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영화보다는 소설이, 리메이크 보다는 원작이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소설이 주는 감동과 작가가 말하는 메시지는 독자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감독의 상상력으로 이미 그려지고 주입되는 스크린에서는 독자가 스스로 상상하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리메이크 역시 원작의 성공을 어느정도 무기로 가질 수는 있지만 원작이 남긴 감동과 여운을 넘지 못하는 한 실패작으로 혹평을 받기 쉽다.
프랭클린 섀프너 감독. 찰턴 헤스턴 주연의 1968년 원작이 팀 버튼 감독, 마크 월버그 주연의 2001년판 신작으로 재탄생했다.

영화 비평란과 영화를 본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려지는 바로는 '혹성탈출' 역시 '원작이 리메이크보다 낫다'는 법칙에서 그리 자유롭지는 못할 듯 싶다.

"2029년 우주정거장 오베론. 훈련중인 원숭이를 태운 소우주선이 갑자기 발생한 자기장에 휘말려 사라진다. 미 공군 대위 레오(마크 윌버그)는 원숭이를 구하기 위해 출동하지만 그 또한 자기장에 휘말려 400년 후의 어느 알 수 없는 행성에 불시착한다. 원숭이들이 인간을 지배하는 곳이다. 원숭이들의 포로가 된 레오는 이곳에서 동물 애호가 아리(헬레나 본햄 카터)의 도움을 받아 탈출하고 인간을 말살하려는 원숭이 지도자 테드(팀 로스)의 군대와 맞선다.

테드의 추격을 피해 금지구역으로 간 레오 일행은 이곳에서 원숭이 문명의 기원이 실종된 자신을 찾기 위해 도착한 오베론의 훈련용 원숭이들임을 알게 된다. 레오 일행은 위기에 빠지지만 극적으로 도착한 자신의 훈련용 원숭이 페리클스 덕택으로 원숭이와 인간 사이에 화해를 주선하고 지구로 떠난다."

팀 버튼의 '혹성탈출'은 68년 제작된 원작과 주인공, 줄거리, 원숭이 문명의 기원등의 큰 줄기는 그대로 차용했다.

그러나 원작이 주는 감동과 인간 문명에 대해 생각할 꺼리를 주는 준엄한 경고는 보이지 않는다. 원작이 사랑이 없는 인류에게 염증을 느끼고 600년 후의 세상을 찾아 떠난 테일러(찰턴 헤스턴)의 비행으로 시작된다면 팀 버튼은 자신이 훈련시키던 원숭이를 구하기 위해 모험을 감수하는 것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원작을 넘어서는 발전된 특수효과와 원숭이들의 생생한 분장은 볼만하다. 그러나 원작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면 리메이크된 '혹성탈출'은 원작과 메시지의 강도와 깊이에서 큰 차이를 느끼게 한다.

원작이 자이라 박사, 코넬리우스 등의 원숭이들을 통해 인류의 우월성, 문명의 모순 등을 날카롭게 비판한 데 비해 리메이크판은 그런 면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원숭이의 조상이 우주선을 타고온 인간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인간의 우월함을 보여주겠다는 대사에서 묻어나는 인간 우월주의는 어딘가 못마땅하다.

영화는 인간이 원숭이를 동물원에 가두고, 원숭이가 인간을 무자비하게 노예로 부리는 사회의 모습을 통해 다수가 소수를 정복하고 지배하는 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메시지를 전할 만도 한데 도통 그에 대한 비판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은 시종 헐리우드식 영웅주의에 빠져 모세의 기적을 만들기 위해 허우적거린다.

후반부의 반전 장면도 찰턴 헤스턴이 쓰러진 자유의 여신상을 보며 절규하는 것에 비하면 왠지 격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원작이 자유의 여신상을 통해 지구의 미래를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일순간 소름을 느끼는 반전을 보여주었다면 리메이크된 '혹성탈출'은 엔딩장면을 마지막까지 비밀로 부쳤던 수고에 비하면 밋밋하고 감동도 없다.

결국 팀 버튼의 '혹성탈출'은 원작의 풍자, 비판을 버리고 특부분장과 효과를 통한 스펙터클을 선택한 영화이다.

인간사회의 부조리와 인간 우월주의, 소수와 다수가 공존하지 못하는 사회, 인간 문영의 모순에 대한 물음을 접고 오직 볼거리 중심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원작의 감동을 가지고 혹시나 하는 기대로 영화관을 찾는 당신에겐 리메이크된 '혹성탈출'은 본전이 생각나게 하는 영화이다.2001-08-18 19:20ⓒ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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