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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년 신군부가 야당지도자 김대중씨에게 사형판결을 내리자 이에 항의, 재일 민주인사들이 결의문을 채택하고 있다.
ⓒ 한통련 홈페이지
1. 세 사람

곽동의 - 1931년 경남 남해 출생, 71세. 18세 때인 1948년 생계가 어려워 일본에 감. 1950년 메이지대학 재학중 한국전쟁이 나자, 학도의용대로 국군입대 한국전쟁 참전 후 다시 도일, 재일한국거류민단(민단) 청년단장, 재일한국민주통일운동연합(한통련) 사무총장을 거쳐, 현 의장. 50년 동안 고국에 못 옴. 5년 전 부인 사별. 도쿄에서 혼자 살고 있음. 고향에 가보는 게 꿈임.

신귀성 - 1952년 일본 고베 출생. 50세. 재일교포 3세. 20살 넘어 70년대 한통련 산하단체인 재일한국청년동맹(한청) 활동을 하면서 한국운동권노래를 부르며 한국말을 배워 우리보다 더 한국말도 잘함(한국노래도 매우 잘함. 한번도 와 보지 못한 '서울서울서울 '노래를 조용필씨 뺨치게 잘 부름). 전 한통련 대외협력국장. 25년간 한청 및 한통련 활동. 아들과 딸이 한국이름을 사용하여 도꾜일본학교에서 이지메를 당하고, 한통련 활동비가 적어 생계가 힘들어 5년전 한통련 활동을 접고, 처가가 있는 나라현의 시골에 가, 가구 공장 노동자생활. 아이들은 시골에서는 잘 적응해 간호대 등 진학. 말로만 듣는 서울의 발전상을 보는 게 꿈임.

김창오 - 1955년생.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 47세. 재일동포 2세. 한국말 20살 넘어 배움. 한청의장을 하던 1987년 6월항쟁 때 오사카 한국영사관 앞에서 전두환정권 반대, 호헌철페, 직선제개헌 주장하다 일본경찰에게 구속당함. 죄명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위반. 1달 후 석방. 한국민주화운동으로 일본에서 재일교포로 구속된 유일한 사람. 현재 한통련 오사카지부 사무국장. 장인이 공장 운영하여 생활비 지원이 있어 생활이 곤궁하지는 않음. 아버지 고향 근처인 경주 불국사, 석굴암 등 신라 유적지에 가보는 게 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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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민변의 해외민주인사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초청 제안

지난 2월 6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에 맞추어 한국 사회의 인권현황 전반에 대한 검토를 거친 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에게 요청하는 인권정책 전반에 대한 제안서를 작성, 제출하였다.

이 제안서의 대부분은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실천하여야 할 인권정책이다. 그런데 이 중 가장 빨리 하였으면 하고 제안한 것이 일본의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의 곽동의 의장, 독일의 송두율 교수, 정규명 물리학박사, 윤운섭 선생, 프랑스의 이희세 선생 등 해외 민주인사 50여 명의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참석이다.

이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하여 70년대부터 수십 년간 외국에서 헌신하며 고생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7,80년대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된 것을 국내의 많은 사람들과 같이 한국 민주화의 큰 진전(한홍구 교수는 태조 이성계의 집권 이후 600년만의 세력교체로 보았다)으로 보았다.

김대중 정부는 민주적 대통령답게 국내에서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들에게는 민주화운동관련 명예회복과 보상등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이 분들을 예우하였고, 지난 5년간 많은 분들이 중요한 공직을 맡았다. 국회의원도 민주화 운동한 사람이 7,80명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정의가 살아 있는 나라가 되어가는 것 같다.

그러나 수십 년간 해외에서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 온 사람들은 명예회복과 보상이 되지 않았고,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 5년간 우리나라에 오지도 못하였다. 일본의 재일교포를 예를 들면, 김대중 대통령을 '빨갱이'라고 욕하며 한국의 독재정권과 친했던 재일본조선거류민단(민단) 간부들이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다.

