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한겨레의 골수 독자라 할 수 있다. 현재까지 한겨레신문은 7년째, 한겨레21도 4년째 정기구독하고 있다. 골수독자인 만큼 한겨레의 논조나 기사에 맹목적으로 동조하는 폐해(?)까지 보이고 있는 지경이지만, 이번만큼은 한겨레에 대해 쓴소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모두 아시겠지만 오마이뉴스기자가 인천공항 기자실에서 쫓겨난 사건에 대해서다. 내용은 이미 모두 잘 아실테니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내가 의아한 것은 이 사건에 대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한겨레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 때문이다.

다른 언론매체들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왜 굳이 한겨레냐고? 한겨레신문은 깨끗하고 숭고한 이념을 가진 언론사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일까? 막강한 권력을 가진 조,중,동 신문을 정면으로 공격할 정도로 언론개혁을 외치는 신문이니만큼 이 사건에 대해 오마이뉴스의 의견과 같이하기를 내가 원해서일까? 물론 그런 면이 전혀 없지만은 않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내가 소위 말하는 이 기자실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고, 실체를 잘 알수 있게 해 준 것이 바로 한겨레이기 때문이다. 2000년 10월 19일자로 발간된 한겨레21 329호를 보면 '성역 깨기'라는 기획기사가 있다. 이 기사의 제목은 '기자의 천국, 특혜의 밀실'이다. 이 기사는 “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는 마태복음 7장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을 인용하며 시작된다.


[한겨레21] 관련기사 : 성역깨기:기자의 천국, 특혜의 밀실


기자실의 운영실태를 소개한 한 대목은 이번 사태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기존언론과 온라인매체 사이에 기자실 이용을 둘러싼 갈등은 단순히 편의 차원만이 아니다. 해당 출입처에서 이뤄지는 정보공개가 주로 기자실을 통해 이뤄지는 데다 또 기자단 소속 기자가 아니면 보도계획과 엠바고 결정과정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신속성을 생명으로 하는 온라인매체 기자들은 기자실을 드나들 수 없으므로 정보접근에서 한발 비껴 밀려나 있을 수밖에 없는 형편인 것이다.

미리 정보를 알고 사전준비를 해놓았을 경우와 뒤늦게 알고 기사를 쓰는 것과는 기사의 질에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온라인매체 기자들은, 그나마 출입문제로 갈등을 빚는 기자실의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이라고 자조한다. 기자실 출입문제를 둘러싸고 싸우기도 하고 현실적인 타협책도 마련하면서 정보를 공유하는 방향으로 문화가 서서히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자실은 여전히 난공불락의 요새다. 정보전쟁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또 이 기사에서는 기자실의 진입장벽이 높은 이유를 한 닷컴기자의 이야기를 빌어 이렇게 말한다.

종합일간지에 있다가 직장을 옮긴 한 닷컴기자는 그 이유를 “나 역시 그랬지만 기자실을 통해 얻는 기득권을 나누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언론환경은 급변하고 있지만 기자실은 아직도 정보원 관리라는 이유로, 때론 관행이라는 변명으로 기존 기자단의 배타적 점유와 정보담합, 사치성 외유, 민원해결의 다목적 공간으로까지 활용되고 있는 또 하나의 성역이라는 것이다.

그 특혜를 누리는 이들은 기자들이며 결정짓는 것도 기자들이다. 정확히 말해 ‘언론시장’에 먼저 진입한 종합일간지, 공중파방송, 유력지방지의 기자들이다.


내친김에 이 기사의 결론까지 마저 보기로 하자.

기자실 기자단이 소규모매체, 신생매체, 온라인매체 등 기자실에 등록되지 못한 이들을 정보접근에서부터 배제하는 것은 명백한 불공정 경쟁이다. 진입과 퇴출의 자유로움을 외치고 독점과 불공정 거래에 대해 사정없이 나무라는 기자들이 자신이 저지르는 그것들에 대해 둔감하다면 한국 언론의 미래는 없다. 기사 맨 앞에 썼던 성경구절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남에게 네 눈에서 티를 빼내줄 테니 가만히 있거라 하고 말할 수 있겠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그때에 눈이 잘 보여서 남의 눈에서 티를 빼줄 수 있을 것이다.”


유력지 기자가 스스로의 치부일 수도 있는 기자실의 성역깨기에 나선 이 기사에 대해 역시 한겨레니까 쓸 수 있는 기사라고 생각하며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있는 나는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적어도 한겨레만큼은 기자실의 특권 카르텔에 대해 침묵하지는 않으리라 기대했다. 또한 한겨레의 그런 노력을 조금이라도 촉구하고자 인터넷 한겨레의 '편집자에게'라는 란을 통해 이 사건의 심층보도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한겨레는 침묵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 각 유력언론사에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YTN은 홈페이지에 빗발치는 네티즌들의 비난에 일절 대응하지 않고 있고, 각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전혀 보도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한동안 시끄럽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해프닝 정도로 생각하고 철저히 무관심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것 같다. 그야말로 '침묵의 카르텔'이라 할 수밖에 없다. 과연 기자실은 그 정도로 성역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최근 언론개혁논쟁으로 각 언론, 정치권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로 촉발된 언론개혁운동의 선봉에는 한겨레가 서 있다. 친일과거를 사과할 줄 모르고 민족지로 국민들을 기만하는, 무한권력의 족벌언론을 비판하고 실상을 파헤치는 한겨레가 자기눈의 '들보'인 기자실의 특혜운영에 대해서 기존 언론들과의 침묵의 카르텔에 안주한다면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3월 29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에서도 인천 국제공항 기자단의 '망측한' 행위의 뿌리를 기자들의 특권의식과 '불한당 근성'으로 규정하는 성명을 내고 성토했다. 또한 이 사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네티즌들이 실상을 알고 비판하는 의견이 대부분이니 언론이 더 이상 침묵과 무대응으로 일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난 이미 이 특혜와 기득권의 온상인 기자실의 성역을 깨뜨리고자 했던 한겨레가 '내눈의 들보'를 빼내는데 앞장서 주었으면 한다. 기자들 스스로 개혁에 앞장서야 이 나라의 언론이 바로 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