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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재판부 심판관으로 활동당시의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오마이뉴스 공희정
지난해 연말 민주당에서 자민련으로 이적해 화제가 된 자민련 송석찬 의원이 15일 국회 사회문화부문 대정부질문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판사시절 행적을 거론하며 정계은퇴를 촉구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이날 사회문화부문 3번째 질문자로 나선 자민련 송석찬 의원은 "이회창 총재는 지난 61년 8월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의 언론말살 사건인 민족일보 사건의 담당판사로서 반민주 악법의 칼날을 휘둘러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을 반국가단체 동조혐의로 사형시키는 등 수많은 인사들을 처벌함으로써 언론말살과 인권탄압에 앞장섰다"면서 "민족일보 사건에 사형을 판결하고 언론을 탄압한 이 총재가 과연 언론탄압 운운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언론말살, 총풍, 세풍, 안기부자금 횡령 등에 책임을 지고 정계를 떠나야 한다"고 높였다.

일순간 국회는 난장판이 됐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입에 담긴 힘든 욕설을 하기도 했다. "쑈 그만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 "약 먹고 나왔다", "이제 보니 싸이코구만", "사쿠라가 판을 치는 그런 국회" 등의 인신공격성 발언도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한나라당 윤두환 의원은 질문을 마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앉은 송석찬 의원에게 다가가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이에 이만섭 국회의장은 "상대당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해도 들어야한다"며 "15대 국회에서 소리지르고 그런 사람들이 16대 국회에서 떨어졌다"고 발끈하기도 했다.

대정부질문을 마치고 돌아온 송석찬 의원에게 항의를 하고 돌아선 한나라당 윤두환 의원 ⓒ 오마이뉴스 공희정

하지만 상황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송 의원 또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이 총재가 5.16 군사쿠테타 정부의 혁명재판부 제2부 심판관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부터 혁명재판소 제2부 심판권으로 임명된 이회창씨는 군사정권이 언론과 사회 정당단체를 탄압하고 독재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제정한 '특수범죄처벌관한특별법'을 적용하여 1961년 2월 창간한 민족일보가 반국가단체에 고무 동조했다는 이유로 발행인 조용수에게 1심과 2심에서 각각 사형을 판결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송 의원의 발언에 한나라당 김정숙 의원은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40년전 반국가 활동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조용수를 언론탄압의 대표적 피해자로 규정하고 나선 것은 놀랍다"면서 "이 총재는 서울지법에서 파견된 1심 배석판사였다"고 반박했다.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도 "민족일보 사건은 욓려 5.16 혁명후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자민련 명예총재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답변에 나선 김정길 법무부 장관은 "당시 조 사장 등은 북한의 대남통일전략을 옹호하는 사설과 논설 등을 발간한 혐의로 처벌받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송 의원은 추가·보충질의에서 다시 단상으로 나와 "많은 언론인들과 일본 펜클럽이 이 사건을 언론말살이라고 규정했고 조용수 사장을 불온하지 않고 단지 시대를 앞장서 나간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역사적인 차원에서 이 총재가 언론탄압 뿐만 아니라 인권탄압에 앞장서온 사람이기 때문에 앞으로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한나라당 권철현 대변인은 즉각 논평을 내고 "이성을 상실한 '임대의원'의 폭언"이라며 "언론공작문건이 폭로됨에 따라 당황한 나머지 무차별적으로 야당과 이 총재 흠집내기에 나서고 있다"고 비난했다.

권 대변인은 또 "민족일보 건은 지난 97년 대선때 제기됐다가 깨끗이 정리된 것"이라며 "휴전선에서 (남북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마당에 주적 개념까지 삭제하자는 여당이 이젠 용공의 총부리를 우리 내부에 겨누려고 하느냐"고 주장했다.

또한 정두언 부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민족일보판결 사건'을 시비 걸고 '과거정권체제에서의 법관생활'까지 걸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면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이 총재를 깎아 내려 자신들의 위상을 높여 보려는 한없이 치기어린 수작"이라고 폄하했다.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의 기사가 실린 당시의 신문들ⓒ 오마이뉴스 공희정


민족일보 사건이란

민족일보 사건이란 1960년 5.16혁명 직후 군부가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1961년 2월 창간한 민족일보에 대해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 제6조를 적용, 반국가단체에 고무·동조했다는 혐의를 적용, 5.16쿠테타 1호로 구속하여 결국 발행인인 조용수 사장에게 사형을 확정 집행한 사건이다.

민족일보는 4.19혁명으로 진보의 물결과 보수의 파장이 교차되던 때에 민족정론지로 태어났으나 예상 못한 군부쿠테타로 인해 92호로써 폭력적인 종막을 고한 신문이다. 변혁의 시기에 민족민주언론의 참담한 시련의 대표적 상징으로 기록돼있다. 또한 반국가단체에 동조혐의를 적용한 것은 적법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당시 국제신문편집협회(IPI), 재일조선언론출판인협회, 조국평화통일남북문화교류촉진재일문화회의, 오사카지방일본인유지, 명치대 유학생 및 교수 각계 언론 및 사회단체들은 항의성명을 내고 구명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기도 했다.

당시 혁명재판심판부 구성은 재판장 김홍규(육군대령), 법무사 강현태(해군대위), 심판관 유원종(육군대위), 심판관 이회창(판사), 심판관 차영조(변호사)였으며, 검찰관은 오재옥(중령), 변호인은 강신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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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남자. 산소같은 미소가 아름답다. 공희정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기자단 단장을 맡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