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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10월 공안당국과 일부 언론에서 국가보안법 상 이적단체 구성 등으로 몰았던 지리산결사대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 1년4개월을 복역한 뒤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빈지태(34. 함안 대산면 구혜리, 당시 경상대 경제학과 재학) 씨가 최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과 보상 심의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을 받았다.

빈 씨는 과거 학생운동 전력이 있지만 구속 사유는 지리산결사대사건이었고, 그 사유를 적어 냈던 것이다. 빈 씨는 “올해 6월 12일 열린 심의위원회 21차 회의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는 통지를 받았다”면서, “지리산결사대 사건 관련자에 대한 명예회복은 한 개인의 명예나 보상 차원이 아니라 경상대의 명예 회복도 포함하는 것으로 반드시 재조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경상대 법대 이창호 교수는 “지리산결사대 사건은 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되기 이전부터 진상조사가 필요했다. 당시 경찰과 검찰의 학원탄압의 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진주전문대에서 일어난 폭력사건에 대해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에 대한 수사도 정확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적단체 구성은 더더구나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경상대민주동문회 김진석 사무국장은 “당시 사건으로 19명이 구속되었다. 빈지태 씨를 제외한 나머지 관련자들은 이번에 대부분 신청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민주화운동으로 인정을 받은 만큼 10년 전의 사건에 대한 전체적인 진상조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리산결사대 사건이란?

올해로 꼭 10년이다. 91년 10월 진주전문대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진주·충무지역 총학생회협의회(진충총협)가 결성되어 있었고, 진주전문대 총학생회도 포함되어 있었다. 진주전문대 차기 총학생회 선거를 앞두고 부정선거를 우려해 진충총협에 공정선거 참관을 요청했고, 대학에 들어갔던 경상대생들이 진주전문대 일부 학생들의 항의로 물러났다. 이런 과정에서 경찰이 학생들을 연행하면서 불거진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을 “빨치산 후예로 자처한 지리산결사대의 선거전 난입사건”으로 규정하고 수사를 벌였다. 경찰은 ‘지리산결사대’를 ‘주사파 행동대’ 역할로 발표했으며, “지리산에서 화염병 투척 훈련을 실시했다”는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당시 이 사건은 일부 언론이 경찰의 발표를 그대로 보도하면서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경상대생들은 모두 지리산결사대”라는 인식을 심어주어 취직 등에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지리산 화염병 투척 훈련’에 대해 당시 구속되었던 하택근(34) 씨는 “경찰이 밝힌 날짜는 <야영>이라는 교양과목 강의를 받기 위해 산청 덕산야영장에 갔던 것이다. 이것만 보아도 경찰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당시 전교조와 구속 학생 학부모들은 ‘10·10 진주전문대 사태 진상규명과 부당구속 철회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활동을 벌였으며, 경상대 교수 54명은 “경찰 편파 수사 자제와 재수사, 검찰당국은 사건을 정치적 목적으로 왜곡하지 말 것, 언론은 사건을 왜곡보도한 것에 대한 사과와 다시 정확한 취재를 할 것” 등을 주장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김진석 사무국장은 “당시 검찰과 일부 언론은 지리산결사대가 북한을 이롭게 하려는 이적단체로 보았다. 지리산결사대는 각종 시위 현장에서 학생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되었을 뿐이다. 언론에서 ‘빨치산의 후예’ 등이라 한 것은 왜곡보도였다. 이제라도 진상조사를 위한 논의를 벌여 나가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리산결사대사건으로 경상대생 33명이 입건되었다가 19명이 구속되고, 6명이 실형을 선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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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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