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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성남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많은 국민들과 만나 사연과 고통과 의견을 들었다. 우리는 그 과정이 단지 표를 얻기 위한 과정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난 후 기자회견장의 뒷 배경에 큼지막하게 써 놓은 문구가 있었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만나야 할 대통령' 시리즈는 바로 그 문구의 의미에 맞게, 국민 한 명 한 명이 대통령인 시대에 우리 사회 각계의 사람들의 삶과 고통과 희망을 듣고자 한다. 이 시리즈는 총 8회에 걸쳐 진행되며, 줌마네 자유기고가들이 참여했다. 이번 글이 세 번째 글이다. <필자 주>


올해 53살인 한 예비노인이 있다. 흔히 소개하자면 그는 아줌마로 불려도 좋을 것이다. 자녀가 결혼 전이라서 아직 할머니라 부르기에는 이르다. 동네 아이들이 간혹 '할머니'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그냥 조금은 나이가 든 아줌마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오늘 아줌마보다는 예비노인으로 살고 싶어한다. 지금 그의 삶에서 많은 관심과 고민이 쌓이는 부분은 바로 '예비노인'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보면 50대 초반은 아직 노인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70대가 되는 2020년에는 노령인구가 766만명이 된다. 전형적인 노령사회가 되는 것이다. 걱정 없는 노후는 누구나 갖는 꿈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노후를 준비하는 예비노인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그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도시의 전형적인 서민층이다. 서울에서 가장 모범적인 실버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는 송파구의 한 30평대 아파트에서 네 식구가 살고 있다. 서울의 웬만한 가정에 다 있다는 김치냉장고도 없고, 그리 값비싼 가구하나 보이지 않는 소박한 살림을 꾸리고 있다.

그런 그가 오늘 예비노인이 되고자 하는 것은 언젠가부터 멀지 않은 노년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니 그 '언젠가'라는 것이 정말 막연한 과거는 아니다. 그 언젠가는 바로 시부모와 친정 부모의 노년을 보고 난 후였다.

맏며느리인 그는 얼마 전까지 시부모의 모든 문제가 그의 몫이었다.
"시아버지는 중풍에 치매까지 있어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특히 시부모님이 한꺼번에 병환중일 때 시동생까지 손을 벌려서 그 심정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어요."

그의 시아버지는 그의 집에서 돌아가셨다. 그때 그는 노년의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향에서 생활하셨던 시부모님이었기에 모셔야 하는 짐을 덜어주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노년에 대한 이해를 얻을 기회는 늘 고통으로 다가왔다. 이번엔 연로하신 친정어머니의 거취문제가 발생했다. 친정아버지역시 중풍으로 오랜 고생 끝에 돌아가셨고, 혼자 지내시던 어머니는 퇴행성관절염으로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다. 몇 달 전에 합친 둘째 오빠부부와는 고부간의 갈등이 심각한 편이라고 했다.

그가 시부모 부양을 도맡았다고 해서 형제들에게 친정어머니를 떠맡기고 외면할 수는 없었다. 또한 누구에게도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자신이 모신다고 나서지도 못해 괴롭기도 했다.
"한 동안 고민하다가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고 형제들에게 말했어요. 시설에 보내는 방법도 생각해 보자고. 하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지를 못했죠. 형제들이 속시원한 해결책도 없으면서도 그런 곳으로 보낼 수는 없다고 펄쩍 뛰었거든요"

그는 친정아버지와 시부모를 여의고 어머니의 고통을 보면서 자신의 노후를 비로소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제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제력이 없는 어머니였기에 생활비는 형제들이 공동으로 부담했는데 만약 어머니에게 돈이 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는 생각했다. 어차피 노인복지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노인들이 그나마 서럽지 않게 사는 길은 경제력뿐이라고. 지난해 노인복지예산이 총 예산의 0.37%밖에 안 되는 현실. 더욱이 생활보호대상자 위주로 되어 있는 노인복지의 운영실태 등은 그와 같은 노인에게는 아무런 버팀목도 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그런 결심과는 달리 50대의 그가 지금 달리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국민연금밖에 해 놓은 것이 없어 불안 속에서 살고 있어요. 남편이 하는 일이 경기를 많이 타는 직업인데다가 수입이 일정하지 않아 저축하기도 힘들어요. 또 아직 대학생이 있어 학비와 학원비로 지출이 많은 편이죠."

