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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일보 5월 16일자 부일만평
남북관계 어둡게 한 한미정상회담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노무현 정부의 대북·대미 정책의 실체가 점점 드러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국민의 정부의 '햇볕정책'을 사실상 폐기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과 함께 한미공조 강화를 기조로 한 대북정책으로의 선회 여부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한미정상회담 결과 발표직후 국내언론에서는 노 대통령이 미국에 끌려다니는듯한 저자세 외교를 펼쳤다고 비판한 바 있는데 이는 노 대통령의 평소 대미관에 대한 지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15일 발표된 한미정상회담의 결정체랄 수 있는 '공동성명'은 원론적인 차원에서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고 있을 뿐 온통 '한미동맹 강화' 의지만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대북 선제공격 카드를 포기할 수 없음을 단정적으로 밝히고 있다. 즉 성명은 북핵문제에 대해 현 상황에서 나아가 '추가적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언급하고는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경제봉쇄, 해상봉쇄 등의 강경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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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이번 성명에서 남북교류와 협력문제를 북한 핵문제와 연계시킴으로써 국민의 정부에서 추구했던 '정경분리'의 원칙을 사실상 폐기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경분리'는 남북관계 발전의 '훼방꾼' 부시의 행동을 막는 강력한 방패막이였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스스로 그것을 걷어 치웠다. 이제 미국이 거의 마음대로 남북교류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고 할 수 있다.

부시행정부 출범 뒤 미국은 한국에 대해 남북관계를 단절하고 미국의 대북공세에 한국이 동조할 것을 강요해 왔다. 2001년 3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부시와의 정상회담 때, 지난해 말 미국이 '맞춤형 봉쇄'를 들고 나왔을 때 등이 기억에 남는 중요한 사건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러한 미국의 요구를 거부해왔다. 보수언론들이 김대중-부시 한미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났다'고 폄하했지만, 지난 2001년 한미정상회담 때의 공동발표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앞에 자리잡고 있다.

"양 정상은 남북한간 화해.협력이 한반도의 평화와 동북아시아의 지속적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부시 대통령은 한국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지지와 함께 남북문제 해결에서 김 대통령의 주도적 구실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였다.

양 정상은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남북관계 및 동북아시아의 안보에 긍정적으로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양 정상은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를 계속 유지한다는 공약을 재확인하고, 이 합의의 성공적 이행을 위해 필요한 제반 조처를 취하는 데 북한이 동참할 것을 촉구하였다."


미심쩍었던 평화번영정책 4대 원칙

▲ 지난 2월 25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는 노무현 대통령
ⓒ 주간사진공동취재단
노무현 정부는 출범하면서 '평화번영정책'을 내놓았다. 통일부가 지난 3월 내놓은 <참여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이라는 문건은 이 정책을 "기존의 대북화해협력정책(포용정책, 햇볕정책)을 내용적으로나 형식면에서 보완·발전시킨 대안"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출범 뒤의 행동은 햇볕정책의 성과를 무시하고 이를 사실상 폐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그들의 대북·대미 정책은 보수세력의 그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는 이번 공동성명에 대한 국내 보수세력들의 찬사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노 대통령은 2월25일 취임사에서 평화번영정책의 4대 원칙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첫째, 모든 현안은 대화를 통해 풀도록 하겠습니다.
둘째, 상호신뢰를 우선하고 호혜주의를 실천해 나가겠습니다.
셋째, 남북 당사자 원칙에 기초해 원활한 국제협력을 추구하겠습니다.
넷째, 대내외적 투명성을 높이고 국민참여를 확대하며 초당적 협력을 얻겠습니다. 국민과 함께하는 평화번영정책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처음 이 4대원칙을 대했을 때 미심쩍은 구석이 많았다. 그러다 최근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그 의미를 알게됐다.

일단 '상호신뢰를 우선하고 호혜주의를 실천해 나가겠다'는 말에서 '호혜주의'는 일반인들이 이해했던 것과는 애초부터 '코드'가 달랐다. 이 말은 보수세력들이 말하는 '상호주의'와 별다른 차이가 없어보인다.

보수세력 가운데서도 극우파들을 제외하고는 남북교류와 대북지원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남북관계 진전의 중요한 계기가 된 남북기본합의서나,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모두 노태우 정권 때 이뤄졌다.

그러나 '상호주의'는 북한이 내놓는 것이 있어야 우리도 주겠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하겠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항복'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북쪽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극히 좁다.

미국은 지난해 1월 미 의회에 제출한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서 선제 핵공격 대상국가의 하나로 북한을 적시했다. 올해는 지하벙커 파괴용 소형핵무기 개발에 나섰고 이 무기의 사용 대상에 북한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이다.

