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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게임업체들은 스타크래프트나 리니지와 같은 유형의 게임이 유행하면 너도나도 따라가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전세계시장을 놓고 보면 온라인게임 비중은 1%도 채 안돼요. 어차피 새로 시작하는 입장에서 시장규모가 70~80%나 되는 아케이드, 비디오 콘솔게임 시장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거죠."

타프시스템(대표 정재영) 하면 흔히 98년 말 700만 달러에 미국에 수출된 3D(3차원)게임 '대물낚시광'과 지난해 아케이드게임 '붕가붕가'를 개발한 게임전문업체를 떠올린다. 하지만 일찌감치 3D 엔진 기술을 활용해 포병전술기와 같은 군사용 시뮬레이션과 3D GIS(지리정보시스템) 분야에 진출,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갖춘 타프시스템은 이미 단순한 게임업체의 틀을 벗고 가상현실시대를 준비하는 3D 시뮬레이션 전문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92년 5평짜리 사무실에서 출발, 지난 1월 신사동 화랑가에 두 채의 양옥을 개조한 사옥을 마련한 타프시스템 정재영(39) 사장을 찾았다.

게임 불모지에서 '대박' 낚은 '대물낚시광'

얼마전 한 TV 방송국에서 그의 별난 인생을 소재로 취재해 갔을 정도로 그는 늘 남들과는 다른 인생을 걸어왔다. 응용미술학과 출신인 그의 꿈은 원래 애니메이션 제작자였다. 그가 80년대 말 일본에 건너간 것도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당시 일본은 한창 게임산업 부흥기를 맞고 있었고 그 역시 함께 일하던 애니메이터들을 따라 자연스럽게 게임회사로 옮기게 됐다.

"게임은 컴퓨터로 만드는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때까지 미대에서 아날로그 기술만을 배운 제가 디지털 세상에 합류할 수 있는 기회였죠."

당시 일본 오락실 아케이드게임 업체인 SNK사에서 감독자리에까지 오른 그는 92년 2월 귀국해 단 300만원으로 타프시스템을 창업하게 된다. 93년 대전엑스포 당시 꿈돌이 안내시스템에 들어갈 게임을 개발해 기술력을 인정받기 시작한 타프시스템은 94년 국내 최초의 시뮬레이션게임 'K-1 탱크'에 이어 낚시광 시리즈를 연이어 개발, 10만 카피 이상을 판매하며 국내 게임개발업계에서 입지를 다졌다.

"90년대 초만해도 국내 게임산업은 전무했어요. 게임 개발자는 커녕 자금, 기술, 노하우도 없는 상태여서 정말 황무지에서 첫 삽을 뜨는 기분이었죠. 게다가 당시만 해도 게임 개발에 대한 인식도 안좋아 청혼할 때도 장인, 장모에겐 평범한 소프트웨어를 만든다고 둘러댔을 정도죠."

"남들이 한 번 간 길은 걷지 않는다"

그와 타프시스템이 유명해진 계기는 98년 개발한 3차원 바다낚시게임인 '대물낚시광'이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리면서부터. 지금까지 100만 카피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진 대물낚시광은 당시 미국 인터플레이사와 700만 달러에 수출계약을 체결, 외국 게임 수입에만 골몰하던 국내 게임시장에 큰 충격을 던져줬다. 정재영 사장조차 "돈이 없어 가정용 비디오카메라로 만든 영화가 20세기폭스사에 팔려 미국 상영관에 걸린 것과 같은 엄청난 쾌거"라고 말할 정도다.

"낚시 테마게임은 당시 외국에서도 생각하지 못했을 정도여서 주변에선 다들 사업성이 없다고 말렸어요. 하지만 게임은 아예 처음부터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고전환이 필요하다고 설득했죠. 국내 게임업체들은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유형의 게임이 유행하면 너도나도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모험심이 강해 남이 한번 걸은 길은 절대 가지 않습니다. 똥침 아케이드게임인 붕가붕가를 개발한 것도 남들이 안한 부분에 대한 시도라고 할 수 있죠. 남들이 하는 것만 따라가다 보면 백발백중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는 타프시스템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대물낚시광'을 비롯한 PC패키지게임사업을 올해안으로 접을 생각이다.

"패키지 게임이 설 시장이 약화됐고 불법복제 문제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죠. 온라인이나 네트워크게임 시장의 성장성은 인식하고 있지만 현재 리니지의 영향으로 국내 200여개 게임업체 중 80% 정도가 온라인게임에 집중하고 있어요. 하지만 전세계시장을 놓고 보면 온라인게임 비중은 1%도 채 안 됩니다. 어차피 우리는 제로 상태에서 새로 시작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온라인게임시장은 아예 보지 않고 시장규모가 70~80%나 되는 아케이드, 콘솔 시장에서 승부하겠다는 거죠. 미국이나 일본과의 경쟁이 문제지만 이 시장에 1~2%만 차지해도 큰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제는 해외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술력과 마케팅력을 갖췄다고 자신합니다."

