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판 판정 토론회에 참석한 조광래 감독(맨왼쪽)과 정건일 프로연맹 사무총장(가운데), 그리고 한병화 심판
ⓒ SP21 김성배
월드컵 이후 축구열기가 절정에 오르고 있는 요즘, K리그에 있어 무시하지 못할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심판의 판정과 관련한 문제들일 것이다.

사실 축구경기에 있어 심판의 판정에 대한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동안 국내 축구의 많은 부분에서 심판 판정에 대한 의문과 이의제기가 계속 되어왔는데, 축구에 대한 인기가 고조됨에 따라 아울러 이에 대한 문제점도 크게 부각된 면이 없지 않다.

경기마다 수만명의 축구팬이 몰리고 있는 K리그. 그 안을 살펴보자면 심판 판정과 관련한 각 구단과 팬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지난 4일 대전과 수원 전이 있고 나서 대전구단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런 차별을 받고 더 이상 리그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는 발언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고, 심판들이 항상 대전에 불리하게 판정을 내린다고 생각한 대전 서포터스들은 물병을 던지며 심하게 항의를 하기도 했다.

또, 11일에 열렸던 수원과 부천경기에서도 수원의 데니스를 강한 태클로 저지시킨 상대 선수에게 경고를 주지 않는다고 항의한 산드로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해 많은 축구팬들 앞에서 선수들과 심판간에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포항-성남전에서는 샤샤의 비신사적인 행동을 저지시키지 않는 심판에게 항의한 포항의 최순호 감독이 퇴장 당하기도 해 축구열기에 찬물이 끼얹어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이런 심판 판정에 관한 논란은 비단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작년 9월 K리그가 한창 진행될 당시 울산과 포항과의 경기에서는 포항 코칭스태프와 대기선수들이 모두 자리를 떠나는 바람에 벤치가 텅 빈 채 경기가 진행되는 사상 초유의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런 웃지 못할 사태는 후반 10분 울산의 정정수 선수를 태클한 포항의 최종범 선수를 심판이 퇴장시키며 시작됐다.

▲ 심판 판정과 관련한 공청회에 각 구단 감독과 전임심판들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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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주심은 정당한 태클을 했던 최선수의 퇴장이 불합리하다며 강하게 항의를 했던 하석주 선수에게 엘로카드를 꺼내들었다. 이어 유동관 코치에게도 퇴장 명령을 했는데, 불만을 참고 벤치를 지키던 포항의 최순호 감독 마저 후반 29분에 스스로 경기장 밖으로 퇴장해버려 벤치에 단 한 명의 코칭스태프도 없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했던 것.

이러한 심판 판정과 관련한 잡음은 얼마 전 끝난 2002 한일월드컵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과 16강에서 맞붙었던 이탈리아는 경기에서 지자 언론이 앞서 국민을 선동하며 심판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고, 터키와 브라질의 경기에서는 히바우두 선수의 오버액션에 대해 한국의 김영주 심판이 터키 선수를 퇴장시켜, 형제의 나라인 한국과 터키 국민들 사이에 큰 오해가 생길 뻔도 했다.

그렇다면 이런 심판 판정에 대한 논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일단 `심판도 사람이니까 실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순간순간 어떤 동작이 나올지 모를 축구 경기의 현장에서 심판이 항상 100% 정확한 판단을 내릴 확률은 그만큼 힘들다는 이야기.

이런 문제점에 대한 인식 때문인지 최근 프로축구연맹은 '주·부심 무선호출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호출시스템은 버튼이 설치된 부심 깃발 한 쌍과 주심이 팔에 부착하는 호출기로 구성됐는데, 상황 발생 시 부심이 깃발을 들며 버튼을 누르면 주심의 호출기에서 진동과 소리가 발생해 판정에 도움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시스템이 심판의 예기치 못한 실수를 방지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심판 판정과 관련한 프로 감독들의 이야기

▲ 전남의 이회택 감독은 심판이 좀더 운영의 묘를 살려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 SP21 김성배
축구 경기에 있어 심판 판정에 대한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는 가운데, 14일 오후 1시 경 서울 모 호텔에서는 프로구단 감독과 전임심판, 프로연맹 관계자가 함께 모이는 의미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전남구단의 이회택 감독과 부산의 김호곤 감독, 대전의 이태호 감독과 안양의 조광래 감독, 부산의 김호곤 감독 등의 현역 프로 축구감독들이 참석한 가운데 최길수 심판 위원장과 한병화씨 등의 심판 관계자들, 그리고 한국프로축구연맹 정건일 사무총장이 함께 모인 자리의 분위기는 어딘지 어색했다.

