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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촬영된 하비브하우스(미 대사관 영빈관, 좌측)와 정문 앞 표식. 무성한 수풀속에 모습을 감춘 하비브하우스는 외국 공관으로는 드물게 한국식인데 부속건물 가운데는 덕수궁의 전각이 아직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까다로운 미 대사관 측은 '9.11 테러' 이후 이곳의 사진 촬영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답사 루트를 잘못 잡은 것일까? 서울 중구 덕수초등학교 길목에서부터 시작된 '정동 나들이'에서 처음 눈길을 끈 것은 유서 깊은 건물들이 아닌, 사람들이었다. '덕수궁 돌담길'에 늘어선 전투경찰들은 느닷없는 호각소리에 황망히 정동 3거리로 달려나갔다. 다급하게 덕수궁 돌담길을 뛰어가는 한 경관을 붙잡아 세웠다.

"무슨 일 입니까? 시위가 있나요?"
"지금 FTX 훈련중입니다"


고참급으로 보이는 또 다른 전경은 "FTX는 테러대비 실전훈련"이라고 설명했다. 구 경기여고로부터 4∼5m 간격으로 늘어선 '전경들의 숲'을 지나 정동3거리에 다다르니 긴급 출동한 전경들이 '테러리스트'(실제로는 같은 동료 전경)의 팔을 꺾어 어딘가로 데려가고 있었다. '작전'은 성공했고, 돌담길에 내려앉았던 팽팽한 긴장 분위기도 순간 풀어졌다.

▲하비브하우스를 지키는 경찰들.
70년대까지 낭만의 대명사였던 '덕수궁 돌담길'에 더 이상 팔짱을 낀 연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세태의 변화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덕수궁 돌담길에 죽 늘어서 위압적으로 행인들을 감시하는 '전경들의 숲'을 헤치며 유유자적 데이트를 즐길 남녀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하비브하우스와 미국 대사관저 주변에 전경들의 수가 눈에 띄게 불어난 것은 1989년 10월13일 이후. 이날 새벽 5시30분경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이하 서총련) 소속 대학생 8명이 대사관저에 침입, '통상개방 압력 철회' 등을 요구하며 관저 내에서 50분간 농성을 벌이다가 전원 연행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응접실까지 들어온 학생들을 피하느라 혼줄이 난 도널드 그레그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당일 오전 긴급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어 "한미관계는 이상 없다"고 천명해야 했다. 당시 남대문 경찰서장이 점거 사태를 막지 못한 책임으로 직위해제를 당하는 등 이 사건으로 경찰도 큰 곤욕을 치렀다.

▲인적이 드문 덕수궁 돌담길. 담벼락에 전경들의 방패만이 죽 늘어 서있다.
이후 관저 주변의 돌발적인 반미시위에 대비해 전경들의 수가 대폭 증강됐고, 차량 출입을 통제하는 바리케이드도 세워졌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보던 한국의 고궁과 미국 공관의 묘한 조화는 이렇게 깨졌고, 그 사이를 전경들이 메우며 행인들은 자취를 감췄다. 추억의 명소였던 '덕수궁 돌담길'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갔다.

가이드를 자청한 강임산(겨레문화답사연합 대표) 씨는 만일을 대비해 카메라를 준비한 기자에게 "사진 촬영은 어림도 없다. 그나마 작년 여름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9.11 테러 이후로는 아주 살벌해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분위기는 기자가 미 대사관저 주변의 다른 유적 취재를 위해 약간만 대사관저로 발을 옮겨도 그대로 감지됐다.

정동 3거리로 나오니 약간 숨통이 트였다. 그러나 구 배재고 부지에 우뚝 솟은 고층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99년 5월 착공에 들어가, 지금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주한 러시아 대사관이다.

6공화국의 북방외교 결과, 러시아(당시 소련)는 90년 한국과의 국교를 회복했다. 러시아가 아관파천(俄館播遷)의 무대였던 구 러시아 공사관 자리를 놔두고 300m나 떨어진 구 배재고 자리까지 온 이유를 강임산 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95년 9월 한국과 러시아간에 구 배재고 자리에 러시아 대사관을 두기로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옛 러시아 공사관터(지금의 정동공원)를 얻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동공원 자리에 대사관을 지으면 러시아 대사관에서 미 대사관저 사람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그대로 감시할 수 있게 되니까요. 미국 측이 러시아의 의도에 발끈했고, 결국 한국이 러시아를 달래어 구 배재고터로 보낸 것이죠. 참고로, 흰 탑의 꼭대기에 올라가면 덕수궁 내부도 훤히 들여다보였다는데, 고종이 덕수궁으로 옮긴 뒤에도 러시아 외교관들은 탑의 꼭대기에 올라가 궁궐 안을 감시했다고 합니다"