직원 한 사람을 아끼는 경영 철학

"타프시스템이란 회사이름은 애니메이션 원화 작업을 할 때 종이를 고정시키는 도구인 타프(taff)에서 따왔어요. 직원들 한사람 한사람이 종이라면 타프에 고정된 것처럼 흔들리지 말고 회사를 함께 만들어가자는 의미가 담겨있죠."

3명이 5평짜리 공간에서 출발한지 10년이 지난 지금 국내에만 75명의 직원을 거느린 중견 벤처기업으로 성장한 타프시스템이지만 회사엔 '일터가 곧 생활터전'인 초창기 벤처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정재영 사장이 굳이 현대적인 빌딩을 마다하고 개조한 일반 주택을 새 사옥으로 택한 것도 그런 이유다.

이직률이 높기로 유명한 게임업계에서 타프시스템의 이직률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하지만 정재영 사장의 마음 한 구석엔 과거 회사가 어려울 때 프로그래머들로부터 집단사표를 받았던 아픔이 남아 있다. 그래서 그의 '직원 관리'는 유난스럽다.

"S/W 회사이기 때문에 기술보다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 더 큰 재산입니다. 그래서 직원들 한사람 한사람의 인격, 인성을 존중하고 직장을 단순한 일터가 아닌 생활터전으로 여길 수 있도록 환경조건과 함께 스트레스가 없는 조직을 만들고 있죠. S/W 회사가 형식적이고 관용화되면 망할 수밖에 없거든요."

3D 기술로 새로운 돌파구 찾아

지난해 12월 코스닥 등록 이후에도 타프시스템은 여전히 게임전문업체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점차 자체 개발한 3D엔진을 활용해 GIS 분야와 국방 시뮬레이션 분야에 진출하면서 3D기술 기반의 시뮬레이션 솔루션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95년 2D 낚시광게임이 큰 성공을 거뒀지만 부침이 심한 게임사업만으로 회사를 끌고 가는데 한계를 느낀 정재영 사장이 생각한 것이 3차원 그래픽 기술이었다. 96년 미국 버클리대 정보통신과정 연수를 받기 위해 미국에 간 그는 우선 3D 분야 기술자를 찾아 나섰다. 결국 캐나다 스파이드라사와 기술제휴를 통해 현지 기술자를 직접 데려올 수 있었다. 당시 어렵게 개발한 3D 기술은 현재 게임뿐 아니라 3D GIS, 군사용 시물레이션 등에 활용돼 타프시스템의 중요한 수익 기반이 되고 있다. 또한 3D는 곧 타프시스템의 미래이기도 하다.

"3D 기술의 최후 도달점은 가상현실(VR)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가상현실은 더 이상 영화 속 얘기가 아니죠. 특히 가상현실은 시뮬레이션과 연관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게임이든 국방분야 등을 통한 다양한 응용이 가능해요. 우리 역시 체감게임기를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가상현실기술 개발을 시도해 나중엔 의식을 조정하는 수준까지 나갈 계획입니다."

<정재영에 대해 알고싶은 한두 가지 것들>

*발자취
1962년 9월 부산 출생
1986년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학과 졸업
1987년 일본 삐에로(에니메이션 업체) 입사
1991년 일본 SNK(아케이드게임 제작업체) 입사
1992년~ 타프시스템 대표이사(현)
1992년 대전엑스포 꿈돌이 안내시스템 제작

*학창시절: 미대에서 보다 사회생활을 통해 실무 감각을 익혔다는 그는 학창시절에도 극장에서 물감 타주기에서 시작해 미술학원 입시지도, 일러스트 제작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족: 부인과 딸. 다섯 살짜리 현경이가 아직 아버지가 만든 게임을 하지 못하는 게 아쉬움이다.

*취미: 낚시. 그가 낚시광 게임을 개발한 결정적 계기였다. 하지만 요즘엔 잦은 해외나들이로 낚시여행이 힘들어 지난해 4번에 그쳤다고.

*주량: 소주 3병. 매일 저녁 직원이나 친분있는 업계 관계자들과 술자리가 일상화된 그는 웬만큼 마셔서는 취하지 않는 주당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코스닥신문 68호(2001.2.19) CEO초대석에 실린 기사를 벤처인물탐험에 맞게 재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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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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