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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신인영 장기수(72)가 평양에서 지병인 골수암으로 타계했다. 북으로 송환된 지 1년 4개월만에 노모를 남겨두고 먼저간 죽음이라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 소식을 접한 친지와 동료들은 11일 장기수들의 보금자리인 통일광장에 모여 선생의 추도식을 갖고 길떠나는 망자의 혼을 달랬다.

신인영 장기수는 67년 반공법으로 구속되어 30년만인 지난 98년에 석방된 후 2년 전인 2000년 9월에 비전향 장기수로 북한으로 송환되었다. 지난해 평양에서 개최된 '8.15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해 노모의 안부를 묻는 등 비교적 건강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알려져 선생의 죽음이 더욱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상임의장 임기란 씨는 추도문에서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주신 곰탕을 끓여 먹고 많이 좋아지셨다는 말들었는데 이렇게 가시다니 너무나 가슴 아픕니다"고 말해 선생의 죽음을 못내 슬퍼했다.

선생의 영정이 놓인 자리위로 '통일애국열사 신인영 동지'라는 글귀가, 양옆에는 '6.15공동선언 옹호 관철'과 '자주왕래 실현하자'라는 구호가 하얀 화선지 위에 적혀 있었다. 추도식이 열린 통일광장의 큰방 안에는 자신의 양심에 따라 수십의 형을 산 장기수들의 사진들이 벽 가득 걸려있어 떠나는 선생의 마지막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의 죽음 아직 알리지 않아

추도식을 준비했던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는 "신인영 선생의 마지막 소원이 평양에 어머니를 모시고 와 큰며느리, 손자, 손녀의 절을 받게 하는 것이라 했는데 그때까지 죽지 않겠다는 다짐을 지키지 못하고 이렇게 떠나 어머니께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다"며 애통해했다.

권 대표는 "선생이 북송될 때 어머니도 함께 보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면서 "노령의 나이에 투병 중인 자당 고봉희(95) 할머니께는 당분간 아들을 죽음을 알리지 않을 계획이다"고 밝혔다.

북송되지 않은 임방규 장기수는 먼저간 동지를 위해 조문사에서 "북으로 남으로 오갈 수 있도록 분단의 벽을 허물어버린 뒤에나 가실 것을 원통합니다"며 "남은 일 동지들에게 맡기시고 편히 가시옵소서, 고이 잠드소서"라는 작별인사를 남겼다.

이날 추모식에는 세분의 누이와 처남 두 분을 비롯해 북송되지 않은 비전향 장기수들과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이종린 의장,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오종렬, 이천재 의장 등 재야 원로인사와 사회단체인사들 50여 명이 참석해 선생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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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꿈을 해몽한다" 작가 김훈은 "언어의 순결은 사실에 바탕한 진술과 의견에 바탕한 진술을 구별하고 사실을 묻는 질문과 의견을 질문을 구별하는 데 있다. 언어의 순결은 민주적 의사소통의 전제조건이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젊은 날을 "말은 질펀하게 넘쳐났고 삶의 하중을 통과하지 않은 웃자란 말들이 바람처럼 이리저리 불어갔다"고 부끄럽게 회고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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