▲구 배재고 터에 자리잡은 러시아 대사관의 위용.
최근 남북관계가 요동치면서 한반도 정세에 대한 고급 정보를 수집하려는 미국과 러시아의 정보전도 한층 가열됐다. 러시아 대사관이 구 배재고터로 밀려갔음에도 안심못한 미국이 정동의 C빌딩에 비밀 아지트를 만들어 러시아 대사관 건설 현황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다.

미국 대사관의 정동 이전이 계속 미뤄져온 배경에 러시아 대사관이 완공된 후 정동에 터를 다지려는 미국의 계산도 적잖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러시아 대사관이 거의 완공된 현 시점부터 미국대사관의 정동 이전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쯤 되면 지금의 정동 상황이 덕수궁이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공사관들에 둘러싸여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졌던 대한제국 말기에 비견된다는 시민단체들의 주장은 과장이 아니다.

구 러시아 공사관이 있던 정동 공원에는 흰 탑신만이 남아 과거의 영화를 증언하고 있다. 이곳에도 어김없이 전경들이 배치되어 있다. 러시아 공사관이 있던 언덕에서도 경기여고 부지와 미 대사관저를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지키던 전경은 정동 공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던 기자에게 다가와 사진 촬영을 제지했다. "카메라를 미 대사관저 쪽으로 돌리지 않겠다"는 약속에도 신경이 쓰였는지 그는 기자가 정동 공원을 떠나는 순간까지 감시의 눈을 떼지 않았다.

▲중명전의 현재 모습
정동 극장 옆 골목으로 들어서면 지금은 개인소유 건물이 된 중명전이 있다. 중명전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비극의 현장이지만, 건물 옆의 표지를 찬찬히 뜯어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오랫동안 세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중명전은 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구속과 함께 잠시 화제를 모았다. 수천억 원 대의 비자금을 축적, 검찰에 구속된 노 전 대통령이 비자금을 은닉하기 위해 사들인 부동산들 중에 중명전이 끼어있었기 때문이다.

노씨는 유서 깊은 건물의 내력조차 모른 채 중명전을 사들였다고 하는데, 그는 그해 11월17일에 구속 수감됐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을사보호조약(1905년11월17일)이 체결된 지 정확히 9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한편으로는 조선 왕조가 외교권을 빼앗기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망국의 현장'을 부정한 돈으로 사들였던 전직 대통령이 영어(囹圄)의 몸이 된 '11월17일'은 명실상부한 '국치일(國恥日)'로 기억될 것이다.

이화여고와 구 경실련 사무실 사이에 있는 구 하남 호텔 부지 공터에는 캐나다 국기가 나부끼게 된다. 고층건물이 들어설 수 없는 지역이지만, 작년 6월 서울시가 이 지역을 일반주거지역(용적률 최고 300%)에서 준주거지역(용적률 최고400%)으로 용도 변경해줘 9층 건물이 들어설 수 있게 됐다. 시민단체들의 반발 속에 아직 공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날씨가 풀리면 언제라도 공사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다. (박스 기사 참고)

외국 대사관은 아니지만, 구 러시아 공사관 언덕 바로 옆에도 또 다른 고층건물이 올라서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우리 문화재들을 보전, 유지해야 한다는 취지로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이 정작 현장에서는 사문화(死文化)되고 있었다.

▲캐나다 대사관이 들어설 구 하남호텔 부지.(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반나절의 정동 답사는 우리 근대사의 현장이 외세의 이해 관계와 서울시의 개발 논리에 찢겨져 나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줬다. 한국 문화에 관심 있는 내외국인들은 공히 정동 일대가 '근대유적 답사 1번지'라는 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정동을 보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언젠가 정동은 '현대유적(?) 답사 1번지'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건축가 서현이 쓴 기행 에세이 '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는 덕수궁 길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덕수궁 길은 아름답다. 걷자.

그러나 이 길에서는 꽃과 낙엽 너머 궁궐에 새겨진 맹수들의 이빨자국도 보아야 한다. 돌담을 따라, 기어이 미국대사관저 앞을 지나 덕수궁을 한바퀴 돌자. 왕궁의 담 허리를 차지한 영국대사관은 당신의 길을 막는다. 광복 직후의 지도에서도 통하던 이 길을 막은 힘은 무엇이었을까.

