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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5월 25일자 권영빈칼럼 '명분과 현실'이라는 글에서 권영빈 씨는 기여입학제를 논의해 보자고 했다.

권영빈 씨는 이렇게 말한다.
"기여입학제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고 세계 여러 곳에서 이미 시행중인 제도다."

다른 나라에서 실시하고 있으니 우리도 해야 하는 논리다. 우리 나라 정책학 교과서에는 정책이 다양한 과정과 협의를 통해서 합리적인 과정으로 정해진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 하고 있냐 안하고 있냐, 선진국에서 하고 있냐 안하고 있느냐가 정책결정의 핵심이다.

권영빈 씨도 같은 정책의 식민지성에 빠져있다. 우리는 우리다. 우리의 학벌구조, 입시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우리의 가치와 사상을 지나친 명분주의라고 폄하할 수 없다. 외국과 비교할 수 없다.

"교육 균등의 원칙을 중시하면서 1인의 정원외 기여입학으로 1천 1만명의 수혜자가 생긴다면 거부할 이유가 있나."

거부할 이유가 있다. 1인의 정원외 기여입학으로 1천 1만명의 수혜자가 생기는 것만큼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또 있을까.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수혜 혜택, 경제성만으로 평가하기엔 사회는 더 미묘하고 중요한 가치가 있다.

1인의 정원외 입학으로 1천 1만명의 상처입는 경우는 생각해보지 않는가. 예지학원에서 공부했던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혹독하게 공부했는가. 그런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공부하는 것이 한국의 입시지옥 현실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재산으로 들어온 사람과 죽을 고비를 넘기고 들어온 사람들이 같이 공부해야 한다고 한다. 그들이 낸 돈으로 장학금을 받으면서 말이다. 왜 한국 입시 현실을 외면하는가.

권영빈 주필은 현실을 강조한다. 명분에 매달리지 말고 현실에 따르자는 것이다. 기여입학제를 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 정서라고 하기엔 뿌리 깊은 우리 전통과 문화라는 현실을 간과하면 안된다. 그것은 단지 명분이 아니라 현실이다.

기여입학제란 말이 고상해서 그렇지 현실적으로 돈을 주고 입학을 사는 것이다. 그것도 본인이 사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사주는 것이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돈을 내고 입학하는 경우가 우리 나라 역사 중에 있단 말인가. 우리 나라 역사중에 돈을 받고 입학 허가를 내주는 공식적인 사례는 없다. 따라서 반역사적인 사고이다. 역사와 전통, 가치 모두 버리고 어떠한 경쟁력을 기른다는 것인가. 그 경쟁력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교육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이라고 밤낮으로 떠들면서 현실적인 대안에 대해서는 국민 정서를 내세워 정부가 비켜 나간다면 이 얼마나 비겁한 일인가."

교육의 경쟁력이라고 표현했지만 일부 명문대의 경쟁력 논리다. 기여입학제의 경우 명문과 비명문 수도권과 지방권 대학의 불균형이 심화되는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기여입학제가 사실상 한국 전체 대학의 재정과 경쟁력을 강화 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일부 대학의 재정만 보충해주는 것이다.

입학 자격증을 팔아서 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애매한 일반 학생들과 국가경쟁력을 끼워 내세운다. '일반 학생들에게 혜택이 많다. 국가경쟁력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일반 학생들은 기여입학으로 혜택을 받겠다고 요구한 적이 없다. 일반 학생들을 끼워 넣지 말아야 한다. 또한 반드시 기여입학제가 국가경쟁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단순추측 인과논리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기여금은 1인당 1천억원이라 할 때 한국에서 20억원씩 받아서 경쟁력을 얼마나 키울 수 있는가. 원칙은 다 무너지고 국민들은 위화감으로 상처 받은 뒤 경쟁력도 명분논리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일부 대학만 살찌우게 할 가능성이 커서 교육불균형은 심화될 것이다.

권주필은 국민과 정부가 기여입학제의 효용성을 몰라서 반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효용성 면에서 따지자면 기여입학제만큼 대학 교육에 효과적인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효용성만으로는 도입할 수 없는 이유가 너무나 많다. "효용성과 원칙을 바꿀 수 있는가 경제성과 가치를 바꿀 수 있는가." 문제는 이것이다. 효과적인 방법인 줄 모르느냐 하는 것이 문제의 초점은 아니다.

또한 현실을 우선하자고 한다면서 내세우는 신 명분 논리는 우려스럽다. 검증되지 않은 교육경쟁력 = 국가경쟁력 논리, 소수정원외 입학 다수 혜택 논리가 과연 현실적인 논리인가 의문스럽다. 기여입학제가 그들이 말하는 경쟁력을 향상시키는지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

그리고 기여입학제가 국민전체에 어떠한 혜택을 주는지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 1인의 정원외 입학 때문에 그 대학의 1천 1만이 수혜를 입는다고 했다. 하지만 1인의 정원외 입학때문에 수십 수백만 수천만의 전체 국민이 피해를 볼 수 있음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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