더군다나 그의 부부는 오랫동안 건강이 좋지 않아 의료비와 건강유지비가 많이 들어 변변한 저축도 없다고 한다.

결국 그의 부부가 택한 것은 농촌으로 가는 것이었다. 수입 없는 살림이니 대책 없이 도시에서만 살려고 고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작은아이까지 독립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지출 많은 서울살림에서 일단 벗어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공기 좋은 전원주택에 살려고 시골에 간다지만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길을 찾다가 생각한 것뿐이에요. 그래도 그런 결심이라도 해놓고 나니 그나마 위안이 되네요."

이쯤 되면 혹자들은 아직 50대면 일해서 저축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도 현실에서는 만만치 않은 노릇이다. 막상 일자리를 알아보았으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힘에 부치는 청소일이거나 식당에서 설거지 하기, 아니면 아기 보는 일 등 모두들 육체적으로 감당 할 수 없는 일 뿐이었다.

전문성이 없는 그와 같은 50대 이상의 여성들이 할 만한 일이 없었다. 장시간 근무해야하는 열악한 환경에 터무니없는 박봉의 단순노동뿐이니 어지간하지 않으면 일할 엄두도 못냈다. 파트 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적당한 일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만 꿀뿐이다.

예비노인인 그에게 일자리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일자리는 곧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자아 실현과 사회 참여라는 의미 또한 크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고령화 사회에서는 노인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이 연금지급보다 비용 면에서도 낫다고 한다.

그가 오늘 되고자 하는 예비노인은 사실 지난해 5월부터 어느 교수가 운영하고 있는 '예비노인프로그램'의 일종이기도 하다. 성공적인 노년기를 맞기 위해 미리 계획을 연습을 하는 것이다. 노인건강, 가족관계, 돈 관리, 유언, 상속 등의 법률지식을 배운다. 손자 돌보기에 필요한 전문적인 공부를 하는 등 건강한 노년을 위한 교육이기도 하다. 또한 전직을 준비하거나 창업을 도와주고 다양한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인생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 등이 준비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은 퇴직이나 은퇴로 인한 외부출입의 중단으로 우울증에 걸리거나 심하면 자폐증까지 보이는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예비노인인 그는 여전히 꿈이 있다.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던 서예를 꼭 배우고 싶다. 멋지게 노래를 부르고 날렵한 몸으로 나비처럼 춤도 추고 싶다. 힘든 사람에게 어깨를 나누어주고 미소로 작은 눈짓으로 희망을 보여 주고 싶다. 클래식 기타를 배워 아이들의 결혼식에 축가를 연주해주었다는 어떤 이처럼 그도 그런 멋있는 엄마가 되고 싶기도 하다.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고 손자들에게 그 얘기를 들려주는 우아한 할머니로 늙고 싶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죽기 전까지 내 일을 갖고 싶다.

그러나 그 꿈 가운데 무엇 하나 이루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그는 안다. 그럼에도 그 꿈의 실현을 위해, 굳이 그의 꿈이 아니더라도 그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비노인들의 꿈이 보다 크게 피어날 수 있는 사회가 이뤄지기 위해 새 정부가 노력해 줬으면 한다. 친정과 시집의 부모님이 맞았던 노년의 비참함과 그 자녀들이 겪는 괴로움을 남보다 더 절실히 깨달았던 경험자로 느낀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50대 아줌마이자 예비 노인인 그, 김해영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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