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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미네 집> 겉장
아버지 전몽각씨가 허리를 굽혀도 아버지 어깨가 딸 머리 위에 닿습니다. 이때는 언제일까요? 아버지도 머리가 까만 젊은 날인데.
ⓒ 전몽각-시각
헌책방이라는 곳은 우리에게 어떤 책을 만나는 자리가 될까요. 구닥다리나 썩다리 책도 만나는 자리가 될 테고 가끔 주머니가 가벼운 이들에게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새 책을 만나게 해 주는 운 좋은 곳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용돈을 알뜰히 아끼는 어머니와 학생들이 교과서나 참고서와 문제모음을 사러 찾는 곳이기도 하지만 아버지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등에 업거나 손을 잡고 아이가 볼 책을 함께 찾으러 오는 나들이터가 되기도 합니다.

묻힌 자료를 찾고자 하는 학자와 교수들이 눈에 불을 켜고 책을 살피기도 하며 지나갔으나 좋은 책을 소중히 여기는 여러 사람들이 틈틈이 찾는 곳이 되기도 하지요. 그리고 여기에 또 하나 곁들이자면 처음 펴낼 때부터 판이 끊어질 때까지 소리 소문 없는 책을 만나는 자리라고도 하겠습니다.

처음 책이 나왔을 때 어느 누구도 알아보지 않거나 알아주지 않은 책도 많지요. 사진책은 그런 느낌이 더 짙습니다. 참 좋은 책도 알게 모르게 많이 나왔지만 보통 첫판조차 다 소화시키지 못하고 슬그머니 책방에서 자취를 감추기 마련이지요.

▲ 윤미가 자라며
8평짜리 작은 집에서 살던 때. 어린 아기인 윤미가 양푼 그릇을 들고 밥을 먹는 모습. 그릇이 머리통을 다 가리는군요.
ⓒ 전몽각-시각
그래서 오랫동안 사진을 찍은 분들 책꽂이가 아니라면 좋은 사진책은 좀처럼 만나기 힘듭니다. 그리하여 저는 좋은 사진책이나 새책방에서 제대로 진열되는 대접을 못 받고 사라져 버린 책들을 헌책방을 틈틈이 찾으며 한 권 두 권 사서 모으기도 해요.

엊그제 용산 <뿌리서점>에서는 스스로 `아마추어 사진가'라고 몸을 낮추는 전몽각씨 사진책 한 권을 만났습니다. 그 사진책은 그 헌책방 <뿌리서점>에 한때 열 권이 한꺼번에 들어온 적이 있다는데 아무도 그 책을 사가지 않다가 겨우겨우 한두 권을 팔았다고, 그래서 사람들이 별로 안 찾는 그저 그런 책이라 생각하고 안 팔린 책은 그냥 책방 정리할 때 폐휴지로 버리셨다죠.

그러다가 이 책이 이날 다시 나왔을 때 `버릴까 말까' 고민을 하셨답니다. 지난날에도 괜히 사서 헌책방에 두었다가 손해만 보고 짐덩이가 된 책이었으니까요.

▲ 둘째가 태어난 뒤
엄마젖은 이제 둘째 차지. 아기가 젖 빠는 모습을 바로 앞에 찰싹 붙어서 지켜보는 윤미입니다.
ⓒ 전몽각-시각
그러나 제가 보기엔 첫눈에도 참 대단한 책이었습니다. 사진 찍으신 분을 저는 모릅니다. 다만 이 사진책을 펴낸 `시각'이라는 출판사는 사진가 주명덕씨가 꾸리던 곳이었다는 것 하나만 겨우 알 뿐. 어쨌든 <윤미네 집>이라는 사진책은 책장 겉에 박은 사진 한 장부터가 무언가 다른 느낌을 주었어요. 자신이 낳아 기른 딸내미가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고르고 있을 때 뒤에 슬그머니 다가와서 딸내미 뒤에 착 붙어서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 씩 웃음이 나오더군요.

<윤미네 집>이라는 사진책. 이 책은 전윤미가 태어난 1964년부터 대학교 다니며 만난 짝과 시집을 간 1989년까지 사랑스러운 딸내미가 자라온 모습을 담은 책입니다. 그냥 사진이 좋아서 가까이 했다는 전몽각씨. 그이는 아내가 힘겹게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아내에게 미안하고 아내가 너무 애먹는다는 생각을 했다지요. 그리고 그때 첫 아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뒤 그 뒤로 그 아이가 자라는 동안, 다 자란 뒤까지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자 마음먹었다고요.

