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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교시 수업을 없애야 한다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새벽에 등교하여 교실에서 잠을 자는 고 3학생들을 외국의 학교와 비교한 방송이 나가고 난 후 이야기다. 고된 시집살이를 한 시어머니가 더 고된 시집을 살린다더니, 고생스럽게 공부해 출세(?)하면 고등학생의 고통은 까맣게 잊어버리는 모양이다.

'고까짓 일년을 못 참아서 앓는 소리하느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참을성도 사람 나름이다. 잘 참고 견디는 사람도 잊지만 오죽 못견디면 아파트에서 뛰어 내리거나 약을 먹고 죽기까지 할까?

일류대학을 합격해 환호성을 지르는 승자의 뒤에는 삶의 의지를 잃고 실의와 좌절감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엄격한 규칙이 주어지는 공정한 경쟁이라면 패자는 승자에게 박수를 보내야 한다. 승자가 노력할 동안 게으름을 부린 대가는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는 기회균등이라는 원칙이 주어지지 않고 있다. 고액 과외와 쪽집게 과외를 하는 학생과 보충수업도 돈이 없어 못하는 학생과 공정한 경쟁이 될 리 없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승패를 결정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또한 개성이나 소질이 무시되고 국어, 영어, 수학의 점수로 사람의 가치까지를 한 줄로 세우는 경쟁은 공정하지 못하다.

내년에는 고등학교 3학년까지 7차 교육과정이 적용된다.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능력 있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한다. BK 21로 대학을 서열화하고 고등학교는 자립형 사립고를 30학교까지 확대 운영하겠다고 한다. 영재학교를 만들고 이상적인 학교도 시범운영 한다.

평준화가 하향 평준화됐기 때문에 보완책이라고 좋게 말한다. 그러나 속뜻은 다른데 있다. 신자유주의라고 이름 붙인 강대국중심의 경제질서 재편논의는 약소국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강대국중심의 경제질서 재편에 우리는 알아서 기는 셈이다.

완전경쟁이라는 신자유주의 경제논리는 학교라고 예외를 주지 않기 때문이란다. 교육인적자원부가 드디어 속내를 드러냈다. '공교육 내실화 대책'이 그것인데 보충수업도 부활시키고 국가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를 다시 시작하겠단다. 그러면 그렇지. 서울대학을 그대로 두고 처음부터 안 되는 개혁인 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학생선택권의 확대로 시작되는 7차 교육과정의 시행은 힘없는 교과(입시과목이 아닌 교과)교사는 자동 퇴출 된다. 자격증이 없이도 교단에서 수업을 할 수 있는 교직입직제가 시행되고 일류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박사학위를 가졌거나 수업을 많이 하는 교사가 임금을 더 받는 능률급제가 시행된다.

능률이라는 이름으로 정규교사보다 임시직 교사 수를 더욱 늘리고 있다. 그것이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이익이 되면 선'이요 '손해는 악'이 되는 것이 경제논리다. 정식교사보다 임금이 적게 들어가니 경제적이란다.

신자유주의 사회에는 학생들만 아니라 교사들도 살아남기 위해 삭막한 경쟁 대열에 뛰어들어야 한다. 교무실에는 서로 일어서야 얼굴을 볼 수 있도록 닫혀 있는데 차츰 마음까지 닫히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삶의 질을 말하고 있다. 정보화사회에서는 수백 명이 하던 일을 컴퓨터가 대신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시간을 단축해 일자리를 늘리고 여가시간을 즐길 수 있다. 경영자들은 반대하지만 학교도 내년부터 주 5일 근무제를 시행하겠다고 한다.

내년에는 월 1회, 2004년에는 월 2회, 2005년부터는 모든 학교가 일주일에 5일만 수업을 하게 된다. 참으로 반가운 얘기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영세사업장에 근무하는 근로자나 맞벌이를 하는 집 자녀는 갈 곳이 없다.

결국 가난한 집 아이들은 수업이 없는 날 집을 지키거나 오락실로 만화방으로 떠돌이 신세가 될 것이다, 사교육시장과 경제력이 있는 집 아이들은 참으로 질 높은 삶을 누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가난한 자에게 주어지는 자유'란 있으나 마나한 것이다.

교육을 살려야 한다고 야단들이다. 전 교육부 장관은 교육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무능한 교사에게 돌리면서 학원강사보다 못하다는 표현조차 마다 않았다. 언제 학교에서 교육다운 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라도 줘 본 것처럼 교사와 학교에 책임을 전가하기 바쁘다.

원격조정처럼 국정교과서를 만들고 사사건건 통제하고 시학(視學)하고 수없이 많은 공문을 내려보내 그 처리로 수업을 방해해 온 장본인이 교육관료다. 이제 그 책임을 교사의 무능과 평준화에 전가시키고 있다. 학교를 교육할 수 있는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교육주체가 구경꾼이 되면 피해자는 학생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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