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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대'서 맺은 말기암 앓던 고(故) 추희숙 씨와의 짧고 작은 인연 못잊어 마산에서 가수인생 30주년 기념 MBC 게릴라 콘서트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긴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띄운다....""

암울했던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를 애타게 갈망하는 열혈 대학생들의 주제가로 널리 불리워졌던 '아침이슬'의 가수 양희은씨가 MBC-TV의 일요일 일요일밤의 '게릴라 콘서트'의 주인공이 되어 지난 12일 마산을 찾았다.

'게릴라 콘서트'는 말 그대로 공연일 전까지 가수와 시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공연당일 개최 도시를 선정해 홍보에 들어가는 방식이다. 연예가에선 내노라 하는 가수들도 게릴라 콘서트 출연을 꺼려하는 프로그램중 하나로 통한다. 공연을 불과 3시간 남겨두고 현지로 내려가 홍보전을 펼쳐 5천 명의 청중을 동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2000년 10월 15일 10대 가수 '핑클'이 첫 출연한 게릴라 콘서트에는 태진아, 엄정화, 쿨, 차태현 등 초특급 연예인들이 출연했으나, 모두가 5천 명의 청중 동원에 성공한 것만은 아니다. 한창 주가를 올리던 여가수 모양 조차 2000년 12월 3일 출연해 실패하고, 1년 뒤인 2001년 11월 재도전해 만회할 정도로 게릴라 콘서트는 현장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스릴과 긴장감이 넘쳐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양 씨의 12일 콘서트에는 1만여 명의 팬들이 몰려 대성황을 이뤘다. 공식 집계된 관객수는 7182명이었지만, 불의의 안전사고를 우려한 2 천여 시민들의 입장을 막았기 때문에 공식 집계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날 콘서트는 시청자들이 알고 있는 개최 도시 선정이 '게릴라식'이 아닌 사전에 조율이 충분히 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양희은 씨가 마산을 게릴라 콘서트 도시로 간절히 원한 애틋한 사연이 있었다.

마산서 날라온 말기암 엄마가 아들에게 보내는 생일축하 편지

양희은 씨의 마산 게릴라 콘서트는 그녀의 가수인생 30주년과 동일한 30번째 주인공이어서 그 의미를 더한다. 그보다 마산은 그녀에게 아주 특별하고 눈물겨운 인연이 있는 곳이다. 지난해 말 양희은 씨는 지난해 노래인생 30주년 특집 음반을 발표했다. 이 음반에는 여느 가수의 앨범과는 달리 '희제 생일 축하편지'라는 글이 소개되면서 시작된다.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 희제에게... 다가올 4월 16일은 너의 여섯 번째 생일, 병원침대에 누워 꼼짝 못하는 엄마가 너에게 어떻게 축하를 해줄까 고민하다가 엄마의 마음을 보내기로 했단다. 너를 낳을 때 엄마는…노산에다 난산이었어. 너를 처음 받아든 순간…한잎 꽃잎처럼 흰 목화 꽃송이처럼 부드럽던 네 뺨과 엄마의 가슴이 맞닿았던 그 순간의 느낌, 그것을 환희라고 하는 걸까. 아니 엄마의 생애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그런 굉장한 느낌이었단다. 어느날 훌훌 가볍게 병상을 털고 일어나 네손을 잡고 밝은 햇빛 쏟아지는 거리를 걸으며 꽃집도 가고, 시장도 가고, 예날처럼 너를 업고… 그치만 혹시라도 엄마가 네 곁에 없더라도 너무 슬퍼하거나 마음 아파하면 안돼. 엄마 생각은 항상 정의로운 어른으로 자라나 늘 밝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돌보렴. 아냐 엄마는 꼭 나아서 너와 함께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살고 싶어, 희제야 여섯 번째 생일 정말 정말 축하해. 2001년 3월 30일 엄마가"

김승현 씨와 함께 여성시대를 진행하던 양희은 씨는 2001년 4월, 마산 우체국 발신인이 찍힌 추희숙 40세 말기암 환자의 편지를 받았다.

추 씨는 항암제와 진통제를 다량 투여 받으면서 3일에 한번 꼴로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 내용들은 두고 가는 어린 자식에게 마지막으로 보내는 생일편지와 삶을 안타까우면서도 경건하게 바라보는 그녀의 마지막 시선이었다. 이 방송을 들은 많은 시청자들은 뜨거운 눈물과 간절한 기도와 편지, 소액환, 네잎 클로버가 끼워진 시집을 보냈는가 하면, 방송국에 개설된 음성사서함에는 희망과 용기가 가득한 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음성들로 메워졌다.

6월엔 추희숙 씨만을 위한 여성시대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이웃들의 간절한 기원에도 불구하고 추희숙 씨는 지난해 8월 20일 돌연 아쉬움 많은 세상을 하직했다. 양희은 씨와 여성시대 제작팀 전원이 마산을 방문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하지만 그녀가 세상에 새긴 흔적들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큰 감동으로 남았고, 양희은 씨는 가수 인생 30주년 기념앨범을 제작하면서 추희숙 씨와의 짧은 만남을 상업적으로 오독될 위험을 '세상을 어렵게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응원'이란 강력한 의지로 물리치고 앨범을 완성했다고 한다.

앨범 첫곡에 수록된 '그대가 있음에'라는 노래에는 고인이 된 추희숙 씨를 추모하고 그녀와 비슷한 처지의 모든 어려운 이웃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실날 같은 끈을 포기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그 이웃들에게는 사랑과 관심을 보내줄 것을 호소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자그만 개울이 바다가 되듯이, 우리의 사랑도 언젠가 그렇게....아름다운 그대, 세상의 그 어떤 어려움도 두렵지 않아, 이 사랑 때문에 절망이 우릴 막는 다해도 그대가 있음에...슬픔이 슬픔을 아픔이 아픔을 안아줄수 있죠....우리의 사앙도 그렇게 흐르리""

눈물과 감동의 도가니 된 콘서트

양희은 씨의 '마산 게릴라 콘서트'는 대성황이었다. 아니 예상했던 관객수의 두배가 넘는 시민들이 몰려 대혼잡을 이뤘다. 공연 시작이 2시간이나 남았음에도 마산실내체육관에는 마산 창원 진해는 물론이고 인근 시군에서 몰려든 팬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해, 오후 7시 30분부터는 야구장 앞까지 줄을 서야할 정도였다. 수용인원이 4천8백 명에 불과한 체육관에 도저히 입장이 불가능한 인파였다. 만일의 안전사고를 우려한 경찰은 6천여 명이 입장하자 출입문을 봉쇄했다. 미처 입장하지 못한 시민들은 체육관 문을 두드리며 거칠게 항의했다. 일부 시민들은 출입문 유리창을 발로 차는 깨는 등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경찰은 제작팀의 간절한 부탁에 1천여명을 추가로 입장시켰으나, 2천여 시민들은 끝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안대로 눈을 가리고 이어폰으로 귀를 막은 상태에서 무대에 오른 양희은씨가 입장 관객수를 확인하고 눈물을 흘리자, 7천여 청중들은 '긴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아침이슬을 불러 그녀를 환영했다.

양희은 씨는 지난해 4월부터 8월까지 짧은 인연을 맺었던 희제 엄마 추희숙씨를 추모하는 '그대가 있음에'를 부르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청중들도 함께 눈시울을 붉히며 목 메는 소리로 함께 불러 공연장안은 감동과 눈물의 바다로 출렁였다. 양희은 씨의 민주성지 마산에서 펼친 게릴라 콘서트는 오는 1월 20일 저녁 6시 10분 방영됐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경남시사신문>에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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