이는 모두들 축구와 관련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평소 좋은 감정을 가질 기회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였다. 특히 감독과 심판간에 쌓여온 감정의 골은 모인 자리의 분위기를 무겁게 짓누르는 듯 싶었다. 잠시 동안 어색한 몇 마디가 오가고 나자 이회택 감독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처음에는 심판 판정에 대해 그동안 쌓였던 것들을 조용조용 꺼내놓던 이 감독은 점차 격양된 목소리로 심판 판정 때문에 경기 중에 감정이 폭발 직전까지 갔을 때도 있었다면서 심판이 판정 실수를 하는 것은 곧 경기를 망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특히 그는 "어웨이 경기도 아니고 홈경기에서 심판이 홈팀에게 판정 상 불리한 적용을 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것"이라면서 "적절한 어드밴티지 룰을 적용해야 홈팀의 관중동원도 성공을 거둘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감독은 종종 국내 축구심판들의 자질문제와 관련해 이야기되곤 하는 외국인 심판 도입에 대해서는 "국내에도 훌륭한 자질을 가진 심판이 많은데 외국인 심판을 기용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면서 "국내 심판에게 보다 양질의 교육을 받게 해 전체적인 수준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안양의 조광래 감독 또한 경기장에서 적절한 어드밴티지 룰을 적용해줄 것을 자리에 참석한 심판들에게 요구했다. 평소 경기장 벤치에 앉아있다 보면 심판들이 어드밴티지 룰을 줄 때와 안 줄 때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답답한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것. 그는 경기장에서 경기를 하는 것은 선수들이지만 그런 선수들을 조율해주는 것은 심판의 역할이 크다고 말했다.

▲ 최길수 심판위원장은 심판의 어려운 입장도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 SP21 김성배
평소 심판 판정에 대해 가장 할 말이 많았을 것 같은 대전의 이태호 감독도 말문을 열었다. 그 역시 쌓인 것이 많았는지 심판 판정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언성은 높아져 있었는데, 그가 가장 크게 불만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경기장에서 심판들이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한다는 것. 이를테면 홈팀이 지고 있을 경우에는 인저리 타임을 적게 줘도 되는데 구태여 많은 시간을 줘 홈팀에게 참패의 빌미를 주곤 하는 것은 솔직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이야기했다.

부산의 김호곤 감독 역시 경기장에서 심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바로 운영의 묘를 살리는 것이라고 했다. 심판도 사람인 이상 몇몇 실수를 할 수는 있겠지만, 경기가 진행될 때 번번이 흐름을 끊는 판결을 내린다면 누가 맘놓고 축구를 하겠냐는 것. 이런 측면에서 심판이 적절한 어드밴티지 룰을 적용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그는 내놓았다.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 심판 측, 대안은 무엇인가?

현역 감독들의 심판 판정에 대한 불만들이 쏟아져 나오고 나자 현재 K리그에서 맹활약 중인 한병화 심판의 반론이 시작되었다. 먼저 `경기 중에 오심을 하고 싶어 오심을 하는 심판은 없을 것`이라는 말로서 심판 측의 입장을 대변한 그는 상황 발생 시 심판에게 무조건적으로 강경하기만 한 선수들과 감독들의 자세도 고쳐져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주심으로 경기장에 서면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욕설 때문에 화가 치밀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떻게 배웠는지 외국인 선수들까지 'XX놈' 혹은 'X새끼' 등의 욕설을 해댈 때면 절로 고개가 흔들어진다는 것.

자리에 참석한 또다른 심판은 과연 심판이 경기장에서 정확한 그라운드의 판관으로서 설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경기 중 심한 반칙에 대해 경고라도 주면 얼굴에 침을 뱉거나 몸을 위협적으로 밀치는데, 해당 선수는 기껏해야 2게임 출장 정지의 판결을 받고 만다는 것.

심판은 경기 중에 오심을 할 경우 심판 생명에 위험이 갈 정도로 중징계를 받는데, 선수나 코치, 감독들은 규정에 위반되는 행위를 했을 때에도 기껏해야 퇴장에 따른 출장정지 처분을 받는 정도로 그치는 것은 심판에게 불리한 면이 없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 선수 못지 않게 심판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한병화 심판
ⓒ SP21 김성배
한편, 최길수 심판위원장은 각 감독들이 어드밴티지 룰에 대해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경기장에서 그것을 적절히 쓴다는 것이 여간해서는 어렵다는 것을 이해해 달라"면서 "엄정한 판정을 해야 심판의 권위가 서기 때문에 때론 어드밴티지 룰이 무시될 경우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심판의 오심과 관련해서는 앞으로 양질의 교육시간을 늘려 철저히 대비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감독과 심판들간의 목소리가 서로 높아지자 계속해서 좌중의 이야기들을 경청하던 한국프로축구연맹 정건일 사무총장은 분위기를 진정시키면서, "어쨌든 모두가 원하는 건 K리그의 성공이 아니겠냐"며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축구열기를 살려나가야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또 양질의 심판교육을 위해서는 연맹 차원에서 내년에 심판 유럽연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감독들과 심판들 사이에서 서로의 주장들이 평행선을 긋듯 앞으로 나가기만 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사실 심판 판정에 대한 논란이 일자 연맹 차원에서 서둘러 감독과 심판이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대안이 나올 정도로 토론회를 기획하지 못한 연맹 측의 준비 부족이 아쉬운 대목이었다.

그럼에도 심판 판정 문제에 대한 해법은 이 작은 토론회에서 이미 나온 듯도 싶었다. 보다 양질의 교육을 통해 심판 자질을 높이는 것과 일선의 감독들과 선수들이 심판도 사람이니 때로 실수할 때도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 해법은 아마도 축구를 통해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에서부터 싹트는 게 아닐까 싶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스포츠피플21(www.sportspeople21.com)에도 실려 있습니다.

2002-08-16 12:26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스포츠피플21(www.sportspeople21.com)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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