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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사관이 신축될 구 경기여고 부지. 지금은 전투경찰들의 충정 훈련장으로 바뀌었다. ⓒ 정동지역 역사경관 지키기 시민대책위

역사는 반복되는가? 구한말 외국 공관들의 난립으로 '서구 열강의 각축장'이 됐던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 주변이 100여 년만에 다시 각국의 대사관 신축 바람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화여고 옆에는 이미 신축 러시아 대사관이 우뚝 솟았고, 예원학교 옆 하남호텔 터에도 9층 규모의 캐나다 대사관이 들어설 전망이다. 특히 외국 공관들의 난개발은 구 경기여고 부지에 들어설 신축 미 대사관의 완공(2006년 예정)으로 절정에 이를 전망이다.

그러나 지상 15층 규모의 미 대사관 건물이 들어서면 주변 경관을 파괴함은 물론, 개교 이전의 경기여고에 자리잡았던 옛 덕수궁의 유적들이 훼손될 것이라는 지적들이 높다. 이에 따라 미 대사관 신축 작업에 앞서 발굴작업이 진행되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미 대사관의 정동 이전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오마이뉴스>는 정동의 우리 근대 문화유적 현장을 보호하기 위해 결성된 '정동지역 역사경관 지키기 시민대책위(cafe.daum.net/hiscape)'와 함께 두 차례(건,곤)에 거쳐 미 대사관 신축의 문제점과 함께 덕수궁과 정동의 기구한 역사를 조망한다.<편집자 주>


빠르면 올해부터 미 대사관의 신축 공사가 이뤄질 서울 정동의 구 경기여고 부지가 구한말 조선왕실이 역대 왕들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제사를 올린 덕수궁 선원전(璿源殿)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대사관 신축에 앞서 문화유산을 유지,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

문화유산 관련 시민단체 '겨레문화답사연합'의 강임산 대표는 7일 "세종로 미국 대사관이 이전할 구 경기여고 부지는 당대 왕의 4대조 전왕들과 태조의 어진(御眞: 왕의 영정)을 모셔놓고 수시로 왕이 다례(茶禮)를 올리던 선원전이 있던 자리였다"고 밝혔다.

강 대표는 "선원전이 일제에 의해 철거된 뒤 그 자리에 경성제일여고(해방후의 경기여고)가 들어섰다. 경기여고가 강남으로 이전한 상황에서 그 자리에 15층 규모의 고층건물이 들어서면 대한제국 시기의 궁궐 유적을 발굴할 기회를 영영 잃게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구 경기여고 부지가 덕수궁 선원전이었음을 보여주는 한성부 지도(1900년 제작). 지도에 붉은 선 안에 표시된 영역이 선원전, 지금의 구 경기여고 자리이다. '미관'은 당시 미국 공사관(현 하비브하우스), '영관'은 영국 공사관(현 주한 영국대사관)을 의미한다.
1897년 고종의 명으로 건립된 선원전은 어진들이 모셔진 곳이었기 때문에 수시로 왕이 다례를 올리며 신성하게 받들어졌던 장소였다. 3년 후 선원전에 화재가 발생하여 어진들이 모두 소실되자 고종이 음식 가지 수를 줄이고, 가무를 중지한 채 소복을 입고 애도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선원전이 조선 왕실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케 한다.

그런 만큼 선원전은 궁궐 안에 자리잡고 가장 존귀하게 받들어져야 했지만, 덕수궁의 선원전은 19세기 후반 외국 공사관들이 정동 일대에 들어선 상황에서 덕수궁 중심부에 입지를 잡지 못하고 북서쪽에 자리잡게 됐다.

1910년 조선의 국권을 강탈한 일본은 1922년 지금의 덕수궁과 미국 공사관(현 하비브하우스) 사이에 도로를 뚫어 이른바 덕수궁 돌담길을 만든 후 선원전을 헐어버린다. 일본은 그 자리에 경성제일여고를 세우는데, 문제는 그 과정에서 복토 공사를 통해 유적들을 땅에 매몰시킨 상태에서 건물을 세웠다는 것이다.

