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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옥씨(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 부인)가 지난 2일 오전 11시부터 한나라당 천안연수원에서 열린 '의원 및 지구당위원장, 기초-광역단체장, 지방의원 부인 연찬회'에 참석해 참석자들을 상대로 한 인사말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약 6분간의 인사말을 통해 한씨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우리는 대선에서 이겨야 한다"며 "이것이 역사적 책무라고 생각하고 만일 우리가 정권교체를 하지 않으면 국민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어찌됐건 "저체중 때문에 합법적으로 군대에 가질 않았다"는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어준다고 해도, 특별한 질병도 없는 멀쩡한 두 아들이 인간 한계를 넘어서는 초인적 몸매를 만들어가며 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어머니로서 자숙하고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진 못할망정 "하늘 두 쪽" 운운한 것은 대다수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든 발언임은 분명하다.

게다가 "정권교체를 하지 않으면 국민에게 죄를 짓는 것"이란 발언에 이르면 차마 할말을 잃게 된다.

국민에게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늘이 두 쪽이 나건 말건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무모한 주장에서 그것이 비록 '의지의 표현'이라는 한나라당의 변명을 믿어준다고 해도 섬뜩함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런 사실 때문인지 그간 '한나라당 당보 노릇을 자임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조ㆍ중ㆍ동>까지 사설과 기자수첩을 통해 한 여사를 비판(물론 애정 어린 비판이지만)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조ㆍ중ㆍ동>의 한 여사 발언내용에 대한 비판 글(사설, 기자수첩)을 가만히 살펴보면, 한 여사 발언이 내포한 보복주의에 대한 우려와 비판을 하는 듯 보이지만, 행간에 담긴 의미는 그녀의 말실수로 인해 남편인 이회창 후보에 대한 인식까지 나빠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즉 '방어용 비판'이란 말이다.

<동아>는 "후보 부인이 아무리 개인적인 심경이라고 해도 정치보복의 뉘앙스가 풍기는 발언을 해서야 남편인 후보에게도 전혀 득 될 게 없다"며 "(한씨가) 이번 발언에 대해 진솔하게 해명하고 사과하는 것도 불필요한 파문을 수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충고했고, 전날 천안 현지에서 '한 인옥 발언' 기사를 쓴 <조선> 윤정호 기자도 3일자 '기자수첩'에서 "우리 국민은 대통령 가족들의 국정개입 행태와 그 문제점을 많이 보아왔다"며 "그런 점에서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부인이 지나치게 전면에 나서는 것 같은 모습도 사람들을 정말 불쾌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럴싸한 문구로 비판을 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이 글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암탉이 쓸데없이 울어 괜히 남편을 궁지에 몰아놓는다"는 안타까움과 원망을 표현한 것이다.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가부장제의 현실과, "권력자의 아내는 그늘에서 소리 없이 내조해야 한다"는 구시대적 남성들의 시각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한 여사의 발언내용이 갖는 본질적 의미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여성비하' 의미가 솔직하게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 여사 발언이 갖는 진정한 문제점은, 이처럼 괜히 '여자가 지나치게 나선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대통령의 아내가 될지도 모르는 사람의 내면에 가려진 사적(私的) 보복주의를 대통령 선거라는 공적(公的) 중대사와 연계하고 있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영부인'은 비록 '남편 덕'에 오른 자리이긴 하지만 공식, 비공식적으로 수행하는 임무가 만만치 않다. 일부 활동적인 영부인은 그 활동력이 지나쳐(?) 베갯머리 송사는 물론이고 국정을 농단하는 경우도 있었던 과거에 비춰본다면, 대통령 후보 부인의 생각과 인생관은 결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없는 부분이다. 결국 "하늘 두 쪽" 운운한 한 여사의 발언은, 남편에게 누를 끼치는 여인네의 '말실수'가 아니라, 행여 대통령의 부인이 될지도 모를 사람의 위험한 사고방식으로서 심각하게 문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아>는 한 여사의 발언에 대해 "불필요한 파문을 수습하기 위해 사과해야 한다"고 애정 어린 충고를 하고 있으나, 노무현 후보의 많은 발언에 대해 "사상이 의심스럽다"거나 "나라가 좌경화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아 온 <조ㆍ중ㆍ동>의 평소주장에 비춰볼 때 특히 한 여사 발언이 갖는 내적 의미와, 그것이 향후 국정에 끼칠지도 모를 부정적 영향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공평하고 마땅한 일이다.

역사를 보더라도, 제왕의 아내들이 베갯머리송사로 정사를 그르치고, 결국 나라까지 망한 사례가 부지기수였다는 점은, 복수심에 불탄 대선후보의 아내가 저지를지 모를 국정농단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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