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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김영식이라는 분단의 아픔과 서러움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오신 한 분이 계십니다.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가진 것도 없었지만 조국의 역사적 현실을 보며 울분을 참지 못해 스스로 통일사업에 자청했던 열정에 넘치던 한 젊은이가 이제는 의지할 곳 하나 없는 67세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남파공작원으로 활동하다 잡혀 26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고, 비록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강제에 의해 이루어지긴 했지만 전향했다는 죄책감에 숨죽이며 이중삼중의 상처를 안고 살아온 분입니다.

이번 전향철회 선언은 지난 정순택, 유연철 선생님이 전향을 철회한 이후,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종교계와 사회단체가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나의 전향은 고문에 의한 강제전향이었음

"1973년 광주교도소 재소시 교회사 문승호가 대필한 전향서에 강제로 날인한 바 있으나 그것은 강제를 못이겨 한 일이지 내 의사가 아니었음을 밝힙니다."

29일 전주 고백교회에서 양심선언문을 낭독하시는 김영식씨의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간의 말 못할 고통과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던 모양입니다. 26년의 옥살이도 출옥후의 생활적 어려움도 정작 견딜 수 없는 큰 고통은 아니었겠죠. 그러나 전향했다는 죄책감을 견딜 수 없었나 봅니다.

"비록 강압적인 수단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전향을 하고 나서 얼마나 울며 괴로워했는지 모릅니다. 감옥 안에서도 죄책감 때문에 혼이 빠져 살았고 출소해서도 여전히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그 동안 얼마나 많은 한을 새기며 살아오셨는지 우리는 그 심정을 다 헤아리지는 못합니다. 다만 저는 그의 고통 속에서 분단조국의 아픔과 서러움을 느낍니다.

맞아 죽는 것이 행복한 죽음

그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모진 고문에 죽어간 동지들의 이름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당시 전향공작에 동원되었던 이들을 모두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토록 원한에 찬 일이었기 때문일 거라 생각합니다.

"광주교도소에서 진행된 강제전향공작은 그야말로 산사람을 잡는 것으로 인간이 이겨내기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이 전향공작에 동원되었던 사람은 다음과 같습니다. 교무과장 강아무개, 교회사 문아무개, 정아무개 간수, 백아무개 간수, 고문자는 깡패로 복역 중이었던 정아무개와 원아무개였습니다.

내가 직접 본 동지 중에 이러한 강제전향공작에 못 이겨 자살한 사람은 김기호 동지와 신춘복 동지이며 고문휴유증으로 죽은 사람은 변치수 동지입니다. 얼마나 잔인한 고문이었는가를 전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얼마나 악랄한 고문방법이 있었는지 이제는 더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맞아 죽는 것이 행복한 죽음"이라는 말을 하셨을 정도이지요.

그는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 것인지를 되물었습니다. 고문과정을 듣다보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 것인지 몸서리치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그에게 감사드립니다. 김씨가 짐승같이 잔인한 그들을 상대하여 짐승이 되지 않은 것을 감사드립니다.

전향취소 선언을 하기까지

88년 전주교도소에서 출소한 후에도 그의 정신적 고통은 여전했겠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남 땅에서 집도 없이 얼마나 외로운 생활을 했겠습니까. 먹고살기 위해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노동판에서 건설현장에서 일해야 했고, 아무데서나 스티로폼 한 장 깔고 잠을 자고 더군다나 일하던 회사가 부도나 밀린 월급도 못 받고......

그는 지금도 정부로부터 보안 관찰을 당하고 있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지금도 감시당하며 감옥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아직도 그를 보안관찰 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그가 진정 전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시대는 바야흐로 남북화해의 시대, 이제 조심스레 통일을 얘기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마음이 편치 못했겠죠. 이제와서야 전향취소를 선언하게 된 연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같이 고생하다 양심을 버리지 않고 먼저 간 동지들이 꿈에 자꾸 나타나 참 괴롭습니다. 또한 세월도 화해의 길로 가는데 나만이 마음속에 암적인 응어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괴로워 더 이상 참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도 이제 인간이 되었습니다

김씨는 전향취소 선언 당시 마지막으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이제 나도 인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 사회는 김영식 씨의 마음의 멍에를 벗겨주어야 합니다. 분단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보듬는 것에서부터 분단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북에는 그의 가족이 있습니다. 이제라도 만나 남은 여생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분단으로 희생당해 온 사람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도리인 것입니다.

그가 이제 전주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서울 낙성대로 거처를 옮긴 만큼, 남은 여생의 마지막 소원대로 북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 사랑해 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전향이라는 멍에 때문에 아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모든 장기수들과 함께 북에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글을 쓰고 있는 지금 TV에서 적십자 회담 소식이 들려오는군요. 북에서는 남파공작원의 2차 송환을 요구했나본데, 남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그러나 앞으로 제 사회단체와 함께 노력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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