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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칭)정치혁명과 국민통합을 위한 개혁적 국민정당' 제안 국민토론회가 지난 8월 29일 서울 대학로 흥사단 강당에서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개혁적 국민정당(www.vision2002.org)이 야심찬 닻을 올렸습니다. 출범한지 이주일 남짓한 시간에 벌써 만 육천여 명의 유권자들이 이 정치사상 초유의 실험에 기꺼이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실험에 뛰어든 여성 유권자들의 숫자는 극히 미미합니다. 그러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제 마음은 많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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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실험이야말로, 그 동안 한국 정치 지형 안에서 거의 완전히라고 해도 좋을만큼 배제되어 왔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에 틀림없는데, 여성들은 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일까?

앞으로의 정치는 여성들의 힘을 너무나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는데, 왜 어두운 그늘을 빠져나와 스스로의 목소리를 가시화시키려는 여성들의 숫자는 아직 이토록 적은 것일까? 여성 유권자들은 지금 그림자들처럼 숨어 있습니다.

그림자처럼 숨어있는 여성 유권자

저는 정치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한국사회 안에서 가장 후진적인 분야가 정치라는 것, 후진적일 뿐만 아니라, 병들어 있고 썩어 있다는 것, 그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 치유하기 힘든 정치혐오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것,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여전히 한국인의 삶을 결정적으로 지배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 따라서 정치를 이대로 두고는 우리의 미래의 모양새가 도무지 어떤 형편없는 물건이 될지 알 수 없다는 것, 그저 그 정도입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이야말로 국민이, 특히 여성들이 움직여야 할 때라는 것을 느낍니다.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조용한, 진정한 혁명, 추상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생활과 삶의 구체적 혁명, 그것은 여성의 존재를 필요로 합니다.

이 개혁정당의 초유의 실험은, 그 참신성으로 인하여, 그동안 완전히 정치권으로부터 배제되었던 여성의 존재를 단번에 중요한 정치적 자산으로 부각시킬 것입니다.

이 길을 갔던 사람이 없다고요? 그래서 불안하시다고요? 예, 저도 솔직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 따라갈 길이나 있었던가요? 특히 여성들이 따라갈 길이라는 게 있기는 있었습니까? 길은 만들면 됩니다.

오히려 참조할 것이 없어서 홀가분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당신은 한 발자국만 떼어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열 발자국, 백 발자국, 수천 발자국이 모여, 그대로 바로 길이 됩니다. 가지 않은 길, 그러나 가볼만한 길.

생전 처음으로 정당원이 되겠다고 결심

정치의 정 자도 모르는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 생전 처음으로 정당원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그리고 여성 유권자 여러분께 동참을 호소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은, 제 몸 깊은 곳에서 솟아올라오는 참을 수 없는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역사의 고통을 닮아 있기도 하고, 또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미래의 빛을 닮아 있기도 한 어떤 것, 내 손에 잡히기도 하고, 잡히지 않기도 하는 어떤 것이 간절히 제게 말을 겁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대로 살 수 없다고, 지금이야말로 무엇인가 해야 할 때라고 말하는 그것은 내게 어머니, 라고 부르며 손을 내밉니다. 저는 그것을 내 몸뚱이를 통해 태어나려는 나의 어린 새끼처럼 바라봅니다. 그것은 내게 "어머니, 공기가 탁해요.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이 탁한 공기를 치워 주셔요. 당신이 움직이셔야 합니다. 어머니, 나를 태어나게 해주셔요"라고 속삭입니다.

개혁적 국민 정당의 출범은 "못 참겠다 꾀꼬리"라고 외치는 힘없는 개미들의 반란입니다. 개미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한국의 기존 정치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그나마 국민은 민주화 시절 힘겨운 민주화 투쟁을 통하여 역사적 정당성을 쌓아 왔던 김대중 정권의 출범에 많은 기대를 걸었었지만, 김대중 정권 역시 그 전의 다른 정권들과 마찬가지로 부패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국민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힘없이 허물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야당인 한나라당은 창조적인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올바른 정치의 물꼬를 잡아가는 대신, 오로지 차기 대권을 잡을 목적에 눈이 멀어, 대통령과 특정지역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만을 국민에게 주입시킴으로써 파괴적인 정략만을 일삼아 왔습니다.

그렇다면 여당인 민주당에는 어떤 희망이 보입니까? 민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막힌 작태는 국민의 상처난 가슴에 왕소금을 뿌리고 있습니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이미 선거를 통해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나라는 어찌 되든, 자신이 속해 있는 권력계파의 지분을 유지하기 위해서 온갖 추악한 행동을 마다 않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지난 6월, 국민경선제라는 참신한 제도를 도입해서, 국민 200만 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뽑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노후보를 중심으로 거듭나는 당의 참신한 모습을 보여주기는커녕, 오히려 실체도 없는 신당론을 들먹이면서 당내에서 노후보를 흔들어대면서, 사퇴를 요구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당한 민주절차를 유린하는 반역사적 행위입니다. 대체 이 사람들이 제 정신이 박힌 사람들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놈이 그놈이고 저놈이 그놈이니까, 그냥 다 망할 놈들이라고 욕이나 하고 말아버릴까요? 그러는 사이에 나라는 돌이킬 수 없이 망가져 버릴텐데, 다 망가져 버린 나라를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살아갈 땅이라고 내어줄 수 있을까요? 너희들이 알아서 하라고, 나는 모르겠다고, 그렇게 뒷짐을 지고 나몰라라 해도 괜찮은 것일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아무 희망도 없는 타락한 정치인들에게 맡겨두고 망연히 앉아있을 수는 없습니다. 무엇인가 해야 합니다.

