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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성남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많은 국민들과 만나 사연과 고통과 의견을 들었다. 우리는 그 과정이 단지 표를 얻기 위한 과정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난 후 기자회견장의 뒷 배경에 큼지막하게 써 놓은 문구가 있었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만나야 할 대통령’ 시리즈는 바로 그 문구의 의미에 맞게, 국민 한 명 한 명이 대통령인 시대에 우리 사회 각계의 사람들의 삶과 고통과 희망을 듣고자 한다. 이 시리즈는 총 8회에 걸쳐 진행되며, 줌마네 아줌마 자유기고가들이 참여했다. 이번이 다섯 번째이다. <필자 주>


“이번엔 누가 해 볼까요? 가족과 행복했던 일에 대해 또 발표해 볼 친구?”
“저요.” “저요.”
“백설 공주, 수민이. 그림 들고 앞으로 나와서 발표해 보세요.”
“전 우리 가족이 공원에 갔던 날을 그렸습니다. 우리 아빠 정태우, 우리엄마 이주희, 우리오빠 정재현, 동생 정수연, 이건 나 김수민 이고요.”

“어? 수민이만 왜 달라요? 수민이 이름을 잘못 썼다. 하하하.”
“수민이는 자기 이름도 모른대요~ 크크큭. 히히히.”
“아냐. 난 김수민인데? 난 김수민 맞는데….”

▲ 우성남
ⓒ 우성남
수민아!
잘 지내니? 10여 년 전 수민이의 미술을 가르쳤던 선생님이란다. 지금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르는 너에게 이렇게 불쑥 편지를 쓰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 등과 참여 정부 과제 등을 살펴보다가 ‘양성평등 사회’라는 말을 듣는 순간, 오래된 내 마음속에 있던 작은 짐 하나를 떠올렸다. 그 짐은 다름 아닌 수민이 너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그 미안함이 바로 그 날의 미술시간으로부터 비롯되었으니 나는 수민이를 떠올리면 지금도 그 미술시간에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를 잊을 수가 없단다.

아마 가정의 달이라는 5월 즈음이었을 게다. 그날 우리들은‘가족과 행복 했던 일’을 주제로 그리기를 했었지. 가족과 봄나들이 가는 그림, 가족이랑 포도밭 갔던 일, 아빠 목마타고 가는 일, 할아버지 댁에 갔던 일 등등 친구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한 행복한 순간들을 그렸지. 그림을 완성한 사람은 그림 밑에 ‘가족이름’을 쓰는 것으로 맺는 시간이었지.

그리고 이어진 시간은 가족그림을 설명하는 시간이었고, 결국 나는 그 시간에 어색하고 조금은 당황해하던 수민이, 너의 얼굴을 보았지. 분명 “내 이름은 김수민인데”를 반복하다가 아이들이 ‘이름도 모르는 바보’라고 놀리자 뭐가 뭔지 모르는 혼돈을 일으켜 서러움을 얼굴에 묻고 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사회초년생이었던 시절, 나는 주변에서 그런 일을 본적이 없어서 수민이 네가 뭔가 착각했겠지하며 아이들과 함께 웃었었지.

그런데 황급히 원서를 찾아보니 분명히 수민이는 아빠랑 성이 다르더구나. 아빠 성까지는 세심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아빠와 성이 같은 거라는 일반적인 예를 들어 너를 설득하려 했지. 앞뒤 사정도 모른 채, 늘 예외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수업을 해 버린 것이다.

수민이 너는 그 이후 이름을 말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절대로 성을 말하지 않았지.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그것이 결코 작은 에피소드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단다.

그때 난 수민이를 어떻게 이해시키고, 아이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이 부족했고, 섣불리 말하면 더 상처를 받게 될까봐 너에게 시원한 해답으로 위로 한번 못했다. 네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당당함을 심어주지 못했던 못난 선생님이었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 미술시간 이후 수민이의 엄마가 성이 다른 동생을 업고 학원으로 상담을 오셨다.
“미리 귀뜸하지 않아서 죄송해요. 그냥 집에서는 이름만 불러서 별 문제 없었고, 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어 그냥 그렇게 막연히 어쩌나 했는데…. 아직 어린 줄만 알았는데 이런 문제를 이렇게 빨리 수민이가 알게 될지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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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비로소 수민이 네가 아빠와 성이 다른 이유를 알았다. 너의 어머니는 그때 재혼한 지 2년이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또한 알았다. 그날 이후 수민이 네가 ‘왜 아빠하고 성(姓)이 나만 다르냐’고, ‘나 진짜 다리 밑에서 주워 왔어? 하며 울었다’고. 네 엄마는 그때마다 무척 마음이 아팠다고 했지. 또한 병원에 갈 때나, 놀이터에 가면 엄마들이 습관처럼 아이 이름을 물어보는데 남들 아무것도 아닌 일상이 네 엄마에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단다.

“자격지심인지 모르겠지만 주변의 곱지 않은 눈초리도 느껴지고요. 일일이 다 설명하고 다닐 수도 없고 맘이 무너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애들 아빠하고는 별 문제가 없는데 남의 시선이 더 아픔을 주네요. 이런 일 겪을 때마다 재혼을 괜히 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 내년이면 학교에 갈 텐데, 아이가 커 갈수록 주변을 인식하게 될까봐서 겁이 나네요.”