성공회는 이국에 전파를 하면 그 나라의 전통건축 양식으로 교회를 짓는다. 건축으로 번안된 포용과 겸손함이다. 그러나 조선의 건축이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양식이었던가. 그 종탑이 전망대처럼 왕궁을 내려다보게 하는 것이 사라진 왕조에 대한 이국의 예절이었던가. 러시아의 공사관이 궁궐보다 높은 곳에서 궁궐을 내려다보며 지어질 때, 그 나라는 독립국이었는가.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더 자라면 거리는 더 아름다워지겠다. 하늘은 여전히 푸를 것이다.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외국 공관들의 '정동 러시'는 문화재 볼모 삼겠다는 발상"
<인터뷰> 강찬석 문화개혁시민연대 문화유산위원장

"캐나다 대사관이 정동에 들어온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요. 내가 서울시에 가서 따졌죠. '정동 캐나다 대사관'에 특혜를 주면 틀림없이 구 경기여고 부지로 대사관을 옮기려는 미국도 서울시에 특혜를 요구할 거라고.

지금 보세요. 미국 대사관이 이제 정동으로 밀고 들어오려는데, 주차규모 등을 줄여달라며 특혜를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캐나다는 봐주면서 왜 우리는 안 봐주냐고 따지는데 뭐라고 반박하겠습니까?"


강찬석 '문화개혁 시민연대' 문화유산위원장(사진)은 작년 6월 캐나다 대사관이 들어설 구 하남호텔 부지에 용도변경 허가를 내줘 '후환'에 대비하지 못한 서울시의 '주먹구구 행정'을 거침없이 질타했다. 그러나 강 위원장은 "과거 캐나다가 오타와의 문화재 보존지역에 신축될 한국 대사관의 용도변경 허가를 내줬으니 우리도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서울시와 외교통상부의 '상호주의' 논리의 허점도 지적했다.

"오타와 현지 상황을 확인하고 온 학계 인사도 있습니다. 그분이 알아보니 당시 오타와 문화재보존지역에는 한국 대사관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 대사관들도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캐나다가 한국 대사관이 있던 구역 전체를 용도 변경해준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만을 위해 편의를 봐준 것이 아닌데, 우리는 거꾸로 캐나다를 봐주다 보니 미국까지 특혜를 줘야할 처지에 놓였습니다"

강 위원장은 "발굴을 해서 유구(전각터)가 나온다는 보장이 있느냐"는 정부의 면피 논리에 대해 "그러니 파봐야 하지 않느냐"며 경기여고 부지 바로 건너편에 보이는 경희궁터를 예로 들었다.

"94년 7월 서울시가 구 서울고 부지에 시립박물관 건립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주차장을 막 지으려고 하는데 그곳에서 우물터, 자기류, 배수로, 주춧돌 등이 포함된 500여 평의 유구가 나온 거예요. 당연히 서울시는 공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죠. 그 당시 경희궁터 발굴은 우연히 이뤄졌는데, 지금 뻔히 구 경기여고 밑에 선원전의 유구가 있다는 걸 알면서 공사를 강행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그러나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대사관의 정동 이전이 반대여론에 부딪혀 시일을 끌 경우 미국 측이 이전을 포기하고 현 세종로 대사관에 눌러앉을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미 대사관이 정동에 이전해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세종로 미 대사관도 그냥 두고볼 수만 없다는 입장이다.

"미 대사관은 궁극적으로 용산 미군기지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굳이 4대문 안의 땅을 고집하는 이유가 뭡니까? 사실 용산의 미군도 문제입니다. 서울의 금싸라기 땅이 대대로 외국 군대들의 주둔지로 쓰이고 있지 않습니까? 용산 미군기지의 존재가 뉴욕 센트럴파크에 외국군이 주둔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정동 개발의 부당성'을 한참동안 설명하던 강 위원장은 인터뷰 말미에 가슴속에 품었던 말을 결국 하고 말았다.

"내가 괘씸하게 생각하는 것은, 미국, 러시아, 캐나다 등 외국 대사관들이 속속 정동으로 들어오려는 속셈입니다. 전쟁이나 폭동 등으로 정정(政情)이 불안할 경우 여차하면 덕수궁 뒤로 숨겠다는 것 아닙니까? 남의 나라 문화유산을 볼모로 자신들을 지키려는 외세에 대해 할 말도 제대로 못하는 우리의 처지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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