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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한번 펼쳐보자.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찾으면, 그 두 나라 사이에 섬처럼 러시아 영토가 조금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이 바로 칼리닌그라드 주이다. 러시아 본토로부터 떨어져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섬처럼 자리잡은 칼리닌그라드주(州)는 세계에서 가장 소비에트적인 곳으로 불린다.

자신들의 문화가 없으며 여러 민족이 섞여 살며 모두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곳. 스탈린이 가장 이루고자 했던 꿈이다. 섬 같이 존재하는 이 주의 중심도시 칼리닌그라드의 이름은 1919년 소련의 형식적 지도자였던 미하일 칼리닌의 이름에서 나왔다.

현재 이 칼리닌그라드주는 러시아 전체에서 가장 가난하고 실업률이 높고 또 에이즈 보급율도 높기로 유명하다. 소련의 군사기지로서 90년대 초까지 출입이 금지되었던 도시로서 우리에게 '베일에 싸였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현재의 상황과 크기에 걸맞지 않게 독일, 폴란드, 리투아니아 등 주변 국가 모두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땅이고 또 700년이 넘도록 프러시아 공국의 중심지로 명성을 구가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들은 많이 알고 있다.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하면 잘 몰라도 쾨니스버그(Konigsburg)라고 하면 "아. 그 도시!"하고 기억해 낼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독일도시로 많이 알려진 이 도시의 최초거주자는 '프러시아인'이다.

그런데 이 '프러시아'는 우리가 아는 그 강성한 독일 제국의 일부였던 '프러시아'가 아니다. 현재 폴란드를 동서를 갈라놓는 비스와강에서 시작해 현재 리투아니아-칼리닌그라드 국경에 이르는 지역에 아주 옛날 옛적에 살던 민족으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어와 같은 어족인 발트어를 쓰는 발트족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역사적인 자료에만 그들의 생활이 조금 남아있다. 자연을 숭배하고 족장들이 지배하고, 시체를 집에 안치하는 등 그 당시 프러시아 지역에 점령을 시작한 서유럽인들은 프러시아의 그런 면에 상당히 이국적인 느낌을 가졌는가 보다.

그 지역의 사람들은 13세기부터 현재 칼리닌그라드 지역에 진출한 독일인들에게 밀려나거나 아니면 많이 융화되어서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지리적으로 서유럽에 더 가까운 관계로 중세시대 서적에 나타나는 발트인들의 자료는 주로 이 지역에 살던 고대 프러시아인들을 일컫는 경우가 많다. 이전에 소개한 바가 있지만, 현재 에스토니아 공화국 이름의 근원이 되었을 법한 라틴어 Aesti는 현재 칼리닌그라드의 프러시아인들을 말하는 것이었다는 설이 있다.

그런 지리적 위치로 인해 그들은 리투아니아나 라트비아보다도 먼저 발트족으로 알려져 문헌에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언어가 현재 리투아니어와 비슷한 발트어의 한 계열이었다는 증거로는 독일인들이 그들의 언어를 소리 나는대로 적어놓은 문서만 몇 개 내려오고 있으나 그나마 발트연구가들에게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 영토에 독일기사단은 무역전진기지를 만들었고 폴란드 북서부 마주리 지역부터 리투아니아 북부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프러시아의 역사는 따로 다루어도 몇 회는 이어질 문제이기 때문에, 전 유럽을 호령했던 독일제국의 일부로서의 프러시아는 각자 집에 있는 세계사책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어쨋든 현재 칼리닌그라드 지역은 2차 대전까지 독일제국의 동쪽 영토로 존재하게 되며, 2차 세계대전 중에는 히틀러가 폴란드 북부와 발트3국을 거머쥐고자 결심을 하게 되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 히틀러가 발트3국에서 저지른 이야기는 다음 번으로 미루기로 하자.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폴란드에 꽤 알려진 말보르크(Malbork)라는 도시가 있다. 서유럽에 비해서 으리으리하고 웅장한 건물은 비교적 많이 없는 이 나라에서 기차를 타고 북부도시 그단스크(Gdansk)로 가다보면 이 도시를 지날 때 차창 밖으로 보이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성이 있다. 이렇게 평지가 많고 온순해 보이는 나라에 비교적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은 붉은 색깔의 거대한 이 성곽은 아니나 다를까 폴란드인들이 지은 성이 아니라, 프러시아에 거주하던 전 독일기사단들의 주요 거점지였다. 천년의 고도 폴란드의 그단스크 역시 프러시아 독일기사단이 건설한 도시로서 아주 유명하다.

쾨니스버그는 리투아니아어로는 카랼랴우츄스(Karaliaucius)로 불렸다. 그 지역이 '소(小) 리투아니아(Mazioji Lietuva)'로 불리웠다는 사실은 많이 모를 것이다. 리투아니아 문화활동이 그곳에서 많이 일어났었다. 그 당시 유럽최고 중 하나였던 루터 개신교 대학에서는 (쾨니스버그 대학교) 개신교를 전파하기 위해 최초의 리투아니아어 서적을 편찬하기도 했다.

러시아령에 의해 리투아니아에서 리투아니아어 자모를 이용한 출판이 금지된 시절에는 리투아니아어 서적들이 프러시아에서 다수 출판되어 리투아니아 민족운동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서쪽으로는 프러시아, 동쪽으로는 리보니아, 그 가운데를 리투아니아가 역사 내내 내주지않고 있던 것 때문에 독일 제국은 끝내 하나로 연결이 된 적이 없었다.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연합국은 1490년 프러시아 독일기사단들을 처참하게 짓밟아버린 경험도 있다. 폴란드어로는 그룬발드(Grunwald) 전투, 리투아니아어로는 잘기리스(Zalgiris) 전투로 불리는 전쟁으로, 당시 중동부유럽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전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유럽의 최강 농구팀인 리투아니아 프로농구팀의 이름이 왜 잘기리스인지는 설명을 특히 안 해도 이해가 되리라 믿는다.

