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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월 19일 (금요일)

드디어 우리를 태운 카멜리야호가 후쿠오카 하카타 항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마치니 벌써 9시 반이다. 우리를 태울 62인승 대형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또한 우리를 3일 동안 안내해 줄 여행 가이드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는 후쿠오카에 큰 집이 있고 한국에서 일본으로 유학 와 학교를 졸업한 이후 프리랜서로 여행 가이드를 한다고 한다. 또한 예전 여수에도 다녀간 아리다미끼 양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우리를 3일간 바람처럼 구름처럼 옮겨 줄 버스는 깨끗하게 세차되어 있었고, 기사는 하얀 와이셔츠 차림의 정복을 하고 짐을 본인이 직접 버스 짐칸에 넣는 등 세심히 배려해 주는 눈치였다. 그러나 우리가 준비해 간 버스에 부착할 플래카드 등은 자동차 도로에서는 부착을 하지 말도록 가이드를 통해 의사를 전한다.

차는 바로 후쿠오카 시내를 빠져나와 미야자키로 가는 자동차 도로를 달린다. 가는 차 안에서 가이드는 일본 여행시 주의해야 할 점이라 하며 4가지 정도를 주의 사항으로 일러준다. 교통 관련 사항에 있어서는, 차는 오른쪽, 사람은 왼쪽이라는 것이다. 또 자동차 내에서의 운전석 위치도 우리와는 달리 차 내의 오른쪽 전면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다. 이를 혼동해서 길을 걷다가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최근에 그런 사고가 있었다 했다.

또한 일본은 정찰제로, 할인 등이 되지 않으며 이 부착된 정찰제 금액 외에 5%의 소비세를 더 부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부착된 금액에 5%의 소비세를 더 지불한다는 것이었다. 화폐 단위도 우리와 동일한 크기이나 2000엔 화폐가 달리 있다는 것이다. 국제 전화도 외국인의 불법 사용으로 인하여 많은 곳에서 국제 전화가 아니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미야자키로 가는 도중 우리는 자동차 도로변에 양측으로 뚝처럼 보이는 언덕을 볼 수 있었고, 그 주변이 모두 산인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자이후(大宰府) 수성이었다.

우리를 국내에서 유적 부족으로 인하여 잊혀진 것이나 다름없는 백제와 연결 시키고 있는 끈은 무엇일까?

백제 부흥군의 백촌강(百村江) 전투. 이 전투 후 일본의 천지천황(天智天皇)은 신라의 침입을 두려워하여 아스카(飛鳥) 도성으로 돌아가지 않고 다자이후(大宰府)로 수도를 옮기고 수성(水城)과 조선식 산성을 쌓아 신라의 침입을 막고자 했다.

그렇다면 백촌강(百村江)은 어디일까? 금강 하구라는 이야기도 있고, 전북 부안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부여라는 이야기도 있고 하나 백촌강(百村江)이 어디인지는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

'백촌강(百村江)이 어디인가'하는 의문을 가진 일본 답사단의 한국 방문과 한국 부여 현지에서의 심포지움이 계기가 되어 이루어진 이번 일본 특별 답사.

우리는 '구다라노 사토(百濟の里)가 어디인가'하며 백제의 남아 있는 흔적을 답사코자 하는 것이다.

미야자키현의 난고손(南鄕村)은 멀기도 멀었다. 9시 반에 출발한 버스는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저녁 6시 경이 되어서야 미야자키현의 난고손(南鄕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의 찐무(神武)천황과 관계 있는 다카치호 계곡을 지나 산길을 4시간 가량 달려서야, 정가·복지왕 일행이 배를 내렸다는 휴가를 볼 수 있었다(아들 복지왕은 휴가의 히키(比木) 신사에 신으로 모셔져 있다).

휴가로부터 난고손(南鄕村)까지의 길은 상당히 외지었다. 반대편에서 오는 차를 확인하고서야 차가 갈 수 있는 절벽 옆의 왕복 1차선 도로 등 산골 마을 중의 산골 마을이었다. 아버지를 이 산골마을로 피신시켜 놓고 음력 섣달 그믐날 아버지를 찾아 9박 10일 일정으로 난고손(南鄕村) 산골로 아버지를 찿아 뵙는 효성이란! 그런 효성 어린 지극한 마음이 강변 도로를 따라 난고손(南鄕村)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순간 나는 부끄러웠다. 차로 10분 거리인데도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내 자신이 되돌아 보아지는 순간이었다. 강가를 따라 쭉 올라가니 우리말로 '백제마을'이라는 글자가 百濟の里(구다라노 사토)라는 한자어와 함께 눈에 뛰었다.

구다라(くだら), 큰집. 큰집이라는 뜻의 구다라란 용어를 왜 백제에게만 붙이었는지? 신라 고구려는 왜 큰집이 아니고 그냥 신라 고구려라 불렀는지? 의문과 자성은 한이 없었다.

백제마을이라고 우리말로 씌여져 있는 곳에서 한참을 더 올라가니,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었고, 比木神社(히키 신사)라고 푸른 천에 하얀 색으로 씌여져 있는 比木神社(히키 신사) 깃발을 가지고 있는 히키(比木) 신사 사람들이 맨몸으로 목욕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 정가왕을 신으로 모시고 있는 미카도(神門) 신사에 가는 도중에 목욕 재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즉 목욕재계를 하고, 한지를 꼬아 만든 '지노' 노끈을 남근에 걸어 고리를 만들며 이를 고요리(こより)하여 남자운과 순산을 불러 일으키는 부적으로 아낙네에게 나누어 주는 행사 행열과 마주친 것이었다. 이들은 잠시 후 난고손(南鄕村))에서 다시금 만나게 될 것이었다.