강찬석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은 "통상 건물을 지을 때는 땅을 깊게 판 후 부지를 깨끗이 정리하는 법인데, 경성제일여고를 건립하려던 일본은 그 작업도 귀찮았는지 선원전 터를 흙으로 덮고 그 위에 건물을 짓는 방식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강 위원장은 "선원전 터에는 주요 건물 4채와 수많은 부속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구 경기여고 부지를 파보면 당시의 유구(遺構, 과거 토목 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잔존물)들이 나올 것이 분명한데, 발굴 작업도 한 번 안하고 이곳에 미 대사관과 직원 숙소가 들어서게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1910년 일본인에 의해 제작된 덕수궁 평면도. 붉은 선으로 표시된 영역이 선원전(殿源璿)과 주변 지역. 현재의 덕수궁 규모는 대한제국 시기에 비해 1/3로 축소되어 있다. (해당 영역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난 5일에는 '정동 미 대사관 시대'의 개막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 생겼다. 서울시가 이날 미 대사관 맞은 편에 자리한 구세군 중앙회관(1926년 건립)을 시 문화재로 지정, 고시한 것.

이로 인해 구 경기여고 부지의 미 대사관 공사가 구세군 중앙회관의 보존, 유지에 지장을 줄 경우 서울시는 불허할 수 있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에는 "건설공사시 문화재의 보호를 위하여 해당 문화재의 외곽경계로부터 500미터 이내에는 허가를 받도록 한다"는 규정이 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문화재 보호법상의 500m 규정은 강제규정이 아니다. 그러나 공사 주체가 서울시와 협의하도록 되어있다. 서울시 지침은 50m인데, 구세군 중앙회관으로부터 반경 50m 이내에 고층 건물을 지으려고 한다면 건축 허가가 안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1986년 서울시와 미 대사관이 부지를 맞바꾸기로 할 때 체결한 양해각서의 내용도 검토해봐야 한다"며 조심스런 입장을 내비쳤다.

덕수궁, '돌담길'만 떠올리기엔...

▲'망국을 지켜본 비운의 황제' 고종(앉은 이)과 순종의 모습(1890년경으로 추정)
덕수궁을 나와 오른편으로 펼쳐진 돌담길. 70-80년대에 "연인과 함께 이곳을 거닐면 헤어진다"는 속설과 함께 낭만적인 정취를 간직하고 있지만, 조선왕조의 최후를 지켜본 덕수궁의 역사는 낭만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임진왜란 후 선조의 임시 행궁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경운궁(덕수궁의 당대 명칭)은 19세기 후반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한 고종이 이곳으로 환어(還御)하며 궁궐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고종이 경운궁에 거처를 마련한 데에는 당시 정동 일대에 밀집한 러시아,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서구 공사관들을 통해 일본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고종은 대대적인 경운궁 중건 작업에 들어갔지만, 1904년 대화재로 중심부의 많은 전각이 소실됐다.

경운궁내 고종이 거처한 중명전은 1905년 을사조약 체결과 함께 2년 뒤 고종이 네덜란드 헤이그에 보낼 특사들을 접견했던 장소였다. 일제는 헤이그 사건의 책임을 물어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고, 이때 궁궐 이름도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바뀌었다.

순종이 창덕궁으로 이어(移禦)하며 일제의 궁궐 훼손 작업이 본격화된다. 일제는 1933년 덕수궁 내의 대부분 건물들을 방매 처분하고, 10월 덕수궁을 공원으로 만들어 일반에 공개했다. 따라서 현재의 덕수궁 규모는 대한제국 시기에 비해 무려 1/3로 줄어든 것이다.

정동에는 국가사적 124호 덕수궁을 비롯, 옛 러시아공사관(253호), 정동교회(256호)와 서울시 유형문화재 5호 중명전, 성공회성당(35호), 옛 미국공사관(132호) 등이 있다.