칼리닌그라드에서 나고 자라 사망한 엠마누엘 칸트가 리투아니아 사람이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역사적인 도시 쾨니스버그는 2차대전 영국군과 소련군의 폭격으로 무참히 파괴되었다. 거기 살던 발트독일인들은 독일로 돌아가거나, 다가오는 러시아 붉은 군대를 피해 얼어붙은 발트해를 건너가면서 죽거나 시베리아로 끌려가고, 그 지역에는 러시아인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소련이 서방의 무역통로로 1991년 개방을 시작했을 때, 옛 영화는 사라지고 시커멓고 냄새 나는 강이 흐르는, 매연이 가득한 특징 없는 소비에트 건물들이 가득 들어선 칼리닌그라드에서 옛날을 기억하는 독일인들은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문화적 차원에서 리투아니아로의 복속가능성도 없지 않으나, 리투아니아인들의 반응은 상상 외로 No! 영토와 함께 수십만의 러시아 실업자들이 몰려오는 위험을 감수할 수 없어서다. 현재 러시아인 문제로 골치를 앓는 옆 나라 라트비아에서 배운 교훈이다. 러시아인들의 차별대우로 러시아 정부로부터 무역금지조치까지 당한 바 있는 라트비아에 비해 리투아니아는 그 가난한 칼리닌그라드 주민들을 도와줌으로 좋은 소리를 듣고 있다. 아직도 군사기지로서의 성격이 강한 칼리닌그라드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서 과거 냉전시대의 산물로 아직 다소 껄끄럽게 남아있기도 하다.

칼리닌그라드는 가보라고 권할 수 있는 도시가 정말 아니일까? 일단 러시아에 속하는 지역이다 보니 비자 받기도 힘들도 체제 자체가 까다로워 많은 선호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까다로움을 감수한다면 칼리닌그라드에도 상당히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지구상에서 은 도금된 레닌동상을 박물관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볼 수 있는 곳은 여기 아니면 거의 없고, 줄 길게 서고 북적거리는 과거 구 소련의 분위기도 사라지기 전에 가서 볼 가치가 있다. 그런 위험천만한 모험이 싫다면, 프러시아 시절 으리으리하던 대성당의 '폐허'와 엠마뉴엘 칸트의 무덤 등 '안전한' 볼거리도 있다. 칼리닌그라드주에 있는 도시 '얀타리'에서는 세계 유일한 노천호박(琥珀)광산이 있어 전 지구상의 90% 이상의 호박을 생산한다. 옛날에는 접근이 금지되었었는데, 지금은 직접 가서 볼 수도 있고, 호박채취도 가능하다고 하는데…먹는 호박이 아닌 것은 당연한 얘기다.

그 외 스베틀로고르스크(Svetlogorsk, 칼리닌그라드에서 35km), 젤레노그라스크(Zelenogradsk)해변은 우리나라의 낙산해수욕장만큼은 안돼도 가볼만 하다고 한다. 물론 전부 러시아어를 쓴다.

우리나라와는 거리도 멀고 또 많이 알려지지도 않은 이 지역에 한국의 한 자동차 회사가 조립공장을 건설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현재 이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 영토와는 별도로, 발트에 자리잡은 '발트4국'으로서 '러시아의 홍콩'으로 만들어보자고 하는 움직임이 있다. 한국인들에게도 이제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도시인 것만은 확실하다.

만약 혈육 하나 없는 이 도시에 안전하게 '놀러가고' 싶다면 함부르크에 본점을 둔, 과거 리보니아 지역과 발트3국 여행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여행사 '슈니더 라이젠(Schnieder Reisen)'에 문의하면 좋다(독일 함부르크 본점 tel: 040-380-2060, fax:040-38-8965. E-mail:schnieder-reisen@t-online.de. 칼리닌그라드 지점 7-22-34-13-00).

칼리닌그라드에도 지점을 가지고 있으며, 비자에 필요한 초청장부터 시작해서, 현지 거주신고, 숙박, 가이드 안내 등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곳이다. 칼리닌그라드 지점의 여직원이 영어는 잘 못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친절로 승부하려고 하는 의욕이 있는 아가씨이다. 칼리닌그라드는 혼자 여행하기 그리 안전한 곳이 아니라고 말하곤 한다. 전 러시아에서 가장 상황이 안 좋은 곳 중 하나인 만큼 일단 그 말을 믿어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칼리닌그라드로 가는 비행기는 러시아의 아에로플로트가 모스크바에서 연결을 하고 있고, 그 외의 항공사는 SAS 스칸디나비아 항공만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칼리닌그라드로 취항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북유럽으로 취항하는 비행기가 없는 관계로 모스크바 경유가 가장 좋은 노선인 듯하다. 폴란드의 바르샤바와 리투아니아의 빌뉴스와 클라이페댜, 라트비아의 리가 등에서 가는 버스도 있지만, 현지인들의 생활이 어떠한지 체험하고 싶은 분들이 아니라면 별로 권하고 싶은 방법은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자기는 정작 칼리닌그라드에 가보았느냐고? 안 가봤다고 하면 무슨 배짱으로 이런 글을 쓰냐고 하겠지? 칼리닌그라드의 철학가 엠마뉴엘 칸트는 평생 칼리닌그라드에서 한 발짝도 안 나가고도 세계와 우주에 대해서 논하다 죽었는데, 내가 사는 곳에서 지척에 놓인 이 땅에 대해서는 내가 쓰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으리.

덧붙이는 글 | 필자의 발트3국 홈페이지 http://my.netian.com/~perku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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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