이찌모리(いちまり) 여관과 南鄕 여관에 짐을 풀고 서둘러 미카도(神門)신사 맞은 편에 준비되어 있는 불맞이(迎火,むかえび) 행사장에 내려가니, 불맞이(迎火,むかえび) 행사를 위한 삼나무와 편백나무 그리고 대나무 장작더미가 약 20곳 군데군데 산을 이루고 있었다. 바로 우리의 '달집태우기'와 불맞이 시에 쓰는 재료만 다를 뿐 바로 우리의 달집태우기 행사 그대로였다.

장작더미 그 옆에는 단체 이름의 팻말이 보이고, 불맞이 행사를 위한 작은 불과 액을 쫓아 보내고자 하는 불을 피울 사람이 보였다. 즉 우리나라의 달집 태우기와 동일한 것이다. 액을 쫓아내는 행사인 것이다. 우리나라 음력 대보름날 행사가 이곳 큐슈 섬 미야자키현의 난고손(南鄕村)에서 동일하게 행해지는 것이다. 음력 보름도 설이 지나면 바로 닥칠 것이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니 일본 NHK TV의 협조 요청 사항이 있었던 판소리 마당이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여수대 김준옥 교수의 창작 소리를, 여수 시립 민속(국악)단 단장인 김영옥 단장과 지휘자 강정화 씨가 대금 연주에 맞추어 정가·복지왕에 관련된 소리 마당을 펼칠 준비가 다 되어 있는 것이었다.

"어어널 어너널 얼가지 넘자 어어널"

한바탕, 이국 땅이긴 하지만 같은 조상을 둔 난고손(南鄕村)에 모인 사람들끼리 동질성을 확인하는 의식이기도 한 놀이를 한바탕 신명나게 놀아 볼 준비가 끝난 것이었다.

불맞이(迎火,むかえび) 불빛 뒤에 두고,
한반도 남쪽 끝 여수 소리꾼 김영옥
대금 반주 맞추어 작은·큰 집(百濟) 이야기 구성지게 노래하네

"백제국 정가왕은
복지·화지 두 아들과 자부에 시종까지
일엽편주 현해탄을 눈물 배로 건너와서
일본 큐슈 미야자키 난고손(南鄕村) 기조쪼에 궁궐을 지어놓고,
농경· 의술 ·제천 의식· 백제 문화 꽃 피우고 자손이 번창하니
구다라노사토(百濟の里)의 미카도(神門) 신이 되었다네"

百濟마을 사람들
백제 정가왕·복지왕 기리어 1000년이 지난 오날까지
"사라바(さろぼ). 오(お -), 사라바(さろぼ)"
정가왕·복지왕에 눈물 통곡 전하네
"사라바. 오, 사라바"

百濟마을 주민들
가구라(神樂)연주하며
같이 음복하자 술을 권하네
"곤드레 만드레"

"어화 난고손 벗님네들
조상같은 우리끼리 형님· 아우·누이·자매
세세 백년 오명가명 노래하고 춤도 추고
거드렁거리며 놀아보세."

"곤드레 만드레"


일본 NHK TV와 여수 MBC는 김영옥 단장에 소리를 하나 더 하라고 부추킨다. 김단장도 한 곡을 더 할 태세다. 1999년 서울과 여수·순천에서 완창을 했었던 심청가 중 심청 아버지 눈 뜨는 대목을 김단장이 목청을 가다듬어 한 대목 하기 시작한다.

심청이와 그 아버지 심학규가 황성에서 상봉을 하는 장면을 온 정성을 다해 소리를 한다. 이곳 난고손(南鄕村)에서, 아들 마을 사람들이 아버지 마을로 정가왕을 뵈러 오는 날, 즉 복지왕이 그 아버진인 정가왕을 뵈러 오는 음력 섣달 그믐에, 심청이가 그 아버지 심학규를 황궁에서 얼싸안는 대목을 김단장이 부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 자기 뿌리에 눈 뜨는 날 말이다.

"어어널 어너널 얼가지 넘자 어어널"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 아라리가 났네. 노다 가세 노다 가세 저 달이 떴다 지도록 노다 가세"

덧붙이는 글 | 1. '사라바'는 일본에서 화석화된 순 우리말로 '살아봐' 즉 살아서 다시 보자라는 처절한 인사말로 지금도 일본에서는 연속극 등에서 이 말을 쓴다.

2. '곤드레 만드레'도 일본에서 화석화된 순 우리말로 일본 미야자키현의 난고손(南鄕村) 지역에서는 술자리를 같이 한 사람들끼리 '곤드레 만드레'라는 말을 외치며 건배를 한다.

3.일본 난고손(南鄕村) 지역에서의 시와쓰마쓰리(百濟祭) 행사는 음력 섣달 그믐 가까운 일시 중 금,토,일 3일을 택하여 행하는데 우리가 간 1월 19일이 축제 첫날이어 히키 신사 일행을 환영하는 불맞이 행사를 볼 수 있었다. 2일, 3일 째의 행사 내용은, 2일째는 아버지 마을에서의 접대가, 그리고 3일째에는 "사라바. 오, 사라바"를 외치며 처절하나 구성진 이별의 행사를 한다.

4.이찌모리 여관에서의 뒷풀이는 일본인과 답사단이 하나되어 같이 진도아리랑 등 전체 합창을 하는 것으로 하여 밤늦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5. 계속 글을 올려 3일 째의 답사기로는 가고시마의 심수관 가에 대해 글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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