▲ 76년 경로의 날(9.15) 김재화 한통련 의장 대행 등 65세 이상 고령자들이 일본 도쿄 스키야바시 공원에서 '김대중. 김지하 등 민주인사 석방을 요구하는 재일한국인 단식투쟁'을 단행하고 있다.
ⓒ 한통련 홈페이지
김대중 정권 들어 과거 김대중씨를 탄압하고 사건 조작에 앞장섰던 중앙정보부(현 국정원)가 해외 민주화 세력에게 미안해 하기는커녕, 한국에 오려면 그 동안의 활동에 대한 반성문을 쓰거나 조사를 받으라고 요구했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한통련 등이 70년대, 80년대 중반까지 민주화운동을 한 것은 맞지만, 1980년대 후반 이후 북한을 방문하는 등 '친북 활동'(국내 민주화 운동도 80년대 후반부터는 통일운동을 하게 되었음은 잘 알려진 일이다. 문익환 목사나 임수경씨의 방북)을 주도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친북활동'을 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지난 5년간 북한의 김용순 위원장을 비롯한 수많은 북한 사람, 일본의 재일조선인총연합(조총련) 사람들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이도 민족 화해와 통일을 위하여 잘 된 일이다. 이 사람들은 단순히 '친북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에게 한국에 오기 위하여 김대중 정부는 반성문을 쓰거나 조사를 받으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남한 출신으로 한국 국적을 갖고 있으면서 해외에서 민주화운동한 사람에게는 하지도 않은 '친북활동'을 하였다고 몰아붙이며 자기 고향에 오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이 분들은 독재정권하에서 몇 십 년간 고향에 올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김구 선생이 일제로부터 해방되기까지는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올 수 없었던 것처럼. 이 해외민주화운동세력에게 이렇게 차갑게 대한 것은 남북문제는 비교적 잘 하였다고 평가받는 김대중 정부의 큰 오점이다.

그러면 국내 민주화운동의 큰 결실이라 할 수 있는 1987년 6월 항쟁세력의 집권이라고 하는 노무현 정권(유시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는 민주화운동의 동지인 해외에서 민주화운동한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이 시금석이 이들의 2. 25 취임식 참석 여부다.

3. 한통련의 한국 민주화 운동

일본의 한통련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아서 간단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현재 한통련 활동가 중 대표적인 사람이 곽동의의장(72), 김정부기획실장(54), 손영근사무총장(51), 신귀성 전 대외협력국장(50), 김창오 한통련 오사카 사무국장(47)이다.

일본의 재일교포는약 60만명인데, 그 97-8%는 지리적인 이유로 남한쪽 출신이다 (만주의 조선족은 대부분 북한쪽 출신이듯이). 또 경상도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는 민단(남한 지지)이나 조총련(북한지지)이나 마찬가지다. 1945년 해방 이후 65년의 한일협정까지는 조총련에 속한 사람이 민단에 속한 사람보다 더 많았다.

1965년을 기점으로 민단의 숫자가 늘어 현재는 민단에 속한 사람이 더 많다. 민단에 속한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이므로 당연히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외국이나 한국을 다닌다. 한통련 사람들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대한민국 정부가 대한민국 여권을 내주지 않아 일본에 살면서도 한국은 물론 유럽이나 미국 등 외국에 자유롭게 나갈 수 없다.

민단 상층부는 이승만, 박정희정부 때 언제나 독재정권 편을 들었다. 민단의 독재정권 지지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민단간부들이 1973년 8월 15일에 만든 단체가 한통련의 전신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회의(한민통)이다. 1972년 10월 박정희의 유신쿠데타 당시 일본에 머물고 있던 김대중은 귀국을 포기하고 일본과 미국에서 동포들을 규합하여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김대중은 일본에서 한국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동포들(이 사람들이 현재 친북인사라고 해서 김대중정부가 국내방문을 못하게 한 사람들이다)과 함께 한민통을 결성하였고, 초대 의장으로 내정되었다. 해외에서 김대중을 중심으로 반박정희 세력이 결집되는 데 당황한 중앙정보부는 한민통의 결성식을 1주일 앞둔 1973년 8월 8일 김대중을 도쿄에서 서울로 납치했다. 김대중이 납치되자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고, 국제사회에 알리고, 그 후 김대중구출투쟁를 한 사람들이 바로 한통련의 민주인사들이다.

▲ 반유신 독재와 김대중씨 구출 여론을 높이고 해외에서의 한국 민주화운동을 위해 '해외한국인 민주운동대표자회의'가 77년 8월 12~14일 도쿄에서 개최됐다.
ⓒ 한통련 홈페이지
한민통이 중심이 되어 해외의 반박정희 한국민주화운동 세력을 결집하고, 해외와 국내의 민주화운동 세력이 서로 연대하게 되자 박정희 정권은 간첩사건을 조작하여 한민통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였다. 1978년 박정권은 재일동포 유학생 김정사를 한민통의 지령을 받은 간첩으로 조작했고, 이 사건의 재판 과정에서 한민통은 '반국가단체'가 되었다.

