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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사람 죽이는 술이요"

비가 그친 오후였다. 오전에 전화를 했을 때는 목간(?)에 갔다고 했다. 아무렴, 그래도 전시회가 열리는 첫 날이니 목욕재계해야지.

인사동 관훈갤러리 앞마당에는 이미 그의 작품 여러 개가 전시 중이었다. 그러나 그는 없었다. 이번엔 또 어딜 갔을까. 관훈갤러리의 장경호 큐레이터가 급하게 핸드폰을 들었다. 그는 전시회 오프닝 행사 때 먹을 '머리고기'를 사 가지고 오는 중이라고 했다.

그를 기다리면서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들과 그가 현장에서 작품을 설치하는 사진들을 들여다보았다. 어, 그런데...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흐린 날씨, 어디선가 갑자기 밝은 빛이 다가온다. 머리를 박박 깎아 환하게 눈이 부신 그의 머리였다.

소개를 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러저러한 매체에서 나온 누구라고. 그런데 그가 갑자기 술을 권한다. 그것도 아주 독한 백초술을. "취재하러 왔어? 그럼 술부터 마셔요!"라며 술이 담긴 종이컵을 내미는 그는 최병수, 현장미술가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인터뷰를 해줄 것 같지 않아 얼떨결에 한 모금을 마셨다. 캬~~ 무슨 술이 이렇게 쓰담. 내 표정을 보았는지 그가 웃으며 말한다. "그거.. 사람 죽이는 술이요."

윽.. 죽기 전에 할 일이 있다. 술 가는데 어찌 안주가 빠지랴. 손과 입은 이미 머리고기 두 조각을 향해 있다.

"어머니 아버지 날 낳으시고, 경찰이 날 화가로 키우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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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수
ⓒ 배을선
전 세계 표준인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는 "걸개그림은 1980년 이후 민족미술운동 내에서 제작한 대형 선전그림으로... 대표적인 작품과 창작집단으로는 최병수 외 다수가 그린 '한열이를 살려내라', '메이데이 투쟁도'가 있다"라고 쓰여있다.

그는 미술전문지 <가나아트>가 선정한 '근현대 미술인 베스트 100'의 한 사람이며, <더 타임즈(The Times)>, <아사히 신문> 등 세계 유력 언론이 주목하고 있는 화가이며,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 그가, 으레 사람들이 규정짓는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목수출신이라면?

그는 20여가지의 직업을 전전하며 살던 노동자였다. 특히 '사다리' 하나는 끝내주게 만들어 내는 '목수'가 그의 대표적인 직업. 86년, 그는 홍익대학교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벽화를 그리는데 필요한 사다리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 일은 '신촌벽화사건'으로 유명한데, 이 때 훌륭한 사다리를 만든 것이 인연이 되어 그는 '정릉벽화사건'에도 사다리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뚝딱, 사다리를 만들고 나니 시간이 남았다. 할 일은 없고, 심심하고... 그는 다른 사람들이 벽에 꽃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꽃을 그리는 일에 동참했다. 그리고 경찰은 붓을 든 사람들을 모두 연행했다.

조서를 쓰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목수임을 밝혔지만, 경찰은 그를 화가라 했다. 오히려 목수라고 우기는 그를 경찰은 수상한 '빨갱이'로 여길 뿐이었다. 결국 그의 직업란에는 '화가'라는 두 글자가 적혀졌고 그는 타인에 의해, 권력에 의해 '관인화가'가 된 셈이다.

한 순간에 직업이 바뀌어버린 그는 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서,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의 모순들을 <말>지 등을 통해 하나씩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좀 더 나은 사회, 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싸우는 현장미술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화딱지가 나서 화가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1987년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걸개그림 제작을 시작으로, 노동절 100주년을 맞이해 '노동해방도'를 제작하고, 지구의 환경을 지키기 위해 조각도 하나 품에 넣고 일본으로 건너가 '펭귄이 녹고있다'라는 얼음작품을 조각했다.

그는 사회의 모순이 발견되는 곳에 그의 그림을 걸고, 노동자와 민중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달려가 현장에서 작품을 제작했다. 이렇게 사회를 비판하고 사람들을 보호하는 그에게 '바리케이트 화가'라는 별명도 붙여졌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우리는 '최병수'라는 이름 석자를 신문의 문화면보다는 사회면에서 더 자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갯벌이 도마요? 칼질을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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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만금에 새워진 솟대
그는 98년부터 환경문제와 관련된 작품을 계속 제작해 오고 있다. 그가 환경문제에 눈뜨게 된 계기는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을 접하면서부터다.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이 재직 당시 레이온 생산 공정에서 용매로 사용되는 이황화탄소에 의해 급성 또는 만성 중독증에 걸린 사건은 그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그는 사람과 환경을 위해 작품활동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99년부터는 아예 서울에서 새만금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변산반도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파헤쳐지고 갯벌이 골재로 망가지는 등, 뿌연 먼지로 오염되는 것을 보고서는 "갯벌에 칼질을 해도 되냐"며 새만금 갯벌에 70여개의 장승을 새웠다. 더 이상 새만금 갯벌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염원에서다.

뿐만 아니다. '새만금 호'라는 배와 '하늘마음 자연마음' 등의 자연과 생명의 솟대도 세웠다. 올해 4월에는 지구의 날을 맞이해 광화문에 'NMD 미국의 환상'을 전시했으며, MD를 반대하며 MD, TMD 미사일을 광화문 '열린마당' 공원에 설치하기도 했다.

"고향이 서울인 새만금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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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마음 자연마음' 제작과정
전라도 사투리가 구수한 그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묻자, "서울"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는 이미 새만금 사람이 되어있었다. 부안사람들이 간척사업으로 문을 닫게 된 김공장을 작업실로 내주어 새만금 사람, 새만금 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간척사업이 중단되기 전까지는 새만금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 한다.

"기자 양반, 술 왜 안 드시오?"
허걱, 그의 말에 깜짝 놀라 다시 '죽이는 술' 백초술을 입에 가져간다. 캬~~ 독하다. 독해. 죽더라도 기사는 쓰고 죽어야 취재를 나온 체면이 서는데. 어지간히 얼굴을 찡그리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그가 덧붙인다. "독하면 물 타서 드시고 이 머리고기 안주로 잘 먹소."


점점 달아오르는 취기에 용기가 났는지 그가 왜 '대머리' 행색을 하고 있나 물어보았다. "작업을 하다보니 머리감기도 귀찮고, 나이 드니까 머리도 빠지고 하기에 깎았소." 그가 덧붙인다. "집중력엔 대머리가 그만이지."

화가 최병수. 그의 불굴의 의지와 집중력이 죽어가는 새만금을 살려내고 있다. 우리에게 최병수 같은 화가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나저나 누구에게 감사를 해야하나, 그 때 그 경찰?

덧붙이는 글 | * 최병수의 전시회는 인사동 관훈갤러리에서 7월 3일까지 열립니다.(tel : 733-6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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