀러가서 시킨 'knickerbocker glory'는 높은 유리잔에 화려하게 아이스크림, 과일, 크림을 넣은 디저트를 말한다. '파르페'라고 번역하면 적절했을 텐데 '자기가 시킨 게'(문학수첩 48쪽)라고 얼렁뚱땅 넘어갔다.

그리고 이때 더들리가 이 파르페 대신 다른 디저트를 또 시키고 나서 '해리는 그가 처음에 시켰던 음식을 먹어야 했다'(문학수첩 48쪽)라고 번역되었지만, 실은 'Harry was allowed to finish the first'라고 되어 있으므로 뉘앙스가 완전히 다르다. 파르페라면 해리가 평소에 먹어봤을 리 없는 음식이니, 해리에게는 더들리가 남긴 것이라도 먹으면 감지덕지한 일인 셈이다. 그리고 이 문장은 원작에서는 '해리는 정말 오랜만에 최고의 아침을 보냈다'와 한 문단 속에 들어가 있는 문장이다. 그러므로 '해리에게는 그가 처음에 시켰던 디저트를 먹는 것이 허락되었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문맥상 맞다.

이처럼 (아마도 책의 분량을 늘리기 위해서라고 추측되지만) 원작에서는 한 문단인데 여러 문단으로 나눈 것도 상당히 많다.

등장인물들의 말투가 잘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해그리드는 swarming -> swarmin', flying -> flyin', and -> an', to -> ter, you -> yeh, last -> las', somewhat -> summat, for -> fer, might -> mighta 처럼 투박한 (어느 지방 사투리인지도 모르겠다) 말투를 쓴다. 하지만 번역본에서는 이런 해그리드의 말투를 전혀 살리지 않았다.

노동권을 획득하지 못한 채 착취받는 꼬마집 요정(house-elf)들은 'I is finding it', 'You is Harry Potter'처럼 문법에 맞지 않는 어설픈 영어를 쓴다. 이주노동자(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 같은 맥락도 번역에서는 삭제되었다.

오역 문제에 대해 문학수첩 담당자(dance3@moonhak.co.kr)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보내왔다.

오역에 대한 근본 원인은 "영국과의 정서적 차이 부분이 있었습니다. 원어로는 깔끔하게 정리되지만 한글로 풀어 쓸 경우 늘어지거나 부적합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판타지 물에 대해 이해도가 낮은 한국적 상황 또한 큰 원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반지의 제왕에서도 많은 오역이 있었던 것이 좋은 예입니다. 지속적으로 개선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또 해리 포터 한글판의 "개정판이 나올 때마다 오역을 시정하고 있는 중"이며 "처음 발간 시와 비교하면 현재까지 20% 이상" 바뀌었고 "완벽하게 될 때까지 앞으로도 계속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지금 번역 중인 5부는 빨리 출간하기보다는 "번역자가 충실히 번역되었다고 생각할 때까지 작업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음역 문제에 대해서는 "인명의 문제는 한글 맞춤법 규정에 최대한 따른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통용되는 발음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점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번역이란 완벽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적인 수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잘못된 번역에 대해서는 책임지고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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