체제보장과 미국의 선제공격 위험이 없어지지 않는 한 북한이 내놓을 카드가 거의 없다. 이것을 알면서도 '상호주의'를 말하는 것은 애초부터 대화와 타협의 의지가 없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상호주의는 겉으로 대등한 관계를 말하지만 결국 남북관계를 극단적 대립으로 몰고 간다. 노무현 정부는 그들이 말하는 호혜주의가 보수세력들의 상호주의와 어떻게 다른지 이제 설명해야 할 때다.

햇볕정책은 결국 남는 장사다

햇볕정책은 거칠게 말하면 '돈으로 평화를 사는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대가로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면 해외투자자금이 안심하고 들어올 수 있다. 한국이 외자를 들여올 때 무는 '가산금리'도 내려간다. 이것만으로 한국은 북한에 흘러들어간 돈보다 몇 배의 이익을 볼 수 있다.

노태우 정권은 북방외교를 추진하면서 옛 소련에 40억 달러를 줬다. 결국 한국은 일부는 떼이고 일부는 러시아제 무기로 현물로 상환받고있다. 김영삼 정권 때 북한 경수로 공사비 46억달러 가운데 70%를 부담하면서도 단 한 마디의 발언권도 확보하지 못했다. 국내 보수세력들이야말로 '퍼주기'의 원조들이다.

북한 정권이 갑자기 무너지면 현재 한국의 경제능력으로는 통일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인 영국 피치사는 최근 펴낸 '한국 보고서'에서 남북한 통일비용이 10~15년간 총 2000억~5000억달러(240조~6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피치는 "북한 정권의 붕괴, 전쟁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남북통일은 남한의 재정부담이 늘어 국가신용등급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개성공단 등 지금부터 서서히 북한에 인프라를 구축하면 나중에 남한의 부담을 훨씬 덜 수 있다. 이는 비유하자면 '할부'로 물건을 사는 것이다.

현재 남한 안의 지역갈등이 심하다. 그러나 북한 정권의 갑작스러운 붕괴 뒤 남북한 주민사이의 갈등은 이보다 더 심각할 것이다. 통일 전 남북한의 교류로 서로에 대한 이해가 형성되면 이 갈등을 훨씬 더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노무현 정부가 말한 동북아 중심국가는 남북한 긴장완화와 긴밀한 상호이해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햇볕정책은 동북아 중심국가로 향하는 유력한 수단이다. 그러나 취임 몇 달이 다되도록 노무현 정부가 동북아 중심국가에 대한 그 어떤 계획을 수립했다는 말을 들어보지못했다.
/ 김태경 기자


한국, 남북관계에서 미국의 종속변수화

세번째 '원할한 국제협력의 추진'도 이제 맥락이 뚜렷해진다. 북한이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그들을 밖으로 나오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원활한 국제협력의 대상과 주도세력은 대체 누구인가?

현재 노무현 정부의 외교는 철저하게 미국과 일본에 편중되어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중국, 러시아는 물론 유럽연합까지 동원해도 부족한 상황에서 모든 외교 초점은 한미 동맹에만 집중되고있다. 이것은 보수세력들이 말하는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한미일 삼각공조를 통한 대북압박'과 비슷하다.

국민의 정부도 국제적인 협력을 누누히 강조했다. 그러나 그것은 남한이 앞장서서 북한과 관계개선을 통해 그들을 은둔상태에서 나오도록 힘쓰고 있으니 이 노력에 국제사회가 동참해 달라는 것이었다.

햇볕정책에서 말하는 국제협력은 남한이 주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평화번영정책에서 남한은 주도자이기는 커녕, 미국과 일본의 종속변수에 불과하다. 이 조항 앞에 붙어있는 '남북 당사자 원칙'이라는 말은 이제 '립 서비스'로 전락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곳은 맨 마지막 부분이다.

'초당적인 협력을 얻겠다'는 말의 비현실성이다. 남북문제에 대한 입장차이는 국내 개혁세력과 보수세력을 가르는 '비무장지대'다. 이 문제는 각 정치세력의 정체성과 그대로 직결된다. 이런 사안을 두고 양 쪽으로부터 '초당적 협력'을 얻겠다는 말은 '아무 욕도 먹지않겠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첨예한 사안에 대해 아무 욕도 먹지 않고 일을 하겠다는 것은 어느 소설에 나오는대로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심장을 도려내겠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이제 노무현 정부의 지지자들 입에서는 비판이, 그 반대자들 입에서는 칭찬이 흘러나온다. 초당적인 협력은 커녕 오히려 지지세력이 바뀐 게 현실이다.

국내정치에 밀린 남북관계

노무현 정부가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하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한 의미가 분명해졌다. 노 대통령은 특검수용에 대해 '투명한 대북관계를 위해, 그리고 여야 상생정치를 위해서'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선이 끝난 뒤 대북송금 문제를 앞장서 끄집어낸 사람은 바로 민주당 신주류였다. 지난 1월 15일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자가 4000억원 대북송금설과 관련해 "김대중 정부가 책임지고 털고 가라"며 정치쟁점화했고 곧바로 특검으로 이어졌다.

