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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의 일이다. 저녁 무렵 교정에서 한 무리의 학생들이 민중가요를 부르며 왁자하게 떠들고 있었다. 그때 한 친구가 별로 달갑지 않다는 인상을 지으며 지나가다가 민중가요를 부르는 사람들 중 아는 친구를 불러내어 따지기 시작했다.

따지는 내용인즉, "이게 무슨 짓이냐?"는 것이었다. "그런 녀석으로 안 봤는데 너 빨갱이 집단에 가입했구나" "네가 뭘 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 학생운동이란 빨갱이 짓이 아니고 이러이러한 거다"하고 설전이 벌어졌다.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한 그 친구가 마지막으로 한 소리...

"난 전투경찰로 제대했다. 네가 화염병에 맞아 뒹구는 사람의 심정을 생각해 봤냐?"

여기서 누가 옳고 그르다는 것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시대의 피해자이고 돌, 최루탄, 화염병이 난무하는 배후에는 누가 있었느냐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 죽거나 다친 사람은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화염병을 던진 사람인가, 화염병을 던지게 만든 이 사회인가?

화염병은 '몰로토프 칵테일'이라는 이름으로 핀란드에서 유래되었다. 1939년 소련의 외무장관 몰로토프는 핀란드군이 소련영토에 대해 포격을 가했다고 억지를 부렸고 이어서 침략이 이어졌다.

당시 소련은 수천 대의 전차를 앞세워 핀란드를 침공하였다.(일명 '겨울전쟁') 이에 맞서는 핀란드군의 화력은 초라할 지경이었다. 전차는 무늬만 전차인 구식전차 1개 중대, 중장비 또한 모두 수십년전 1차세계대전 당시의 구식 투성이었다. 싸움이 될 턱이 없었다. 하지만 핀란드인들은 험난한 국토를 이용해 끈질기게 소련군을 괴롭혔다. 핀란드군은 처음 보는 괴물인 소련의 T26전차에 대해서는 큰 통나무를 이용한 함정으로 꼼짝못하게 만든 뒤 빈 병에다가 가솔린이나 벤젠 같은 인화물질을 채운 화염병을 던져 전차를 불태웠다(당시 전차는 오늘날의 전차에 비해서는 깡통 수준이었다. 약간의 고열에도 차체가 불에 타올랐던 것이다).

핀란드인들은 '나는 핀란드인들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좋은 친구'라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소련 외무장관 몰로토프에게 주는 술이란 의미에서 이 화염병을 '몰로토프 칵테일'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렇게 화염병은 태생부터가 '강한 상대에 대한 약한 자의 야유'라는 의미에서 시작된 것이다. 문제는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 화염병도 점점 개량(?)되어 애초의 벤젠 등에서 신나로 재료가 '업그레이드'되었고 그것도 모자라 요즘은 폭발력이 강화된 신형 화염병이 등장했다.

이에 대해 정부가 넌지시 운을 띄워보았다가 철회한 방침이 화염병 투척자에 대한 취업제한 등의 사회적 불이익을 주는 방안이었다. 이미 화염병 투척자나 운반자에게는 상당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다. 시위내용의 정당성을 떠나 상대방의 목숨이 위태로운 무기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런 방안에 대해 '생각한 바 없다'고 방향을 선회했지만 왜 한동안 잠잠하던 화염병시위가 등장했는지에 대해 곰곰히 반성해 봐야 할 것이다.

사회전반에 대한 불신이라는 '전차'에 대해 선사하는 칵테일이 바로 과격한 화염병 시위다. 누구나 불만이 있다고 남을 해치는 화염병을 드는 것은 아니나 정치, 경제 등 사회전반적 상황이 이미 불신의 화염병에 불타고 있는 모양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하지만 화염병 투척에 대해 정부관계자들이 갖는 인식이라는 게 연합뉴스가 전하는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언급 중에 엿보이는 것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화염병 투척은 국제신인도를 떨어뜨리고 외국인 투자유치에 장애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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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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