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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판사 초년병 때 차출되어 말석에서 <민족일보> 조용수 선생의 판결에 참여했다. 당시 젊은 판사로 부득이한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잘못은 잘못이다. 판결을 잘못했다고 본다면 판사 옷을 벗었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기에 '대쪽'하고는 거리가 멀다."

이는 '<민족일보>사건 진상규명위원회' 김자동(74) 위원장이 지난 13일 진주를 찾아 한 말이다. 김 위원장은 "고 조용수 선생의 삶과 죽음의 진실 밝히기 작업을 하면서, 그의 고향을 찾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해 진주를 방문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번 김 위원장의 진주 방문에는 조용수 선생의 동생인 조용준(69) 씨가 동행했다.

김자동 위원장은 이회창 총재와 관련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회창 총재와 한나라당이 <민족일보> 사건과 관련하여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 듣기로는 이회창 총재가 사석에서 기자들에게 말을 한 것으로 알지만 공식적인 입장 표명은 없었다. 이 총재는 당당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과거 잘못을 인정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민족일보 사건은 올해 초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하여 국민적인 관심이 다시 모아졌다. 올해 2월 15일 국회에서 자민련 송석찬 의원이 질문을 통해, 이회창 총재의 판사 시절 행적을 거론하며 정계 은퇴까지 거론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송 의원은 "이회창 총재는 지난 61년 8월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의 언론말살사건인 <민족일보> 사건의 담당 판사로서 반민주 악법의 칼날을 휘둘러 조용수 사장을 반국가단체 동조혐의로 사형시키는 등 수많은 인사들을 처벌함으로써 언론 말살과 인권 탄압에 앞장섰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실은 "<민족일보> 판결 사건을 시비 걸고 과거정권 체제에서의 법관생활까지 걸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는 내용의 논평을 냈고,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과거의 용공행위가 애국행위로 둔갑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 이같은 논란이 일자 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이 무슨 망발인가. <민족일보>를 봤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라며 한나라당 대변인실과 일부 의원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다음은 지난 13일 진주를 방문한 김자동 위원장과 나눈 대화 내용이다.

- <민족일보> 사건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누구라고 보는가?
"<민족일보> 사건을 주도한 세력은 5·16 쿠데타 세력이다. 특히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종필 현 자민련 총재다. 김 총재는 이 사건에 매우 깊숙히 개입했다. 또 당시의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 당시 재판을 맡았던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현재까지 우리나라 정치를 이끌고 있는 상황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는가?
"61년 일어난 사건이지만 국민들은 완전히 잘못된 일로 여기고 있다. 당시 사건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현재까지 건재해 있으니 유감이다."

- <민족일보> 사건은 내년 대통령선거 때도 논란이 많을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 중요하다. 어느 정치권에 편들어서도 안되고, 어느 정치 세력과 관계 없이 진실은 밝혀져야 하기에 계속 진상규명을 밝히는 노력을 할 것이다."

- 일부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는 심심찮게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으로 아는데.
"지금까지 국회 대정부 질문 등을 통해 의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지금까지 송석찬 안동선 설훈 의원이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으로 안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으면 계속해서 나올 수밖에 없다."

- 국회에 대해 진상 규명과 관련한 일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아직 국회에는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은 없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에 <민족일보>사건 재침 청구를 위한 진정서를 제출한 바 있다."

- <민족일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은 언제쯤 깨끗하게 해결될 것으로 보고 있는가?
"프랑스 드레퓌스 사건은 100년이 지나 법적 조치가 내려지면서 진실이 밝혀졌다. <민족일보> 사건이 일어난 지 올해로 꼭 40년이다. 현재도 사회적 분위기가 되었다고 보지만, 시간을 갖고 차근차근 진실을 밝혀 나갈 것이다."

- <민족일보> 사건에 대한 재심 청구를 한다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지?
"사회적 분위기는 조성되어 있다고 본다. 언론(MBC-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계속 다루고 있다. 하지만 현재 대법관들을 볼 때 역사적 사건에 대한 판결을 제대로 할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국가보안법이 엄연히 존재해 있는 상황에서는 다소 어렵게 될 측면도 있다."

- <민족일보>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해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올해로 조용수 선생이 처형 당한 지 꼭 40년이 된다. 오는 12월 8일 조용수 선생 추모 학술강연회를 할 계획이다. 역사와 언론 학자들과 섭외를 하고 있다. 학술계에서 비중 있는 학자들을 참여시킬 것이다. 그리고 재심청구를 하더라도 비중 있는 변호사들과 함께 추진할 것이다."

- 사건 진상 규명과 관련하여 진주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진주신문>에서 여러 차례 보도해주어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으로 여긴다. 지난해 재심청구를 위한 진정서를 낼 때 진주의 몇몇 인사들이 서명을 해주었는데, 너무나 고마웠다. 올해 12월에 할 추모학술강연회나 각종 진상규명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현재 위원회는 15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데, 진주지역 인사들도 많이 참여하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확실한 조작사건, 언론탄압 분명"
<민족일보> 사건이란

<민족일보>는 1961년 1월 창간해 그해 5월 19일자로 폐간한 신문이다. 다시 정부 기관지였던 <서울신문>이 2만4000부 정도를 발행하고 있었는데, <민족일보>는 5만부를 냈다. 이같은 사실을 볼 때 당시 신문의 규모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조용수 선생은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에서 태어났고, 진주 봉래초교를 나와 진주중 2학년까지 다니고, 대구 대륜고(당시 6년제)를 나왔으며, 이만섭 국회의장과 동기생이다. 그는 일본 메이지대학 경제과를 다녔으며, 4·19 이후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그는 <민족일보> 사장을 맡았다. 5·16 쿠데타 세력은 간첩 이영근의 자금으로 신문을 만들었다고 해, 조용수 사장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했고, '혁명재판소'는 1961년 12월 21일 상고심을 기각해 사형을 선고·집행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건국 이래 최대의 필화사건이다. 간첩 이영근은 이후 노태우 정권 때 훈장을 추서받았다. 이같은 사실 등으로 미루어 <민족일보> 사건은 조작되었다고 위원회는 보고 있다. 김자동 위원장은 "당시 재판 기록을 검토해 보면, 무죄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진주신문>은 1999년 3월 1일자에서, 2001년 2월 26일자에서 각각 조용수 선생과 <민족일보> 사건을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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