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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검팀은 10일 대북송금 당시 산은 총재였던 이근영씨를 구속기소, 영업1본부장이었던 박상배씨를 불구속기소했다.
ⓒ 오마이뉴스 유창재
<최종 편집: 10일 오후 11시 50분>

공소장에 드러난 산은의 현대계열사 대출 과정


'대북송금' 의혹사건 수사 55일째를 맞고 있는 송두환 특별검사팀은 지난 2000년 6월 현대 계열사에 대한 산업은행 대출과정에 청와대와 금융권 등 고위 관계자들이 직접 개입한 사실을 밝혀냈다.

특검팀은 10일 산업은행에서 지난 2000년 6월 현대상선과 현대건설에 각각 4000억원, 15000억원을 대출하는 과정에서 대통령 경제수석 비서관인 이기호씨의 지시로 이근영 당시 산은 총재와 박상배 영업1본부장이 공모하여 대출편의를 제공한 사실을 밝히고, 이에 이근영씨와 박상배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업무상 배임) 혐의로 각각 구속, 불구속 기소했다.

대출당시 당시 은행업무 전반을 총괄하던 이근영씨와 법인대출 실무를 총괄하던 박상배씨는 경제수석이었던 이기호씨와 공모해 현대상선과 현대건설의 자금 상황, 부채현황, 대출금의 용처, 대출금 회수가능성 등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적정한 담보를 제공받은 후 대출을 해주어야 할 업무상의 임무를 위배한 혐의다.

이날 서울지방법원에 접수된 공소장에 따르면, 이기호 경제수석은 지난 2000년 6월 2일 박상배 영업1본부장에게 전화해 "현대상선에 대한 여신지원을 검토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어 다음날 조찬회동에서 이근영 산은 총재에게 대북사업을 추진중인 현대계열의 유동성 위기를 구출하고 부도가 나면 햇볕정책에 막대한 지장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현대 건에 대해 국책은행으로서 지원해달라, 신속히 처리해달라"는 취지로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전 경제수석은 이틀 후인 5일 이근영씨에게 "현대상선 사장 김충식이 오늘 찾아갈 것이니 대출을 서둘러 달라"는 전화를 했다는 것.

그 당시 현대상선은 경영권 분쟁과 대외 신용도 하락 등 재정상태가 악화일로에 있던 상황으로 4000억원에 이르는 거액 대출을 상환할 가능성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근영씨는 6월 7일 박상배씨에게 긴급히 대출을 지시했고, 박씨는 대출금 변제능력에 대해 아무런 검토 없이 무담보로 동일인 신용공여한도를 초과한 자금을 대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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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팀은 현대건설 대출에 대해서도 이기호 전 경제수석이 같은달 20일 박상배씨에게 "현대선설에 대한 여신지원이 정말 불가능한지 방법을 검토해 달라"는 전화를 했으며, 박씨로부터 사모사채 인수 방법으로 대출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이근영씨에게 전화로 "현대에 대한 여신지원이 가능하다고 하니 여신지원이 꼭 이뤄지도록 협조해 달라"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밝혔다.

당시 현대건설도 경영권 분쟁과 대출신용도 하락으로 주가가 폭락한 실정이었고, 부도설로 인해 2000년 하반기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 7053억원에 대한 차환발생이 불가능한 것으로 예상된 상태였다. 또 금융기관들이 기존 대출금을 회수하는 등 극히 악화된 재무구조 상태에 있었고, 대북경제 사업과 관련히 긴급히 1억5000만 달러를 북측에 송금한 직후였다는 설명이다.

더구나 대출 받더라도 상환할 가능성이 없었고 산은 대출 규정상 시설자금이 융자되지 않은 업체에 운영자금 대출이 불가능해 건설회사에 대출을 시행한 바가 없음에도 6월 26일 이근영씨는 박상배씨에게 여신지원을 하도록 지시했다. 박씨는 별다른 검토를 하지 않고 무담보로 동일인 신용공여한도를 초과한 채 실질적으로 양도 가능성이 전혀 없는 현대건설의 사모사채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1500억원을 대출해 주었다.