나는 그날 말씀을 잇지 못하던 네 엄마를 보았다. 네 엄마 눈에 고여 있는 눈물로 그간의 고충과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아울러 수민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친양자(親養子)제도를 도입하는 민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한다면, 그 아픔은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너의 이름 역시 이처럼 가명으로 쓰기로 했단다.

사별 이후 재혼한 수민이 엄마가 사회에서 피부로 겪는 무안함도 그렇지만, 서류를 낼 때 마다 지난 과거를 매번 또다시 쑤셔내야 하고, 주변의 차가운 시선과 세상의 모진 차별을 감내해야 하는 곤욕을 치렀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수민이가 어리지만 앞으로 이 서류상의 기록이 결혼할 때까지도 찜찜하게 남아 있을까 싶어 내심 걱정하고 속앓이를 하는 수민이 엄마의 심정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땐 잘 몰랐지만 선생님도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살아가는 아줌마 된 지금에서야 더 가까이 느껴지는구나.

어떤 사람은 이런 문제를 고민한끝에 미국에 사는 언니에게로 입양 서류를 보냈다고 한다(한국은 해외로 서류를 보내면 말소가 된다). 이처럼 편법으로 벌금을 물고 7살 때 새 아빠 호적에 올려서 새 아빠와 같은 성을 얻었다고 귀동냥으로 건네 들은 적이 있다.

또한 사망신고를 내고라도 다시 호적에 올렸으면 하는 사람도 있고, 이도저도 싫어 아예 이민을 가는 가족도 있다더구나. 그 모든 것이 아마 사회의 따가운 눈초리들로부터 벗어나고 싶기 때문일 거다. 아버지의 성을 따를 수 없어 계부와 다른 성을 쓰는 것을 떳떳하지 못한 것 같이 여기는 사회의 인식과 모진 차별이 얼마나 큰 아픔인지 굳이 다른 예가 필요 없을 듯하다.

새 아빠를 친부처럼 알고 자라지만 호적에 동거인으로 남고, 같은 가족이지만 성이 다른 남매일 경우 학교에 가서 놀림을 피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아이들은 결혼할 때까지 부담을 안고 뼈저리게 아파할 것이다, 매번 부딪히는 일로 엄마, 아빠, 성이 다른 형제, 자매들이 고통을 겪어 가며 가족이라는 행복의 뿌리를 흔드는 실정이다. 성이 다른 것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또다시 가족이 해체 될 수도 있는 문제이다. 법이 현실을 보호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렇듯 옭아매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최근엔 법도 시대의 변화의 맞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높다. 7살의 수민이 너를 서럽게 멍들게 했던 ‘호주제’등은 더 이상 전통이 될 수 없다. 우리는 다양한 삶의 형태를 당연히 인정할 줄 알아야 할 것이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법과 제도가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양부와 다른 성을 가진 탓에 고통당하고 있는 아이와 부모가 적어도 수십만명에 이르고, 재혼 여성이 2001년에만 5만3천명에 달할 정도로 급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남녀평등이냐 혈통이냐를 따지기 전에 한 사람이 따뜻한 가정에서 성장 할 수 있도록 보호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의 형태만 보고 결손 가정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그 가족에게 주는 또 하나의 폭력이다. 가족의 형태보다 가족관계가 건강한 것이 ‘건강한 가족’인 것이다.

수민아!
그림 전시회 때 난 너의 아빠를 보았단다. 너의 손을 꼭 잡고 “우리 딸 그림 참 잘 그렸네” 하시며 기뻐하셨지. 전시장을 둘러보는 너의 가족에서 행복과 따스함이 물신 풍겨났다.

그때 난 또 깨달았단다. 가족이라는 형태엔 정답이 없는 것이라는 것을. 스스럼없이 서로 사랑해 주고, 아껴주고, 관심 가져주며, 어려운 일을 겪을 때 서로 위로 하며 또다시 해맑은 미소를 되찾아 주는 ‘인연’이라면, 이것이 더 없는 천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평소엔 무관심한 서류가 현실에서 너의 행복을 발목잡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형식이나 제도로 틀을 꼭 갖추고 있어야만 꼭 절대적으로 ‘사랑’이 담겨있는 것은 아닐 테니까.

가족그림 발표회를 하던 날 이후 아빠와 성이 다른 너에게 내가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은 고작 교실에서는 자기그림이나 모든 물건에 사인을 만들어 쓰기로 했던 것 이다. 그때 별 모양으로 사인을 표사했던 네가 활짝 웃으며 무척 즐거워했었지. 마치 이름의 감옥에서 벗어난 이 같았지.

나는 이제 조만간 우리 사회가 더 큰 이름의 감옥에서 너를 꺼내주기를 기대해본다. 이 새 봄에.

덧붙이는 글 | * 친양자(親養子)제도는 가정 법원의 선고로 양자를 양부모의 친자와 동일하게 여겨 양부의 성과 본을 따르고 호적자와 친생자처럼 기재하는 제도다. 선진국에서는 완전양자 특별양자라는 용어로 일반화 돼 있다. 재혼한 가정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반드시 가정법원의 허가를 거쳐 입양 하도록 해 결과적으로 불법 영아매매를 통해 아동학대를 방지하고 국내입양을 활성화 하는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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