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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개의 이름을 가진 통도사의 중심
대웅전과 대방광전, 금강계단, 적멸보궁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통도사 대웅전은, 두 개의 건물이 합쳐진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이 대웅전 안에는 불상이 없다. 왜?
ⓒ 권기봉
상로전은 양산 통도사의 중심 영역으로, 불보 사찰 통도사의 정신적 근거인 금강계단이 바로 여기에 있다. 통도사 답사를 하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통도사까지 가는 여정 자체도 답사의 큰 묘미이긴 하지만, 금강계단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여기까지 오는 여정 내내 다른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바로 그런 금강계단을 보기 위해서는 먼저 대웅전을 지나갈 필요가 있다. 너무 갑작스럽게 금강계단을 보면 금세 기대감이 허공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니 말이다.

▲ 연꽃 봉오리들의 행렬
대웅전 처마에 도자기로 된 연꽃 봉오리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이는 가장 아래쪽 기와가 미끄러져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법당을 연꽃으로 장식한다는 종교적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권기봉
대웅전은 통도사의 건물들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다. 즉 두 건물이 하나가 된 듯한 모습이 그것인데, 밖에서 보면 팔작지붕이 'T'자형으로 나 있는데 동쪽 부분과 남쪽, 북쪽 부분에 각각 박공이 있어 이런 설명을 뒷받침해주고 있고 역시 안에서 보아도 기둥의 배치를 볼 때 두 건물의 복합형이라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대웅전의 현판은 보통 건물처럼 하나가 아니라 건물을 빙 둘러가며 4개나 걸려 있는데, 동쪽부터 북쪽으로 각각 '대웅전'과 '대방광전', '금강계단', '적멸보궁'이라고 걸려 있는 현판이 그것이다.

▲ 돌계단의 아름다움에 취하다
양쪽 소맷돌이 연꽃으로 장식되어 있는 대웅전의 동쪽 계단으로,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남쪽 계단보다 화려해 보인다.
ⓒ 권기봉
▲ '연화세계'에 들다
대웅전의 동쪽 계단에는 이처럼 소맷돌에 활짝 핀 연꽃을 조각해 놓아 신성한 공간을 더욱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또한 연꽃 줄기가 꽃을 휘감고 축대 아래로 연결되는 모습이 이채롭다.
ⓒ 권기봉
▲ 연꽃밭에 들어선 불당
남쪽 계단에는 이전의 동쪽 계단과는 달리 아직 개화하지 않은 봉오리가 조각되어 있는데, 만발한 연꽃이 주는 느낌과 또 다른 맛이다. 마치 통도사 대웅전은 연꽃밭에 세워진 불당이란 느낌을 준다.
ⓒ 권기봉
▲ 기단에 들인 정성과 아름다움
면석에 역시나 연꽃이 조각되어 있는데, 기단의 짜임새가 여느 사찰과는 다르다. 즉 그냥 평면형의 돌을 쌓은 단순한 모습이 아니라 지대석과 면석, 갑석을 짜임새 있게 배치함으로써 정성을 보이고 있다.
ⓒ 권기봉

그런데 예쁘게 꽃과 꽃봉오리 문양으로 장식한 계단을 올라 대웅전 안으로 들어서면 왠지 모르게 어색한 느낌을 받게 된다. 바닥에 앉은 불자들이 불상이 아니라 북쪽으로 뚫려 있는 유리창을 향해 절을 하는 게 아닌가. 그러고 보니 불단은 보이는데 법당 안에 '으레 있게 마련인' 불상은 보이지 않는다. 참 기이한 일이다.

▲ 승려가 되고자 한다면
부처의 진신사리와 가사가 봉안되어 있는 금강계단으로 인해 대웅전 안에는 따로 불상을 설치하지 않았다.
ⓒ 권기봉
바로 여기에 통도사의 창건 비밀이 숨겨져 있다. 즉 통도사에는 부처를 본떠 만든 불상이 아닌 '진짜' 부처가 있다. 대웅전 유리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자. 작지 않은 규모의 계단이 보인다. 금강계단이라고 하는 이것은 2층의 널따란 석단 위에 마치 작은 종처럼 보이는 부도를 놓고 그 안에 석가의 진신사리를 봉안해 놓은 것이다. 이 진신사리는 신라 선덕여왕 15년인 646년에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세울 때 당나라 종남산 운제사에서 불경과 함께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금강 계단이 봉안하고 있는 것이 부처의 진신사리, 즉 부처 그 자체이기에 굳이 대웅전 안에 다시 불상을 안치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진신사리는 일반적으로 불상보다 높은 위상을 갖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그저 유리창을 달아 밖을 내다보며 수행을 하면 되었던 것이다.

