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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중에서 가장 관념적인 말이 '사랑'이라고 했던가? 사랑이 담겨 있지 않는 사랑만큼 공허한 사랑도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관념들이 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시행되는 반교육도 이러한 관념의 하나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면서 어른의 기준에 맞추어 교칙을 만들고 그 기준이 사랑으로 둔갑하여 아이들을 길들이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는 수많은 사이비 교육이 그렇다.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시행되는 낡은 교칙들이 아이들의 인권을 짓밟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학교만큼 비민주적인 곳도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학교장의 지시가 법이 되는 학교사회에서는 학생지도도 예외가 아니다.

하기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잘못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태어나지 않은 어린아이가 어머니 배속에서 어떻게 '나는 내가 가진 인권을 국가에 위임한다'는 계약을 하고(사회 계약설) 태어날 수 있을까?

학교도 마찬가지다. 입학하기 전 관행적으로 시행되어 오던 낡은 교칙을 지켜야 한다고 대표를 통해 선서를 시키면 그것으로 끝이다. 내용이 무엇이건 학생들이 알 필요도 없다. 입학식 때 "나는 교칙을 준수하고...

"그렇게 요식적인 선서를 하면 끝난다. 학생의 인권이 이렇게 간단한 요식 절차를 거쳐 반납 받고 졸업할 때까지 모든 생사여탈권을 학교가 장악하게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은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도 통신의 비밀도 보장받지 못한다. 학교의 필요에 의해 귀밑 몇 센티미터는 모범생이고 그보다 1센티미터만 길어도 불량학생이 된다. 학교에 배달되는 우편물은 언제든지 개봉 가능하다. 불량학생(?)의 인권은 보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교육방침이다.

교칙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인권침해는 교육이라는 이름만 붙이면 선(善)이 된다. 교칙은 헌법을 능가하는 절대절명의 권위를 지닌다. 그것은 교사의 권위로도 활용된다. 교칙의 부당성을 항의라도 할라치면 죽음(퇴학)을 각오해야 한다. 교칙이라는 절대적인 권위가 존재하는 한 학교는 '순종'만이 미덕이다.

학교는 이제 교육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결전의 자세라도 할 각오다. 두발을 '자율화'하자는 주장이라도 하는 교사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아야 한다. 학교의 착각은 이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교육부장관은 교육의 위기가 보충수업을 못해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믿고 시도 교육감이 알아서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일류대학이 있는 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이 아니라 점수다. 학교는 지금 교칙이라는 기둥으로 붕괴의 위기를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이다.

아이들이 교칙을 지키지 않은 것은 학교에서 민주주의가 실종됐기 때문이다. 스스로 결정하게 하고 지키도록 하는 과정을 생략한 채 어른들의 기준으로 교칙을 만들어 놓고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지키라고 한다.

두발검사에서 고속도로(?)를 만든 교사를 보고 '죽여버리고 싶다' 또는 '복수하고야 말겠다'는 아이들의 말에서 그들의 정서를 읽을 수 있다. 순진한 학생들의 가슴에 원한을 심어주는 교칙이 어떻게 교육으로 둔갑해 정당화 될 수 있는 지 이해가 안 된다.

상식 이상을 규정한 법이 지켜지기 어렵듯이 학생의 정서를 외면한 교칙은 교육이 아니다. 구두를 신어야 한다는 교칙을 만들면 운동화를 신고 등교하는 학생은 문제아가 된다. 운동화를 신어야 하는 교칙을 만들면 구두를 신으면 마찬가지로 불량학생이 된다. 머리핀의 색깔까지 통제하고 단속하는 것이 교육이라고 만드는 교칙은 교육의 효과 따위는 관심 밖이다. 개인적인 사정이 용납될 리 없다.

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교칙을 위반하면 즉결심판이 떨어지고 바로 집행이 된다. 변명 따위는 오히려 형량(?)을 더 무겁게 한다. 항변권이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이러한 교칙은 아이들을 이중 인격자로 키운다.

복장을 위반한 학생은 선도교사가 오기 전에 일찍 등교하거나 선도 생이 철거한 후에 교문을 통과한다.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학생은 한 술 더 뜬다.

같이 오던 학생이 교문을 통관한 후 담벽을 돌아 자기 명찰을 던져 주면 남의 명찰을 단 학생은 유유히 통과한다.

고지식하게 명찰이 없어 교문에서 벌을 서는 학생은 '요령도 푼수도 없는 놈'이 된다. 일찍부터 세상을 살아가는 반 교육적인 요령(?)을 가르치고 있는 셈이다. 학교는 이렇게 교칙이라는 이름으로 반 교육적인 교육을 하고 있는 곳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하는 교사가 우대 받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반 교육적인 교육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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