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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불의한 시대의 희생자... 이미 용서했다"

▲ 공연연출가 김정환.
ⓒ 홍성식
드라마틱하다. 산채로 땅에 파묻히는 극악한 고문을 당한 후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았던 청년이 인권단체의 문화행사 단골 연출진이 되고, 다시 한국 연극계의 메이저라 할 대학로에서 대형 뮤지컬의 연출가가 되기까지의 인생역정.

공연연출가 김정환(38)을 말할 때 가장 앞서 이야기되는 것은 '보안사 생매장 사건'.

89년 여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보안사령부의 요원들이 겨우 스물 세 살의 어린 학생 김정환을 야산으로 끌고 가 '수배중인 친구의 소재를 불어라'라며 눈에 가리개를 씌우고 땅에 파묻었던 반인륜적인 이 고문사건은 이후 김정환이 가사를 쓴 '다시 살아 부르는 노래'와 함께 13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물리적 폭력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감안한다면, 고문은 인간을 파괴하는 동시에 인간이 딛고 선 세계의 존엄을 부정하는 극악한 행위다. 김정환 역시 사건 이후 당연한 수순처럼 불면증과 대인기피증, 밀실공포증을 앓았다. 사람을 믿지 못했고, 밤길을 혼자 걷기가 두려웠으며, 불이 켜지지 않은 방에는 앉아있을 수 없었다.

”그곳은 한 마디로 이름 모를 야산이었다”
끔찍했던 경험과는 달리 그의 회상은 무용담을 연상케 하듯 흥미진진하게.. / 강수연/김정훈 PD

”보안사 사람들 동지애가 아주 뛰어나더라”
그의 목숨을 농락했던 당시의 보안사 요원들은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며../ 강수연/김정훈 PD

”등등.. 너무 이상적인 사횐가?” 김정환이 바라는 우리 사회는..
”나는 어차피 꿈을 꾸는 놈이기 때문에..” / 강수연/김정훈 PD


고문을 경험한 몇몇의 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대학에 재학 중이던 70년대와 전두환 정권시절 2차례에 걸쳐 혹독한 구타와 물고문, 전기고문을 겪었던 소설가 김영현(49)은 아직도 고문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보지 못한다. 영화 <박하사탕>의 물고문 장면을 보며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던 그를 아내가 진정시켜야 할 정도다.

'알고있지만 말할 수 없는 역사'였던 제주 4.3항쟁을 소설화한 <순이삼촌>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남산의 지하밀실에서 온몸에 든 검푸른 멍이 보름간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모진 고문을 받은 소설가 현기영(62)은 회갑을 넘긴 할아버지임에도 그 시절 '독재자' 박정희 이야기만 나오면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가고, 이를 악문다.

그런데 이것 봐라. 농담인지 진담인지 김정환은 웃음 띤 얼굴로 '자신을 고문한 사람을 용서했'단다. 게다가 그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더듬어가면서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동행했던 촬영기자가 "고문당한 사실을 저렇게 유쾌하게 추억하는 게 가능한지…놀랍다"고 말했을까.

"당시 나를 고문한 사람들은 보안사 공작전문팀이었다. 팀장격인 L소령은 얼마 전 대령으로 예편한 걸로 안다. 89년 당시 검찰에서 대질심문을 할 때 고문 사실을 발뺌하는 그를 보며 '그래, 당신도 불의한 시대의 희생자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그를 증오하느냐고? 이미 오래 전에 다 용서했다."