한편 승려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아야 하기에, 이곳 통도사 금강계단은 계를 받아 산문에 들고자 하는 이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 "이 터를 지키도록 해주세요"
통도사 창건에 얽힌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구룡지. 아홉 마리의 독룡 중 한 마리가 남아 터를 지키고자 해 자장율사는 연못을 다 메우지 않고 이렇게 남겨두었다고 전해진다.
ⓒ 권기봉
대웅전 서편으로는 연못이 하나 보이는데, 하로전 영역의 약사전 앞에 있는 그것보다 크기도 약간 더 크고 다리도 아담하니 하나 놓여 있다. 금강계단이 통도사의 위상을 말해주는 것이라면, 이 연못 '구룡지(九龍池)'는 통도사 창건에 얽힌 뒷이야기를 말해주고 있다.

자장 율사가 당나라 종남산 운제사 문수보살상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을 때 문수보살이 승려로 변하면서 진신사리 1백 알과 가사, 경전, 염주 등을 자장율사에게 주며, 신라땅 영축산에 독을 품은 용 아홉 마리가 살고 있는데 백성들에게 큰 해를 끼치고 있으니 그 용이 살고 있는 연못을 메워 금강계단을 세우고 진신사리와 가사 등을 봉안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장율사의 가르침에 따라 아홉 마리의 용 중 다섯 마리는 오룡동으로, 세 마리는 삼동곡으로 갔다. 이제 남은 용은 한 마리. 계속 이 연못에 남아 터를 지키고 싶다는 청을 받아들여 자장은 연못을 전부 메우지 않고 일부분을 그냥 남겨 두게 되었는데, 그 연못이 바로 지금의 구룡지인 것이다.

▲ 3대 화상을 기리며
지공과 나옹, 무학의 3대 화상을 봉안하고 있는 삼성각으로, 건물 안 중앙에는 삼성탱이 있고 칠성탱과 독성탱을 함께 두어 삼성뿐만 아니라 칠성과 독성을 모두 기리고 있다.
ⓒ 권기봉
마지막으로 구룡지 서쪽으로 삼성각이, 북쪽으로는 산령각이 보이며, 남쪽으로는 응진전이 있어 삼성이나 칠성 등을 봉안하고 있다. 특히 산령각의 경우에는 불교가 한반도 땅에 들어오면서 토속 신앙과 접합한 한 예로 토속신의 하나인 산신을 모시고 있는 전각이고, 대웅전 남동쪽에 자리한 명부전은 염라대왕의 화신이라고도 불리는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어 부처가 입멸한 뒤 미륵이 나오기까지 중생들을 제도하는 역할을 하는 법당이다.

▲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대웅전 남서쪽에 위치한 응진전은 석가여래상과 미륵보살상, 제화갈라보살상을 봉안해 과거와 현재, 미래의 삼불을 함께 모신 형국이다.
ⓒ 권기봉
부처의 진신사리를 지닌 사찰, 그러면서도 유장한 역사를 자랑하는 통도사. 통도사 답사는 많은 준비를 필요로 하지만, 솔직히 그저 눈만으로 마음만으로 둘러보아도 부담이 없을 듯 하다. 다만 책이나 인터넷 사이트 등을 돌아보며 통도사 창건에 얽힌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알아보고, 달성 용연사 석조계단과 김제 금산사의 방등계단 등을 나중에라도 돌아볼 수 있다면 계단이 갖는 의미를 확실히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 더 준비할 것은 무더운 여름날을 이겨낼 굳은 의지와 시원한 생수 한 병.

▲ "염라대왕의 화신이 여기에 있다"
대웅전 남동쪽에 자리한 명부전은 염라대왕의 화신이라고도 불리는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어 부처가 입멸한 뒤 미륵이 나오기까지 중생들을 제도하는 역할을 하는 법당이다. 한편 각 대왕들의 주위에는 죄를 지은 자들의 고통스런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 권기봉
▲ 여기도 꽃비가 내린다네
대웅전은 어딜 둘러봐도 연꽃에 겨워하고 있는 모습이다. 동쪽 문에 수놓아져 있는 연꽃은 그 화려한 모습에 마음을 홀리게 한다. 불교에 있어서의 연꽃은 청정과 고결을 의미한다.
ⓒ 권기봉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신촌클럽(www.shinchonclub.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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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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