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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숙주 선생의 영정
문화관광부에서는 한국인 재발견 운동의 일환으로 90년 7월부터 매월 '이달의 문화인물'을 선정하고 있다. 이 사업은 각종 선양사업을 펼쳐, 선현들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고 우리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시키려는 의도이다.

올해도 벌써 10번째이다. 문화관광부는 2002년 10월의 문화인물로 조선 전기의 학자이며, 문신으로 뛰어난 학식과 글재주를 지녔음은 물론 훈민정음 창제에도 큰공을 세운 신숙주 선생을 선정했다.

신숙주는 본관이 고령(高靈)으로, 아버지는 공조좌참판(工曹左參判)을 지낸 장(檣)이며, 어머니는 지성주사(知成州事) 정유(鄭有)의 따님이다. 자는 범옹(泛翁), 호는 희현당(希賢堂) 또는 보한재(保閑齋, 이하 신숙주를 보한재 선생이라 함), 시호(諡號)는 문충공(文忠公)이다.

1417년(태종 17) 6월 13일(丁酉)에 태어난 보한재 선생은 공부를 시작하자 모든 경서와 역사책을 한번 읽으면 기억할 정도였으며, 글재주가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1438년(세종 20)에 처음으로 시(詩)와 부(賦)로 시험을 치르는 진사시험을 실시하였는데 보한재 선생은 서울에서 단번에 으뜸을 차지했다. 또 같은 해에 생원시험에도 합격을 했으며, 이듬해인 1439년에는 문과(文科)에 합격할 정도였다.

보한재 선생은 조선시대 500년 동안에 뛰어난 어학자 중 한 명이었다. 선생은 천부적인 재능으로 세종대왕이 기획했던 말글정책을 충실히 보필하였으며, 세종대왕이 1443년(세종 25)에 창제한 훈민정음의 해설서 집필에 참여하여 다른 일곱 학자와 함께 1446년(세종 28) 9월에 {훈민정음해례본} 편찬을 완료하였다.

1445년(세종 27)에는 권 제, 정인지, 안 지 등이 지어 올린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내용을 다른 학자들과 함께 1447년(세종 29)까지에 걸쳐 보완하였다.

이외에도 우리나라의 전승된 한자음을 정리하여 표준 한자음을 만들려는 목적에서 편찬한 『동국정운』이 1447년(세종29)에 6권으로 완료되고, 1448년(세종30) 출판되었는데, 32세의 나이에 서문까지 쓸 정도로 이 편찬 사업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 보한재집 부록에 수록되어 있는 문충공행장을 통해 선생이 한어(중국어), 왜어(일본어) 등 외국에 능통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생은 이러한 능력을 통해 한글 창제 뒤 세종이 계획하고 있던 표준용 우리나라 한자음과 표준학습용 중국 본토 한자음을, 모두 새 표음문자인 한글로 표기하도록 하는 사업에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에 신숙주가 쓴 찬시
1443년(세종 25, 계해) 2월 21일에 부사직(副司直)이었던 선생이 통신사와 함께 서장관이 되어 10월 19일까지 9개월간 일본에 다녀와서, 당시의 견문록(見聞錄)과 일본의 인명·지명 등을 한자음으로 기록하였다.

이 기록을 통해 후에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가 1471년(성종 2)에 완성되었다. 특히 이 책의 ‘조빙응접기’ 항에서는 일본 사신의 응대법에 대하여 상세히 규정하여 국가행사에 차질이 없도록 하였는데, 이 또한 일본어에 대한 소양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선생은 1458년(세조 4)에 재상(우의정)이 된 뒤에도 10여 년 동안 예조판서를 겸하여 국가 외교에 있어서도 큰 공적을 세웠다.

또한 국방에도 주력하여 1460년(세조 6, 경진) 에 동북 방면으로 자주 침입하는 중국 동북부 지방의 여진족의 토벌책을 제시하고, 동년 7월 27일에 강원·함길도 도체찰사 겸 선위사(宣慰使)로 임명 되어 북방 오진(五鎭)에 이르러 강을 건너 가 여진족을 공격하여 대첩을 거두고 개선하였다. 이에 대하여 1461년(세조 7, 신사)에 왕명으로 <북정록(北征錄)>을 저술하였다.