그의 대답에서 읽히는 한없이 넓은 아량을 확인하는 순간, 그가 고구려인의 크고 드높았던 기상을 오늘의 역사에 복원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된 뮤지컬 <대륙의 여인 수천>의 연출을 맡은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의 삶은 어떠했으며, <대륙의 여인 수천>에 그가 바치는 열정은 얼마만큼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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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들 다 하는 것처럼 1학년 때 '학습'이란 걸 하면서 자연스레 학생운동을 접했다...
ⓒ 홍성식
-산 사람을 땅을 파묻을 정도였다니 굉장한 과격분자였던 모양인데. 대학시절 얘기 좀 해달라.
"과격분자는 무슨(웃음). 86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남들 다 하는 것처럼 1학년 때 '학습'이란 걸 하면서 자연스레 학생운동을 접했다. 2학년 때 임진택(판소리 <오적>의 연출자)의 마당극을 보고 민족극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이 즈음부터 열심히 학회활동을 했다. 88년에는 문과대 학생회장을 했었고…. 뭐 남들보다 뛰어난 이론가라거나 그러지도 못했다. 1학년 때 가투(가두투쟁)하다가 잠시 구류를 산 적이 있고, 87년 6월항쟁 때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됐다가 6.29선언이 있고 바로 나온 경험이 있다. 말해놓고 나니 거창한데 사실 나는 혁명가보다는 딴따라에 가까운 사람이다."

-'보안사 생매장 사건'의 전말을 말해달라.
"간단하다. 89년 8월에 고대 앞에서 보안사 요원 7명에게 강제로 연행됐고, 야산으로 끌려갔다. 수배 중인 친구 김OO의 은신처를 말하라는 요구를 받았고, 모르니까 모른다고 했다. 그러니 마구 패더라. 때리다가 눈가리개를 씌우고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들어가라고 해서 들어갔다. 말 안 들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린다고 협박했지만 정말로 모르는 걸 어떡하겠나. 그러자, 아무 말도 없이 흙을 덮기 시작했다. 욕이라도 퍼부으며 그러면 덜 두렵겠는데 한마디 말도 없이 삽질하는 소리와 흙 떨어지는 소리만 들리는데 나중에는 정말 숨이 막혀오더라. 살려달라고 빌었다. 그랬더니 꺼내서 또 때리고, 다시 은신처를 말하라고 협박하고…. 진짜로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마지막엔 프락치가 돼서 우리 일에 협조하라고 회유하더라."

-그 사건 얼마 후 기자회견을 했는데.
"사건이 있고 보름쯤 후인 8월29일에 인권위원회를 찾아가서 회견을 자처했다. 나 하나 괴롭히는 것은 그래도 어떻게 참아보겠는데 부모를 협박하는 대목에 가서는 정말이지 기가 질렸다. 89년이 어떤 시절인가.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의 방북으로 정권은 독이 오를대로 올라있고, 거기에 현대중공업 사건에, 민족미술인협회 고문사건까지…. 지금 말인데 그때 심정은 기자회견을 하면서 여차하면 분신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그들이 프락치 활동을 강요하며 내게 알려준 전화번호와 기억해둔 자동차 번호를 공개했고, 기자들이 그 번호를 추적하니 그 출처가 보안사라는 게 밝혀졌다."

-그 이후엔?
"나를 고문한 사람은 당시 보안사 소령인 L과 수사관 K였다. 이후 대질심문에서 만났는데 고문사실을 부인했고, 국방부 역시 '그런 일은 없다'고 잡아뗐다. 서로를 맞고소했는데 90년에 쌍방 고소가 취하되면서 흐지부지됐다. 문민정부 수립 이후인 93년에 군사정권 시절에 고문당한 사람들이 집단손해배상소송을 냈는데 나는 국방부 상대 소송이라 배상이 힘들었다. 주변에선 그러더라. '살아있는 게 다행인줄이나 알라'고."

▲ 금기와 터부가 사라지고 상식이 복원되고 있으니 세상의 뒤틀림도 이제 펴지리라고...
ⓒ 홍성식
-당시 민가협과 유가협에 진 빚이 있다던데.
"기자회견을 하고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 피신해 있었다. 주위를 전경들이 에워싸고 형사들이 오가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끔찍했던 고문을 생각하며 보안사에서 다시 나를 잡으러 오면 차라리 뛰어내려 죽으려고 했다. 그 길고 길었던 밤이 지나고 다음 날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과 유가협(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의 임기란, 이소선 어머니가 나를 찾아왔다. 이소선 어머니는 자신의 자식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살아있는 나와 내 어머니를 위로했다. 이후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을 무료로 연출한 것은 그때의 보은에 다름 아니다. 지난 99년엔 그분들과 양심수, 장기수 어른들을 모시고 1인극 <고문 없는 세상을 꿈꾸는 김정환 1인극>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그때에 비하면 세상이 좀 좋아진 것 같나?
"많이 민주화됐다. 금강산과 평양도 오가지 않나. 이것들은 이전 세대의 피로써 얻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금기와 터부가 사라지고 상식이 복원되고 있으니 세상의 뒤틀림도 이제 펴지리라고 본다. 국민이 대통령을 만드는 시대가 아닌가(웃음)."