▲ 국민학생이 된 윤미
국민학생(지금은 초등학생)이 된 윤미는 부지런히 글씨 쓰기를 합니다. 그동안 뛰어놀기만 하면 되던 윤미지만 이제부터는 공부라는 일이 이 아이 어깨를 짓누를 테지요.
ⓒ 전몽각-시각
그렇게 해서 8평짜리 마포아파트에서 작은 식구가 오순도순 살아가며 찍은 사진은 화장실에서 현상, 인화를 해 가며 딸 윤미를 중심으로 자기 식구 삶을 담았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전몽각씨 아버지 어머니(윤미에게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전씨네 집을 `윤미네'라고 불렀다지요. 바로 그 윤미네 스물여섯 해 삶이 고스란히 <윤미네 집>이라는 사진책 속에 담겼습니다.

윤미가 어머니젖을 빨며 자랄 때, 윤미 아래로 아우가 둘 태어나며 윤미와 마찬가지로 젖을 빨며 자랄 때, 그 아이들이 함께 자라며 동네 마실도 가고 자전거를 타고 놀러도 가던 때, 유치원에 처음 들어가던 날, 국민학교에 처음 들어가던 날, 이제 학교옷을 맞춰 입고 중학생이 되던 날, 고등학생이 되어
▲ 고등학생으로
어느덧 키가 훌쩍 자라 164센티까지 되었다는 고등학생 때. 이제는 아버지보다 키가 큽니다. 아버지가 까치발 돋움을 해야 딸과 같은 키가 된다고 할까요?
ⓒ 전몽각-시각
공부에 매달리면서 사진기를 의식하며 아버지(전몽각씨)가 사진을 찍을 때 껄끄러움을 느끼는 때가 되고 대학생이 되어 집에 있는 시간이 훨씬 줄면서 그때 모습은 사진 속에 얼마 남아 있지 않습니다.

거의 모두 학교에 들어가기 앞선 때 모습, 사진을 찍는지 안 찍는지도 모르던 때 모습이지요.

그리고 마지막 사진은 딸내미가 시집 가는 날입니다. 이제는 머리가 온통 하얗게 센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 그리고 대학교 졸업식 때 어머니 모습은 완전히 할머니 모습이고 두 아들은 누나보다도 훨씬 큰 키로 자랐고요.

딸내미 시집 가는 날까지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사진으로 담고자 했던 전몽각씨였지만 둘레에서 하도 말리는 바람에 허리도 구부정하게 된 전몽각씨가 딸내미 손을 잡고 걸어들어가는 모습은 강운구씨가 대신 찍어 주었답니다.

이 사진책 <윤미네 집>은 1990년에 나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사진책을 새 책으로서 만날 수 없습니다.

▲ 대학교를 마치다
스물다섯 해라는 시간. 쏜살같은 시간인가 봅니다. 세 아이를 키운 어머니는 누구나 보아도 알 수 있는 할머니가 되었고 두 아우는 누나보다도 키가 더 큽니다.
ⓒ 전몽각-시각
하고 많은 책들이 있고 숱하디 숱한 사진책도 있건만 <윤미네 집>을 비롯한 가슴을 적시고 따뜻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책들은 모두 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지요.

그래서요, 그래서... 이런 책들을 헌책방에서 만나고자 오늘도 사진기를 어깨에 걸터매고 길을 나선답니다. 묻혀가는 책들, 소리 소문 없이 폐휴지로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아쉽고 안타까운 좋은 책들을 찾아내고 캐내고 다시 나누고 싶어서요.



▲ 마지막 사진-시집 가는 딸
딸내미 윤미를 생각하며 찍어온 사진 마지막입니다. 시집 가는 날 모습이지요. 허리를 꼿꼿하게 펴지 못하는 흰머리 할아버지. 이제 이 할아버지는 어떤 사진을 담아내서 `윤미네 집'을 기억하는 사진을 남길 수 있을까요.
ⓒ 전몽각-강운구


덧붙이는 글 | 이 사진책 속에 담은 사진 가운데 몇 장을 스캐너로 긁어서 덧붙입니다.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신 전몽각씨에게 허락을 받으면 좋겠으나 이해해 주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사진책을 지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함께 하며 알아주면서 나중에 도서관이나 헌책방에서라도 찾아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고요. 덧붙여 이렇게라도 올리지 않으면 이 사진들 속에 담긴 풋풋한 사랑과 따순 마음을 나누기 어려워 사진책을 보며 가슴 뭉클함을 느낀 몇 장을 골라서 올려 봅니다.


윤미네 집 -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

전몽각 지음, 포토넷(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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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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