이날 오후 9시경 서울지법에 공소장을 접수한 특검팀은 사실상 산은의 현대 계열사 대출관련 의혹사건 수사를 마무리 지었다.

특검팀, 현대 대출 수사 마무리…변호인 "돈 다 돌려받았는데 어찌 배임이…"

▲ 이근영 전 산은 총재.
ⓒ 오마이뉴스 유창재
"이근영씨는 대북 관계를 모르고 정책적으로 판단해 대출을 해줬다. (이기호씨가) 전화한 것을 가지고 '외압'이라고 해야 하나. 당연히 정책회의를 했던 것은 맞고, 경제 생리상 공식적인 부분보다 비공식적인 회의가 당연히 있었던 것은 아니겠냐. 이근영씨에게 사실 '외압' 부분이 있었다면 변호인으로서 유리한 판결이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기에 사실이라고 할 수 없다. 본인도 전화받은 것에 대해 외압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이근영씨에 대한 구속기소 처리가 이뤄지기 전 이씨의 변호인인 이건행 변호사가 특검사무실에서 만난 기자들과의 대화에서 밝힌 말이다.

무엇보다 이건행 변호사는 배임 혐의에 대해 "(현대) 상선에 대한 대출이 떼일 염려가 있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다 받았다"면서 "결국은 다 돌려 받았는데 그것이 왜 배임 혐의가 되는지, 결과를 보면 처벌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변호사는 "산은이 지원해서 떼인 돈이 있느냐, 그리고 어찌됐든 현대건설도 (부도가 나지 않고) 살았지 않느냐"며 "과연 그 당시 현대가 부도났으면 경제가 어떻게 됐을지…, 만약 그 당시 잘못 됐으면 우리 경제에 미친 파장이 어땠을지 생각해 봐야한다"고 말했다.

또한 '당시 4000억원이란 돈의 규모는 누가 결정했나'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근영씨는 당시 현대에 돈이 나가는 것이 꼭 필요할지 검토하는 직책은 아니었으며, 결과적으로는 현대에게 4000억원이 충분했다"면서 "(전해 듣기로는) 김충식씨가 그 정도 액수가 필요하다고 한 것은 맞으며, (이근영씨가) 얼마정도 필요하다고 물었을 때, 얼마 필요합니다 했던 것으로 안다"고 답변했다.

이 변호사는 "분명한 것은 그 당시 현대로 돈을 대출하기로 결정한 것은 북으로 돈이 가는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출 책임과 관련해 "박상배씨가 전결자이기에 책임져야 하는 것이 맞다"면서 이근영씨는 단지 총재로서 보고 받는 사람일뿐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 변호사는 기소가 이뤄지면 바로 보석을 신청할 것이라고 했지만, 이번 사건이 보통 사건이었다면 쉽게 보석신청도 되는데,정치적 사건이기에 굉장히 난처한 부분도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특검팀은 이근영씨를 지난달 20일 11시 45분경 조사 도중에 '긴급체포' 했으며, 5월 24일 산은이 현대상선과 현대건설에 대해 동일차주 여신한도규정 등을 위배하면서 각각 4000억원과 1500억원을 대출할 당시 사전 보고를 받고도 불법 대출을 승인한 혐의로 구속했다.

특검팀은 박상배씨를 지난 4월 24일 첫 소환해 산은 규정까지 어겨가며 4000억원 대출을 전결 처리한 점 등을 집중 추궁했었다. 박씨는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대우그룹에 이어 현대그룹까지 함께 무너지는 것은 국가경제에 파탄을 가져올 것으로 생각하고 대출을 전결 처리했다"고 해명했었다.

이날 이근영씨와 박상배씨를 구속·불구속 기소처리한 특검팀은 김보현 국정원 3차장을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특히 특검팀은 김씨에게 '밤샘조사' 동의서를 받아 박광빈 특검보가 직접 조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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