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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국가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고문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상임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준곤 변호사가 9일 인혁당 사건 희생자 28주기를 맞아 <오마이뉴스>에 글을 올렸다...<편집자 주>

내가 대학에 들어간 그해 봄에 그분들의 전격적인 사형 집행이 있었다. 그후에도 거듭된 언론을 통한 세뇌 작업에 의해 나는 엄청난 간첩단이 있었고 그들이 운동권 세력을 배후 조종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후에 시간이 지나며 여러 곳을 통해서 정보를 접한 후에 의심이 생기고 진상규명하면 억울한 죽음이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사법살인'이라는 체계화된 책자가 나온 후에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다 추모 행사, 추모비와 관련하여 여러 사람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또는 불구속으로 기소가 되고 변호사로서 그들을 위해 변론에 관여하다가 뜻하지 않게 사건 속으로 불려 가게 되었다.

인혁당 재건위에 연루되어 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의문의 옥사를 한 장석구 선생님에 대해서 직권 조사를 하게 되었는데 장석구 선생님의 의문사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야만 했다.

직접 사건을 지휘하고 당시의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을 접하고 생존하고 있는 피해자를 만나서 직접 경험한 사실의 진술을 듣고 고문에 관여하거나 조서를 작성한 전직경찰들을 조사하고 재판을 지켜본 호송 교도관을 만나면서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고문한 중정 직원 이름 숨겨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전신)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고문의 방법으로 필요한 자백을 받아내서 자술서를 쓰게 한 후 지방에서 차출한 경찰로 하여금 진술에 근거하여 조서를 작성케 하여 증거를 만들었다. 이는 고문과 조서작성을 분리하여 조서작성한 경찰의 이름만 드러나게 하여 고문한 중정 직원의 이름은 숨김으로서 훗날 가혹행위를 은폐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였다.

유신이란 괴물 앞에서 양심을 지키려고 했던 많은 피해자들이 어두운 지하실에서 육신이 견딜 수 없는 극한 상황까지 떠밀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악마'가 내미는 서류에 서명과 날인을 요구받을 때 그분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자포자기일까 분노일까 저주일까.

하필이면 그분들이 왜 그러한 고통을 겪어야 할까. 권력에 도전하거나 비판하는 세력은 누구든지 용공세력으로 조작하여 죽일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조성해 독재권력을 이어가기 위한 희생양으로 선택된 팔자를 탓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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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의 조사권이 미약하기 때문에 고문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를 수집하는데 조사관들은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했다. 끈질긴 추적 끝에 고문한 사람을 찾아내서 고문당한 피해자와 마주 않게 하여 대질을 시켰다.

"고문 장면 보기는 했지만 난 안했다"

그러나 고문한 사람은 고문당한 사람의 구체적인 진술에 대해서 부인으로 일관하고 눈이 마주치는 것을 극구 피하면서 다른 소리를 하였다. 그런데도 가끔씩 한 조각 양심이 작용했는지 다른 사람의 고문 사실에 대한 목격담을 털어놓으면서 마음의 부채를 갚으려는 사람이 있었다.

그나마 그러한 진술 덕분에 벽돌을 쌓듯이 하나 하나 맞추어 나갔고 퍼즐을 풀 듯이 진실에 접근해 갈 수 있었다. 호송교도관의 목격진술, 재판의 변론을 담당했던 변호사, 진술조서에 관여했던 전직경찰들의 진술이 진실 접근에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군사법원에서 공판조서를 허위작성한 사람처럼 중요한 참고인들은 대개 해외에 거주하였다. 조사관을 해외에 파견하여 조사를 시켰더니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는 회한을 얘기하면서도 조서 작성에는 협조하지 않았다.

지금도 뻔뻔스럽게 정당함을 강변

아직도 이 땅에는 그 때의 주역들이 여전히 사회의 주류로서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작용한 것 같았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는 당시에 하수인으로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들(중정직원, 조사경찰관, 기소와 재판에 관여했던 검사와 판사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세력이 이사회의 주류임을 의심하지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지금도 뻔뻔스럽게 정당함을 강변하고 있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안전하게 보호받을 것이라는 점에서 확신을 갖고 있는 것 아닐까?

그분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 그리고 도저히 믿기지 않는 죽음, 가족들이 긴 세월동안 겪은 아픔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됨으로서 조사관들도 사건조사와 판단을 책임질 위원들도 마냥 숙연해질 뿐이었다.

그리고 사건을 발표한 후에 난 분노했다. 국민들이 너무도 무덤덤하고 그저 지나가는 뉴스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의 독립 후에는 마땅히 독립유공자를 예우해 주어야 한다. 민주화 이후에는 민주화에 피를 흘린 유공자를 예우해 주고 그 가족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사죄하고 납득할 정도의 보상을 해 주는 것이 정의로운 국가가 아닐까.

법적 절차가 필요하다면 조속히 그 절차를 이행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가시적인 절차를 실행하지 않는 이 땅은 민주화가 아직도 진행형임이 분명하다. 민주화가 되는 날 독재에 협조하고 민주인사를 탄압하고 피를 흘리게 한 그 악의 세력에 대해서는 진상을 규명한 후 부정한 이익을 환수하고 피선거권을 제한하여 공직 취임을 제한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함께 분노하지 않는다면 희망을 얘기할 수 없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공권력으로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는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계속 권세와 영화를 누리고 아직도 떵떵거리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함께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희망을 얘기할 수 없다.

▲ 김준곤 변호사
ⓒ 2003 김광재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분들이 꿈꾸었던 사회, 인권과 복지로 인간의 생명이 더없이 소중한 그러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우리들의 책임이다. 인혁당재건위 사건에 연루되어 사법살인으로 희생된 8분 외에도 고문과 장기간의 수금생활의 후유증으로 인해 일찍 돌아가신 분들, 그리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을 안고 살아가시는 분들, 그들이 어두운 지하에서 고문을 당할 때 침묵하고 수수방관했던 우리들이 그 뜻을 이을 책임이 있다. 난 이분들이 이 사회에서 어떠한 예우를 받느냐에 따라서 이 사회의 건강성과 민주화의 수위가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판단 기준으로 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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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에서 사회부 문화부 편집부 등을 거쳤습니다.오마이뉴스 대구/경북지역 운영위원회의 제안으로 오마이뉴스 기자로 일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대구경북지역 뉴스를 취재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마이 뉴스가 이 지역에서도 인정받는 언론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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