개혁적 국민정당은 이처럼, 모든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서 희망의 불씨를 살려내는 첫 걸음입니다. 다 망가진 터를 일구는 그 마음이야말로 여성의 마음이 아닐까요?

더이상 참을 수 없는 개미들의 반란에 왜 여성은 없나요?

▲ 수 백명의 사람들이 토론회가 열리는 흥사단 강당을 가득 메웠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많은 여성 유권자들은 "나는 정치에 관심 없어. 그건 타락한 자들이나 하는 거야. 맨날 남성들이 다 말아 먹었지. 언제 즤들이 여성들 생각을 해주기나 했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여성들을 나무랄 수도 없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정치는 한심한 꼴을 보여주었으니까요. 여성의 문제에 관한 한,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는 개혁적 국민 정당에 우리의 목소리를 싣는 것은, 단순한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정치보다 훨씬더 본질적인 층위에서 현상황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정치적인 어떤 행위보다 훨씬더 절박한 어떤 것입니다. 그것은, 정치 이전에 원칙의 회복에 관계된 문제이며, 삶의 자존심에 관계된 문제입니다.

썩은 정치라는 더러운 집에 쭈그리고 앉아, 쓰레기들을 피해 이리 저리 옹색하게 옮겨다니며 살 것인가, 아니면, 제대로 치우고, 새로 판을 짜서 제대로 된 일꾼들이 들어와 오래 살 튼튼한 집을 짓게 할 것인가.

개혁정당의 프로젝트는 일종의 쓰레기더미 치우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목소리들이 솟아오르는 바탕을 만드는 것이지요. 아마도 쓰레기가 치워지고 나면, 많은 여성일꾼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 동안, 정치라는 더러운 동네에 진절머리가 나서 일을 하고 싶어도 엄두를 낼 수 없었던 여성들이 안심하고 그 터에 들어와 일꾼으로서의 역량을 선보이게 될 것입니다. 개혁 정당은 그러한 터를 닦는 아주 기초적인 작업입니다.

그 동안, 한국 여성들은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차원에서 또는 사회적 차원에서 용감한 싸움들을 오랫동안 벌여왔습니다. 그 성과는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우리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여성이 정치적으로 세력화되지 않으면, 그 모든 노력들이 늘 단기성 결과밖에는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개별 분야에서 어떤 성과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제도화되어 유지되지 못하고,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개별적인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진보 진영에서조차, 여성들의 문제는 늘 한곁에 치워져 왔습니다. 우선 순위에서 언제나 뒤로 밀렸으니까요.

따라서, 여성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독자적인 정치 세력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근본적 층위에서 정당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지금의 시스템 안에서 여성들이 개별적으로 정치세력화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선 전체적인 지형의 변화를 끌어내는 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딱 한 발자국만 움직이자

따라서, 저는 여성 유권자분들에게 딱 한 발자국만 움직여 주십사고 부탁드립니다. 개혁신당에 참여해 주시는 것, 그것이 그 딱 한발자국입니다.

역사적 주체로서 결정하는 개인들의 일원으로서 발언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사실 하나만 보여주시는 것만으로도 지형은 엄청나게 변화할 것입니다.

일단, 한국 정치에 희망을 버린 국민이 이만큼 많다는 것, 남성들뿐만이 아니라, 여성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줍시다. 일단은, 그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여성들은 정치적으로 아직 한번도 타락해 본 경험이 없습니다. 아예 정치에 입문할 기회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역설적으로 한국 여성 유권자들의 특권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 여성들은 정치적 청정 구역입니다, 물론, 주체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아버지 따라, 남편 따라 투표해 왔던 의식의 부재는 비판받아야 마땅하겠지만, 어쨌든 정치인으로서 남성들처럼 타락한 여성 정치인들은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여성들은 남성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썩은 정치판을 깨끗하게 헹구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차가 필요합니다. 우선 여성들 자신이 정치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여성유권자 여러분에게 개혁 정당에 참여해 줍시사고 부탁드리는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여성에게 주어진 역할은 <눈물>의 역할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쌈박질하는 남성들의 위안자로서, 남성들의 슬픈 운명을 대신 울어주는 위상만이 주어져 왔던 것이지요.

그 역할로는 결코 역사의 주역이 될 수 없습니다. 미래의 여성은 우는 여성이 아니라, 눈물을 닦아주는 여성이며, 행동함으로써 아픔의 근원을 제거하는 여성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녀는 스스로 움직입니다.

우리는 역사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만큼 우리의 권리를 청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이제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정치 실험이 성공하더라도, 여성은 여성의 몫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역사는 공짜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김정란 교수
ⓒ 박민영
여성 유권자 여러분, 미래를 향해 딱 한 발자국만 움직여 주십시오. 여러분의 한 발자국이 길을 만들 것입니다. 한국이라는 고통의 땅이 당신의 부드럽고 당찬 결단을 기다립니다. 그 땅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께 깊은 사랑과 존경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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