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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국가정보원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고영구 정보원장의 안내로 정보원 본관을 나서 기념식수장으로 향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노무현 대통령이 6월20일 취임후 처음 국가정보원을 찾았다. 지난 2월25일 대통령 취임후 약 4달만의 일이다. 처음 시행된 국정원장 청문회 때문에 원장 인선이 늦어진 까닭도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일부러 국정원 개혁이 마무리된 시점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또 이른바 권력기관을 다스리는 '노무현식 군기잡기'일 수도 있다.

'생일' 전에 대통령이 방문하는 것이 관행

국정원은 대표적인 대통령 직속기관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생일'(창설 기념일 6월10일) 전에 방문하는 것이 관례였다.

김대중 대통령(DJ)은 취임 첫해 5월에 국정원을 방문했다. 김 대통령 또한 이종찬 국가안전기획부장의 국가정보원으로의 개혁작업이 마무리되기를 기다려 98년 5월12일에 국정원을 방문했다. 안기부는 이날부터 '국가정보원'이라는 새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DJ는 이날 업무보고를 받고 안기부 직원들과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하고 기념식수를 한 뒤 원훈석(院訓石) 제막식에 참석했다. 이종찬 안기부장은 DJ가 친필로 '정보는 국력이다'라고 쓴 원훈석 제막식을 기해 '국가정보원'으로 거듭나려는 이벤트를 준비했다.

그런데 DJ는 화강암 원훈석을 둘러보다 뒷면에 '대통령 김대중'이라고 쓰여진 것을 보고 이종찬 부장에게 삭제할 것을 지시했다. 대통령 이름을 남기지 않아야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정보원도 영원하고 이 원훈석도 남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국정원은 화강암 덩어리에 새긴 '대통령 김대중'을 깎아내야 했다.

▲ 김대중 대통령이 98년 5월 12일 국가안전기획부를 방문, 이종찬 부장 등 관계자들과 함께 '국가정보원'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정보는 국력이다' 라는 내용의 원훈석을 제막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안기부가 수행한 업무의 7할은 '반DJ'와 관련된 것"

김대중 대통령은 이날 국정원에서 "나는 여러분에게 부당한 지시를 하지 않는다"면서 "여러분도 부당한 지시를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국정원의 철저한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다.

국정원 한 직원은 기자에게 "DJ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안기부·중앙정보부가 수행한 업무의 7할은 '반DJ'와 관련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실토했다. 이후락의 중앙정보부가 수행한 김대중 납치 및 암살 공작인 'K공작'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DJ는 과거 'K공작'에 관여한 직원들을 문책하지 않았다. DJ의 안기부 방문은 개인적으로는 그때가 세 번째였다. 88년과 96년 야당총재 자격으로 안기부를 방문한 적이 있다.

'성격 급한' 김영삼 대통령(YS)은 취임한 지 채 한 달도 안되어 국가안전기획부를 찾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93년 3월15일 '남산 시절'의 안기부를 방문해 직원들을 모아놓고 직원들을 뜨끔하게 하는 '일장 연설'을 했다. 요지는 "안기부는 과거 정치공작의 오명을 벗고 거듭나야 한다. 정치공작 등 불법행위는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거였다.

눈물과 땀 요구하며 안기부를 호되게 질책한 YS

'하나회'를 숙정하는 등 서슬 퍼런 시절이기도 했지만, 3명의 '문민 대통령' 중에서 가장 호되게 국가정보기관을 질책한 것은 YS였다. YS는 이날 두시간 가량 머물며 청사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식당 아주머니들과도 일일이 악수를 하는 등 자상한 면을 아낌 없이 보였지만 직원들은 뼈 있는 YS의 말에 긴장을 풀지 못했다고 한다.

YS는 안기부의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역설했다. YS는 "과거 정치적 변동기에 일부에서 정치적 관여와 물의를 일으켜 국민들에게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고 전제하고 자신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눈물과 땀'을 요구했다.

"나는 취임사에서 눈물과 땀을 강조했습니다. 내가 말한 눈물은 반성을 뜻하며, 땀은 고통과 인내를 말하는 것입니다. 눈물과 땀이 없이는 안기부는 물론, 이 나라가 새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안기부 요원들은 모두 새로운 안기부 요원으로 다시 태어나십시오. 변화와 개혁은 미룰수 없는 시대의 순리입니다. 변화와 개혁을 주저해서는 안됩니다."