'상생의 정치'를 위해 특검을 수용한다던 노 대통령은 국정원장 임명 때는 야당은 물론 일부 여당의원의 반발도 무시하면서 '상생의 정치'를 폐기했다. 이 글에서 고영구 국정원장의 임명을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임명을 찬성한다.

그러나 남북관계를 파괴할 수 있는 대북송금 특검은 국정원장 임명보다 10배는 중요하다. 대북송금 특검은 '소신(?)'을 저버리면서 수용하고, 그보다 비중이 훨씬 떨어지는 사안은 '소신'을 고집하는 노 대통령의 태도는 그가 남북관계에 어떤 비중을 두고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는 민족의 운명이 달려있는 남북문제를 정권의 운명과 관련된 국내 정치보다 한참 하위변수로 보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하면서 노 대통령은 "국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한미공동성명은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한미동맹의 강화 의지를 몸으로 보여주고 이를 전 세계에 선언한 '의도적 선택'이었음을 드러냈다.

노 대통령이 이번 방미 기간 중 보여준 낯뜨거운 친미 언행을 단순한 '립서비스'로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의 외교적 힘, 미국에 대한 한국의 발언권은 결코 '미국의 신임'을 받는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한미동맹 강화론'은 미 행정부의 갑작스런 정책변화, 4년이나 8년마다 이뤄지는 정권의 변화에 따라 한국의 대북정책이 항상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렇게 되면 남북사이의 신뢰는 만들어질 수 없고 한국 외교는 미국의 표정만 살피는 '눈치 보기', '환심 사기'로 전락한다.

남한이 독자적 구실을 할 수 없다면 북한 입장에서 굳이 남한과 대화를 할 필요는 없다. 이는 북한이 통미봉남(通美封南)정책을 쓸 수 있는 아니, 쓸 수밖에 없는 조건을 형성한다.

북한과 미국이 당장 전쟁이라도 할 듯이 대립하다가 갑자기 서로 태도를 바꿔 접촉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이때까지 미국의 뒤에 서서 강경발언을 쏟아내던 한국정부는 '닭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식'으로 미국의 진의를 살피느라 허둥댔다. 국민의 정부 이전의 한국 외교에서 숱하게 보던 모습이다.

지난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하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서둘러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평양으로 날아갔다. 동북아 외교전에서 소외되는 것 아니냐며 충격을 먹은 일본은 한국의 충고를 받아들여 북한과의 관계정상화에 나섰다. 그리고 북한을 압박하던 부시 행정부는 당황했다.

이 때 그동안 항상 주변 강대국의 눈치만 봤던 남한과 북한은 거꾸로 동북아 외교의 중심이 됐다.

평화번영정책의 '정체'는 무엇인가?

지난해 12월 말 미국이 북한에 대한 '맞춤형 봉쇄'를 취하려고 했을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공산국가에 대해 냉전시대에도 억압과 고립화가 성공한 일이 없다. 소련에서도, 동유럽에서도, 중국에서도, 월맹에 대해서는 전쟁까지해도 못했다"며 부시에 정면으로 맞섰다.

중국과 러시아가 맞춤형 봉쇄에 반대하고, 일본도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자 거꾸로 부시 행정부가 궁지에 몰렸다. 부시 행정부의 강경책을 제어할 수 있는 힘, 한국 외교의 능력은 바로 이런데서 나온다. 아무리 '부시의 푸들'이 되어 이쁨을 받는다해도 '푸들은 푸들'일 뿐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일부에서는 한국과 미국 사이의 갈등이 불거지면 무디스나 S&P 등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낮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정성을 의심받는 신용평가회사들이 주는 점수보다, 남북한의 신뢰를 바탕으로한 한반도 평화가 훨씬 더 한국의 신용을 높게 유지시킨다는 것을 얼마전까지 우리는 똑똑히 확인했다.

일부 노무현 지지자 가운데 '한미갈등=경제파탄' 논리를 들어 그의 행보를 옹호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국내 보수세력들이 한미동맹 강화를 강조하는 중요한 근거다. 이렇게 말하는 '노무현 지지자'들은 그들 스스로 보수주의자임을 자신도 모르게 '커밍아웃'하는 것임을 알아야한다.

혹자는 노무현 정부가 처한 어려움을 이해하자고 한다. 그러나 취임 뒤 그들의 행보는 어려움에 처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의 '대미 굴종'은 결코 '전술적 선택'이 아니라 '전략적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이제 노무현 정부는 부시에게만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허심탄회하게 얘기해야 한다.

즉 평화번영정책이 햇볕정책을 보완, 발전시켜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한미동맹 강화로 북한을 압박하고 정 안되면 전쟁까지 불사하겠다는 것인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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