이와 같이 선생은 조선시대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의 여섯 왕, 30여 년 동안 학자, 어학자, 정치가, 외교가, 시인, 군인으로서 크게 활약하고, 1475년(성종 6, 을미) 6월 21일(무오)에 향년 59세로 세상을 떠났다.

10월의 문화인물인 신숙주 선생을 기념하는 학술행사들이 계획되어 있다.

먼저 10월 21에는 고령신씨 대종회(☎02-544-0909) 주최로 세종문화회관 3층 국제회의장에서 “보한재 신숙주 선생의 달, 출판 및 학술대회”가 열린다. 또 25일에는 한국어문회(☎02-525-4951) 주최로 대우학술재단 세미나실에서 “10월의 문화인물 신숙주 선생 기념 학술강연”이 열리며, 26일에는 한글학회(☎02-738-2236) 주최로 한글학회 강당에서 “신숙주 선생의 생애와 학문 기념발표회”가 있다.

참고로 2002년 동안에 선정된 문화인물도 살펴보자.

1월의 문화인물 : 조선후기의 천주교 신학자이고, 신유박해(1801) 순교자이며, 한국 천주교 최초의 교리서 <주교요지(主敎要旨)>를 저술한 정약종(丁若鍾 : 1760∼1801) 선생.

2월의 문화인물 : 우리나라 모더니즘의 제1세대로 한국적 정서를 양식화한 독특한 예술세계를 확립한 서양화가 김환기(樹話 金煥基 : 1913∼1974) 선생.

3월의 문화인물 : 독립운동가, 시민운동가, 종교인, 언론인으로, YMCA에서 민족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일제치하 해학과 기지로 한국인의 정신을 고양시킨 이상재(月南 李商在 : 1850-1927) 선생.

4월의 문화인물 : 시각장애인 교육자로 한글점자 창안,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통하여 한글점자 보급, 시각장애인을 위한 주간 회람지 「촉불」발행, 주요서적 점역보급(성경, 명심보감, 의학서적 등) 등을 한 박두성(松庵 朴斗星 : 1888∼1963)선생.

5월의 문화인물 : 소박하고 일상적인 서민들의 삶의 모습을 한국적인 서정성으로 표현한 서양화가 박수근(朴壽根 : 1914∼1965) 선생. 주요작품 <나무와 두 여인>, <모자(母子)>, <절구질하는 여인>, <농악> 등

6월의 문화인물 : 한국 현대시의 주류를 완성한 청록파 시인, 수필가, 한국학 연구가로 민속학과 민족운동사에 공헌하였으며, 한국문화사를 최초로 저술한 조지훈(趙芝薰 : 1920∼1968) 선생 / 주요저서 <조지훈 시선>, <한국민족운동사> 등.

7월의 문화인물 : 조선초기 문신으로 사육신, 집현전 학사, 어문학 및 음운학자이며, 한글창제를 위해 요동을 13차례나 왕래하는 등 훈민정음 창제에 큰 공헌을 한 성삼문(梅竹軒 成三問 : 1418∼1456) 선생.

8월의 문화인물 : 조선 고종 때 가곡의 명인으로 제자 안민영과 함께 가곡원류(歌曲源流)를 편찬하고, 노래하는 사람의 귀감이 될 가론(歌論)을 확립, 문학과 음악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박효관(雲崖 朴孝寬) 선생.

9월의 문화인물 :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많이 알려진 조선후기 시인으로 짙은 해학과 풍자를 담은 시들을 비롯, 기이한 행동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김병연(蘭皐 金炳淵 : 1807∼1863) 선생 / 주요시집 : <김립 시집(金笠 詩集)>

자세한 내용은 문화관광부 인터넷 누리집(http://www.mct.go.kr)을 참고하거나, 전통지역문화과(담당자 김지성 : ☎ 02-3704-9531 전자우편 east1@mct.go.kr)로 연락하면 된다.

문화의 달이며, 훈민정음이 반포된 10월을 맞아 훈민정음 창제에 공이 큰 문화인물 신숙주 선생을 다시 한번 기리고, 그 의미를 새겨보는 것도 뜻 깊은 일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문화관광부www.mc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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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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