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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오전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열린 고문피해자 2차 기자회견에서 강용재 전국민주화운동상이자연합 의장이 은폐된 고문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전국민주화운동상이자연합(의장 강용재, 이하 전민상련)이 21일 오전 11시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제2차 은폐된 고문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고문피해자 합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지난번 제1차 기자회견에서 밝힌대로 정형근 한나라당 의원의 고문지휘 의혹사건과 함께 과거 보안사(현 기무사)에 의해 저질러진 성고문 사건 등이 함께 공개됐다.

2차 기자회견장, 어머니의 눈물 / 김용남 기자

이순자씨 성고문 피해사례증언 /김용남 기자

이날 공개된 사건은 '87년 통일 걸개그림 용공조작사건', '89년 아폴로 노동자 사건', '78년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조작사건' 등 총 12건이다. 이 자리에는 고문 사건 피해자 및 피해 가족 4명이 나와 피해사례를 직접 증언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문을 통해 △ 고문수사의 방지대책으로 철저한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할 것 △ 국회와 각 정당은 특별법을 제정해 검찰이 즉각 수사에 임할 수 있도록 입법활동의 책임을 다 할 것 등을 촉구했다.

한편, 전민상련은 지난 19일 오전 11시 검찰총장을 면담하기 위해 대검찰청을 찾아갔으나 "시간 여건이 안된다"는 이유로 무산됐었다.

이들은 또한 성명서를 통해 "지난 1차 기자회견 후에도 면담이 무산돼 정식 신청서를 제출했음에도 오늘 또다시 묵살됐다"며 "은폐된 고문 진상규명과 책임자 및 가담자 처벌만이 고문을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임을 밝히고 대안을 제안하려 했으나 이마저도 무산돼 유감"이라고 밝혔다.

강용재 전민상련 의장은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함께 '고문진상규명특별법' 제정을 위해 입법안을 준비하고 있다"며 "적어도 다음 대통령 임기 안에는 이 법이 통과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민상련은 지난 12일 오전 10시 안국동 철학카페 느티나무에서 제1차 기자회견을 열고 고문사례 17건과 고문 가해자 및 가담자 명단을 최초로 언론에 공개했었다.

"아무 죄 없는 내 아내까지 잡아다가 성고문"

전민상련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과거 보안사(현 기무사)에 의해 이뤄진 잔혹한 성고문 사건을 소개하고 고문 수사관의 실명을 공개했다.

성고문을 당한 피해자 이순자(67)씨는 72년 10월 유신 당시 신민당 울산 지구당 간부였던 남편 김형식(67)씨의 부인이다. 이씨는 계엄령 선포로 인해 도피생활을 했던 남편의 행방을 밝히라는 이유로 울산 보안사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당시 보안사 수사관 3명에 의해 이뤄진 고문행위 중에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잔혹한 성고문도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전민상련의 제2차 기자회견에 앞서 20일 밤 이씨의 남편 김형식씨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이씨는 현재 위독한 상태로 1년 전부터 거동이 불가능한 상태다.

다음은 20일 가진 김형식씨와의 전화인터뷰 전문이다.

- 당시 부인 이순자씨가 어떤 이유로 고문을 당한 건가?
"72년 10월 유신 때다. 당시 계엄령 선포로 인해 신민당 울산 지구당 간부였던 나는 도피생활을 해야했다. 당시만 해도 계엄령 선포를 해서 야당 하던 사람들을 많이 잡아넣지 않았나. 당시 당직자들 대부분이 잡혀가고 나는 도피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당시 울산 보안사에서 내 처를 연행해갔다. "남편의 행방을 밝히라"는 것이 이유였다."

▲ 억울하게 고문을 당한 부인의 성고문 사실을 밝히는 김형식씨. 사진은 전민상련 측이 제공한 동영상의 스틸 화면.
ⓒ 전민상련 제공
- 당시 부인이 어떤 고문을 당했나?
"울산 보안사로 끌려가서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당했다. 옛날에 쓰던 돌려서 받던 전화기 선을 손가락에 묶어서 전기 고문을 했다. 후에 경찰에 자수한 후 나도 같은 고문을 당했었다. 그리고도 등허리에 물수건을 올려놓고 몽둥이로 때리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문을 했다더라. 당시 난 서울에서 내 처가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정보부에 직접 전화해 자수했다."

- 잔혹한 고문이 그것뿐이 아니었다고 들었다.
"당시 내 처와 함께 잡혀간 동료들이 있었다. 내 처는 나중에도 혹시 내가 죄스러워할까봐, 그리고 수치스러워서 끝내 말을 안했다. 내가 그 내용을 알게 된 건 내 동료들이 말해주어서이다. 나도 차마 말을 못하겠다. 옷을 벗겨놓고 때렸다던데 당시 군인들도 옆에서 같이 고문을 받던 동료들도 다 남자 아닌가. 얼마나 수치스러웠을지, 고통스러웠을지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 그 옆 콘크리트 바닥에는 갓 돌 지난 내 막내딸을 뉘여 놓고 그런 짓들을 했다고 한다. 내 동료들의 말에 따르면 그 잔인한 X들은 내 처의 국부(질)에 몽둥이를 쑤셔넣는 등 성고문도 했다고 한다."

- 얼마동안 고문을 당했나.
"기억하기론 최소 20일 이상이다. 추울 때이니 11월말부터나 12월초부터 일 것이다."

- 당시 고문했던 사람들 이름을 기억하나?
"울산 보안사 소속 임00·이00 수사관이다. 이들의 이름이 만천하에 공개되고 반드시 죄를 물을 날이 왔으면 좋겠다."

- 부인의 고문 후유증도 심각했을 것 같다.
"사람이 상당히 몸이 안 좋았다. 거의 반신불수로 살았다. 후유증으로 자궁암에 걸리고 치료받고 나서도 몸이 안좋다가 1년 전부터는 끝내 자리에 눕고 말았다. 현재는 자식들이 옆에서 대·소변을 다 받아낸다. 의식은 사람이 들고 나는 정도만 알아볼 정도다."

- 부인을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프실 것 같다.
"물론이다. 내 처의 죄는 정치활동하던 남편 뒷바라지 한 것 밖에는 없다. 그런데 말 못할 고문을 당하고 그러고 나서도 몇 년을 항상 정보과 감시를 당하고 살았으니 돈벌이도 못했고 제대로 생계를 잘 꾸리지도 못했다.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면 밤잠을 제대로 못 잔다. 밥맛도 없어진다. 분통터지고 너무 억울할 뿐이다. 어떻게 사람을 거꾸로 달아놓고 입에 물넣고 하는 그런 고문을 하나? 몸도 마음도 골병이 든 거다. 잊어버리려고 애를 많이 쓴다."

- 부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내가 참 미안하다. 잘 살았으면 또 모르겠다. 아직까지 여행을 한번 같이 못 갔다. 지금은 이렇게 병들어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지금도 '용서해달라'고 여러번 얘기한다. 그리고 후생에 가서 꼭 만나자고, 만나면 내 잘해주고마고 약속했다."

- 바라는 게 있다면.
"지금까지 나라에서 고문을 한 X들 다 그대로 놔뒀지 않나. 앞으로 그런 일이 또다시 있어서는 안된다. 그러려면 그 X들 한시라도 잡아서 처벌해야한다. 또 그 위에서 지시한 X들도 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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