"협량(狹量)한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수천>을 보라"

-연출을 맡은 뮤지컬 이야기 좀 하자. <대륙의 여인 수천>은 어떤 뮤지컬인가?
"잃었던 신화를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작품이다. 고구려의 역사를 통해 우리민족의 자긍심을 복원하고, 그리스·로마신화나 중국신화에 주눅들어온 한민족의 자존심 회복을 노래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통일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싶다."

-<수천>이 여타의 뮤지컬과 변별되는 점이 있다면.
"신동엽의 '금강' 등에서 읽히는 서사성이 어떤 작품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시적 서사성의 강화를 위해 화자도 시인으로 설정됐다. 시인(신동호)이 대본을 썼으니 오죽 하겠나(웃음). 전체적으로 보자면 서사가 극의 중심을 감싸고, 서정이 요소요소에 적절히 포진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주인공인 수천과 장하독은 어떤 인물인가?
"대지의 주인은 바로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이고, 땅은 스스로 경계를 긋지 않는다는 <수천>의 키워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우리의 신화를 토대로 드넓은 세상을 향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수천(守天)은 이름 그대로 자신이 하늘의 자손이라 믿는 당당한 대륙정신의 소유자고, 장하독(帳下督)은 고구려 호위무사의 별칭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한번 맺은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신념 있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연출력을 집중시키고 있는 부분은?
"<수천>은 고구려시대와 고려시대, 일제시대 등 3개의 시대를 동시에 보여준다. 그 시대마다 수천과 장하독의 역할이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수천>을 재밌게 보려면 어떤 걸 염두에 둬야할지.
"지도를 보면 서울에서 평양은 너무 멀고, 만주는 아예 갈 수 없는 먼 땅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 땅들이 그처럼 멀어 보이는 이유는 우리의 시각이 너무나 협량하고, 좁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넓은 가슴으로 보면 평양과 만주가 아니라, 시베리아도 멀 이유가 없다. 그런 마음으로 본다면 <수천> 속에서 웅대한 한민족의 판타지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수천>은 이제까지의 내 삶을 눈물겹게 돌아다본...
ⓒ 홍성식
-92년에 공연연출을 시작했으니 이제 경력 10년의 베테랑이다. 어떤 연출가가 되고 싶은가?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연출가보다는 관객들과 당대의 고민을 함께 안고 가는 사람이 되고싶다. 광주항쟁에서 시민군 윤상원이 한 역할을 꿈꾸고있다면 좀 거창한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지 않지만 갈 길은 갈 것이다. 세상에는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하는 것 아닌가. 이와 동시에 '예술가란 꿈꾸는 사람'이란 말도 버리지 않고 가겠다."

-80년대 문화운동을 하던 386들이 <수천>을 위해 뭉친 걸로 안다. 그 시대를 살아온 동료들을 포함해 관객들에게 미리 한마디한다면.
"우리는 정말이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런 아버지가 되고싶었다. 그리고, 이제 과연 내가 정말로 그런 아버지로 살고있는지 돌아보게 되는 나이가 됐다. <수천>은 이제까지의 내 삶을 눈물겹게 돌아다본 결과물이다. 다시금 내딛는 내 첫발에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따뜻한 격려를 얹어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덧붙이는 글 | 뮤지컬 <대륙의 여인 수천>

공연일시: 1월23일~26일
공연장소: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
공연예매: 1588-7890(티켓링크) 단체구입 문의: 02)501-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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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등의 저자. 경북매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