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영영 사라지고 말았는가?"

경기도 과천에 장기수 할아버지 네 분이 모여 사셨습니다. 안영기, 홍문거, 장호, 김은환 할아버지. 이 분들은 지난해 여름이 지나가던 무렵 당신들 피붙이가 살아 있는 북조선으로 돌아갔지요. 북조선으로 돌아가면서 당신들 살림을 스스로 일구어가던 매개인 `헌책방' 일은 당신들을 돕던 분에게 물려주고 가셨습니다.

<한라에서 백두>는 문을 닫았습니다. 장기수 할아버지 네 분이 북녘으로 떠나가신 지 다섯 달이 채 안 되는군요. 저는 지난 1999년 12월에 한 번, 그리고 장기수 할아버지들이 북녘으로 떠나기 앞서인 8월에 한 번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8월에 찾아갔을 땐 장기수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책방구경은 하지 못했기에 나중에 헌책방 일을 물려받으신 분이 책방을 어찌 꾸려가셨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장기수 할아버지 네 분이 계실 때는 한 분은 헌 책과 헌 옷을 모으러 다니셨고 한 분은 책방에 늘 계시며 손님을 맞이하셨지만, 나중에 다른 분이 물려받았을 때는 홀로 모든 일을 다 해야 했으므로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으리라는 짐작만 할 뿐입니다. 그리고 장기수 할아버지들이 북녘으로 떠났다고 하여 과천의 한갓진 곳까지 찾아올 사람도 줄었으리란 생각도 짐작으로만 하고요.

장기수 할아버지들이 사셨던 `한백의 집' 언저리를 돌아보니 과천문화원 우람한 건물이 있습니다. `문화원'에서는 어떤 문화를 담아내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문화원에서도 `책 문화'를 생각한다면 과천에 어렵사리 움트려 한 자그마한 헌책방 한 곳에도 눈길을 두었다면 좋았을 텐데. 여느 사람(대중)과는 거리가 먼 `고급예술'만을 문화로 여기지 않았는가 모르겠습니다.

<한라에서 백두>가 문닫기 앞서 찾아간 분 이야기를 들으니 이 헌책방에 있던 책은 안양에 있는 어느 도서관으로 들어갔고 그 분이 찾아갔을 때는 이미 책방 언저리가 어수선해서 무슨 일이 있었구나 싶었답니다. 그 얘기를 들은 다음날(2/4) 부랴부랴 과천정부청사역 1번 나들목 앞에 있는 서울호프호텔로 달려갔습니다. <한라에서 백두>는 바로 이 건물 2층에 있었거든요.

책방이 있던 두 칸 가운데 한 칸은 이미 연예인 사진과 포스터들을 파는 가게로 달라져 있고 한 칸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습니다. 책방 앞에 죽 늘어놓고 헌 옷과 헌 신을 팔던 자리는 `세 놓습니다'란 글자판만 휑뎅그렁하게 붙어 있고요.

지난 1999년 12월에도 2000년 8월에도 사진기를 들고 찾아오긴 했지만 막상 장기수 할아버지 앞에서 사진기를 들 수가 없어서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았기에 나무판에 새긴 그 멋진 `한라에서 백두'라는 글씨도 책방 모습도 제게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남은 것은 2000년 2월 21일치 <경향신문>에 크게 실렸던 장기수 할아버지 헌책방 <한라에서 백두> 기사 속 사진과 안영기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힘을 실어 주신 분에게 드리려 썼다는 `조국은 하나다' `조선은 하나다'라는 글씨를 담은 사진 한 장, 그리고 북녘으로 떠나는 할아버지를 당신이 쓰는 사진기로 담아 준 것(물론 제 사진기로는 안 찍었습니다)이 북녘땅 장기수 할아버지 품에 남아 있겠죠.

북녘으로 떠나는 마지막날까지도 헌책방을 맡으시는 분이 어려울 것이라면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어서 마음의 짐이었습니다. 그 마음의 짐을 즐거움으로 거듭나도록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습니다. 장기수 할아버지들이 북녘에서 <한라에서 백두>가 문닫았다는 소식을 들을 텐데, 그 소식을 듣는 마음이 어떠할는지.

과천도 사람이 퍽 많이 살고 `가장 살고 싶은 곳'으로 손꼽히긴 하지만 그 `가장 살고 싶다는 곳'에 움튼 지역문화공간인 헌책방이 숨을 거두고 만 일은 어떻게 보아야 좋을까요. 모두 서울로 일하러 가고 서울로 놀러나가긴 하지만 과천 안에 자리한 자그마한 문화공간에서 애틋함과 즐거움을 나누지 못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아야 좋을까요.

서울 안에서도 지하철 6호선 공사를 마무리하면서 6호선 길에 있는 가게를 모두 철거하면서 길을 넓히고 있더군요. 오늘은 그 6호선 길가에 있어서 곧 철거될 운명에 놓인 헌책방을 찾아갈 생각입니다. 어쩌면 이곳도 제가 찾아갔을 때는 이미 철거되고 아무 흔적도 안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책방이 있던 자리를 더듬어 시멘트 조각이 널린 그 자리에 잠깐이나마 서며 고개숙여 비손을 드리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 북조선에도 헌책방이 있다며 나중에 남과 북이 하나될 날 서로 즐거이 오갈 수 있는 북조선에 있는 헌책방에도 눈길을 두고 남조선에서 못 다한 일을 하겠다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어쨌든. 남조선에서는 더는 목숨을 잇지 못해 끊어져 버린 `한라'가 다시 새 목숨을 얻어 거듭날 수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기에 가신 님을 그리며 고개 숙여 비손합니다 *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한국말사전 편집자로 일하면서, 전남 고흥에서 <사전 짓는 책숲집 '숲노래'>를 꾸립니다.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읽는 우리말 사전》《골목빛》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