YS 방문일에 장세동 전 안기부장 구속기소 '선물'한 안기부

YS가 안기부를 방문한 것은 지난 89년 구 통일민주당 총재시절 안보정세보고 청취를 위한 방문 이후 두 번째였다.

안기부는 이날 안기부를 방문한 '직속상관'인 대통령에게 '선물'을 했다.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을 재수사해온 검찰은 이날 이 사건을 배후 조정한 장세동 전 안기부장과 이택돈 전 신민당 의원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업무방해 등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이날 최종 수사결과 발표에서 "이 사건은 장 전 안기부장이 대통령직선제 개헌요구를 막기 위해 이택희·이택돈씨 등 구 신민당 비주류 의원들에게 6억원의 자금을 지원, 조직적으로 일으킨 폭력행위"라며 "당시 안기부 조정관 등 안기부 관계자 경찰 관계자 등을 차례로 소환, 조사한 결과 안기부의 조직적 개입사실이 드러나지 않아 장씨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지었다"고 밝혔다.

국정원 다루는 접근법 각자 다른 3인의 '문민 대통령'

문민 대통령 3인이 처음 방문한 국가정보기관을 대하는 방식도 각자 달랐다.

DJ는 안기부의 업무보고가 끝나자 "안기부 스스로 개혁하려는 의지가 강한 것을 보고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간부들에게 궁금한 사항을 질문했다. 이에 반해 노무현 대통령(MH)은 직원들에게 '자발적 개혁'을 주문하면서 직원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DJ의 첫 질문은 '안기부의 정치적 중립 방안'이었다. 당시 질문을 받은 신건 2차장은 "앞으로 대공수사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DJ는 "과거 안기부는 국내정치정보 수집이 본연의 업무인양 국정에 개입한 사례가 많았다"고 지적하고 "세계적으로 정보수집 경쟁이 치열하고 그에 따라 국운이 좌우되는데 시·도지부나 시·군 조정관이 과연 필요하냐"고 핵심을 짚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DJ는 2000년 6월 정상회담 직후에 국정원장 공관에서 임동원 원장과 부부동반으로 식사를 했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국정원장 공관에서 식사를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김 대통령 부부가 국정원장 공관을 방문해 부부동반으로 만찬을 한 것은 두 번씩이나 비밀방북을 해가면서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임동원 원장에 대한 '각별한 감사'의 표시였다.

YS "제까짓 것들이 뭘 안다고 그래"

YS도 MH처럼 임기초에 국가정보기관에 대한 인식이 썩 곱지 않았다. 정치권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당시 "김 대통령은 초기 안기부의 정보보고가 올라오면 '제까짓 것들이 뭘 안다고 그래'라며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MH는 한 직원이 "매일 아침 국정원에서 생산하는 일일보고서를 읽어보는가"라고 묻자 "저의 책임 있는 참모들이 일일보고서를 보고 책임 있는 참모들을 통해서 보고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솔직'한 것은 좋지만 직원들의 사기(士氣)를 떨어뜨리는 '쥐약이다'.

국정원은 30쪽 가량의 보고서를 매일 아침 대통령에게 밀봉해 보고한다. 이른바 '조보'라는 것이다. 비서실장이 취합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외교통상부, 노동부, 교육부, 경찰청 등의 '일일보고'와 달리 국정원 보고는 대통령이 직접 개봉해 읽어본 뒤 필요한 경우 해당 수석비서관에게 전달되는 것 외에는 모두 파쇄해왔다. 그만큼 극비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조보'를 안본다는 것이니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

MH의 국정원 개혁방향은 "정권을 위한 국정원 시대를 끝내고 국민을 위한 국정원 시대를 열자"는 것으로 압축된다.

이종찬 초대 국정원장은 DJ가 잘 쓰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자'는 말을 빌려 "정보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 국정원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YS 시절인 95년 9월 서울 내곡동에 통합 신청사를 준공하면서 안기부가 '새 술은 새 부대에'를 외치며 내건 안기부 슬로건은 '국민에 안기는 안기부'였다. MH가 6월20일 국정원을 방문해 소나무 한 그루를 기념식수하고 그 앞에 세운 표석에 쓴 글귀도 "국민의 국정원으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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