그러나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정사는 정작 한민통 회원도 아니었고, 한민통의 간부들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었다. 더구나 간첩죄로 10년형을 받은 김정사가 6개월만에 일본으로 돌아와 활보하고 다녔다. 이 사건은 박정희 정권이 한민통의 초대 의장인 김대중을 옭아매고, 해외에서 진행되는 유신독재 타도투쟁을 말살하기 위한 자작극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민통(한통련)은 반국가단체고, 그 회원은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이 되어 있다.

이후 1980년 5월 광주학살을 저지르며 등장한 전두환 등 신군부는 김대중을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하였고, 김대중이 1973년 한통련의장직을 수락한 것을 '반국가단체의 수괴'였다고 몰아 사형을 선고하였다.

이에 한민통은 김대중 구출운동에 힘을 모았다. 한민통은 즉각 계엄사령부가 조작한 '김대중 일파에 대한 중간수사 발표문'의 허위성을 폭로하였다. 한민통의 이러한 활동은 정의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세계의 광범한 인사들의 의분을 불러일으켜 김대중 구출을 위한 운동단체들이 일본의 주요 도시는 물론이고 범세계적으로 결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민통 상임고문 배동호 등은 여권도 없이 일본 법무성의 재입국 허가증만으로 1980년 6월 해외로 달려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 간사회에 참가하여 한국민주주의와 김대중이 처한 상황을 널리 알렸다. 독일통일의 주춧돌을 놓은 빌리 브란트 서독 사민당 당수가 의장으로 있던 이 모임은 이후 김대중의 구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한민통의 창립을 준비했던 70여 명의 발기인은 전원 민단의 단원들이며 조총련 동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김대중을 대신하여 한민통 의장대행을 맡은 김재화는 민단 단장을 8번이나 지냈으며 71년 한국의 8대 국회의원이기도 했다. 그 뒤를 이어 한민통 의장이 된 배동호, 곽동의 모두 민단의 핵심간부 출신이었다.

1973년 한민통결성 이후 주요 활동을 보면, 70년대는 김대중 구출투쟁과 한국내 정치범 석방운동, 서승, 서준식 등 100여 명에 이르는 재일한국인 유학생 정치범 석방운동, 독재정권 퇴진운동, 일본에서 전태일 영화 제작 상영 등이었다. 80년대 주요사업은 광주학살 규탄, 광주비디오 제작 상영, 김대중사형 저지, 1983년 김영삼 단식 동조 단식, 6월항쟁 때 일본에서 민주화 시위 등 독재정권 타도운동 등이다. 90년대 들어서는 민족통일운동, 강경대 열사 추모 등 살인정권 규탄대회, 반전 반핵 평화운동 등이다.

4. 그들의 소박한 꿈을 이루어주자

한통련은 민단이나 조총련만큼 큰 단체도 아니다. 한통련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민주화운동에 대한 보상이나 한국에서의 공직 참여가 아니다. 단지 꿈에도 그리던 고국에 돌아가 고향땅을 밟아보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싶을 따름이다. (어려서 고국을 떠나 6,70대가 된 재일동포 1세는 50년 이상 고국에 못 와 봤고, 일본에서 태어나 4,50대가 된 재일동포 2,3세는 한국에 한 번도 못 와 본 사람들이다). 그리고 세계화시대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한민국 여권을 받아 다른 나라에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이다.

과연 이 정도의 소박한 꿈도 우리가 이루어줄 수 없는 것일까? 새로 시작하는 노무현 정부에서는 하루빨리 이 꿈이 이루어지길 촉구한다. 그런데 2·25 취임식이 내일 모레인데 이분들이 취임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이 아직 없다. 우리나라에서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많은 선후배들과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당부드린다. 우리가 군사정권에 맞서 힘들어 할 때 일본에서 힘겹게 살면서도 온갖 차별에 맞서 민족주체성을 지키면서 우리와 함께 한 분들을 우리가 더 이상 무시하고 냉대해서는 안될 것이다.

* 2월 23(일) 밤 11: 30 MBC TV <이제는 말 할 수 있다>에서 한통련의 활동에 대한 방송이 있습니다.

- 한통련 홈페이지 : www.korea-htr.com
- e-mail : chuo@korea-htr
- 주소 : 東京都千代田區神田小川町3-6-8 伸幸 Bldg.5f
- 전화 : 001-81-3-3292-0671 / 팩스 001-81-3-3295-5004

덧붙이는 글 | 임종인 기자는 민변(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부회장이며, 법무법인 해마루 법률사무소의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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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언론사에서 근무했고, 친일청산 등 역사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평소 그 무엇으로부터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갈망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