이 같은 문제점들을 들지 않더라도 미 대사관의 정동 이전 계획은 첫 단추인 '교통영향평가' 심사에서부터 막혀있는 상태이다. 미 대사관은 작년 11월24일 구 경기여고 부지에 대한 교통영향평가 심의를 신청했다. 구 경기여고 부지는 일반주거지역으로 분류돼 용적률 300% 이내로 묶였지만, 신청서 상에 나타난 대사관 용적률은 106.7%에 불과해 건축허가를 받는 데 어려움이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서울시는 미 대사관 지하주차장의 계획 주차 대수가 116대에 불과해 법정 주차대수(529대)에 크게 못 미친 것을 지적, 신청서를 곧바로 반려했다. 서울시 교통기획과의 관계자는 "미 대사관측이 보내온 서류가 주차장 관련 법규에 맞지 않아 반려시켰다. 접수 자체가 무효화된 것이기 때문에 대사관 측이 서류를 다시 작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건물 규모(15층)에 비해 턱없이 적은 주차 대수를 들어 "미 대사관이 주차장 규모를 줄이는 대신 지하 공간에 대규모의 정보 관련 시설을 들여놓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구 경기여고 부지입구에 미국 대사관이 설치한 경고문구 ⓒ 정동지역 역사경관 지키기 시민대책위
이후 미 대사관은 특별한 동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익명의 미 대사관 직원(한국인)은 "다른 이슈들도 마찬가지지만, 미국 외교관들은 특히 '대사관 이전'에 대해서는 한국인 직원들에게도 진척 상황을 털어놓지 않는다. 언론 취재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종로 미 대사관이 대로변에 노출되어 수많은 반미 시위의 표적이 되어왔고, '좁은 세종로 대사관'을 벗어나야 한다는 대사관의 현실적 이해 때문에 외교채널을 통해 우리 정부를 압박하는 전술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통상부가 다른 나라의 공관 이전 문제에 관한 한 '교환공관 담당관실'이 행정적인 문제를 처리하지만, '미국대사관 이전'은 대미 외교의 주무 부서인 북미3과에서 관장하고 있다. 이는 '한미 관계의 특수성'을 감안,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수 있는 미 대사관 이전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조심스러운 접근 방식을 시사한다.

외교부의 관계자는 "입지 선정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사관 측에서 (주차 문제를) 보완할 것으로 안다. 그러나 (미 대사관이) 언제 재시도 할 지는 우리도 모른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구 경기여고 부지의 유구 발굴 작업이 필요하다는 시민단체들의 문제 제기에 대해 "유물 매몰 여부가 확인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서울시가 구 경기여고 부지의 소유권을 미국에 팔았으니 유물 발굴은 서울시가 책임져야 할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최동윤 서울시 문화재과장은 "미 대사관이 신축될 구 경기여고 부지가 선원전 터였다는 얘기는 지난주에 처음 들었고, 서울시 문화재위원회에서도 논의된 적이 없다. 미 대사관이 구체적인 건축 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정적으로 얘기하기는 힘들지만, 시민단체들의 문제제기가 있는 만큼 만약 발굴이 필요하다면 서울시가 건축허가를 내주기에 앞서 미 대사관에 '발굴 조건'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법과 문화재 보존 논리로 난항을 겪고 있는 '정동 미국 대사관' 건립 계획이 만약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2006년경에는 대사관이 완공될 것으로 보인다. 덕수궁 뒤편에 위치한 기존의 미 대사관저와 하비브하우스(영빈관) 옆에 대사관과 문화원, 직원 및 군인 숙소 등이 한데 모인, 거대한 '미국의 축'이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조선왕조와 운명을 같이 한 옛 덕수궁의 터전에 웅장한 자태를 드러낼 '정동 미 대사관'. 그것은 백여 년만에 다시 자주와 예속의 기로에서 서 있는 우리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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