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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사회내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이하 100인위)>가 12월11일 인터넷을 통해 공개한 운동사회 내 성폭력 사례 1차 공개자료가 가해자들의 실명을 거론하고 있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100인위가 '자료 공개'의 창구로 삼았던 진보넷 게시판에는 12일 하룻동안 가해자, 여성노동자, 진보인사 등의 찬반글이 올라왔다. 특히 100인위가 공개한 자료가 가해자의 실명을 거론하고 있음에도 가해자의 해명 또는 반론을 싣지 않은 것과 관련, '명예훼손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한 현장 여성노동자는 12일 진보넷 게시판을 통해 "솔직히 그리 놀랍지 않다. 내 주위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너무도 흔한 일들이 물위로 떠올라 오니까 예전에 몰랐던 사실을 이제야 아는 것처럼 호들갑떠는 저들(운동권)의 모습이 역겹다. 한 술 더떠 운동을 위한답시고 진실을 가리려는 저들의 모습을 보면서는 토할 것 같다"며 100인위의 활동을 지지했다.

반면 진보넷에서 동호회를 운영하고 있는 원낙연 씨는 같은 날 '100인위에 드립니다'라는 제하의 글을 통해 '피해자의 주장과 함께 가해자의 반론도 실어야 한다'고 밝힌 뒤 실명공개에 대해서도 "실명공개/비공개/단계적 공개 등 몇가지 기준을 세우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가해자로 거론된 사람들의 입장도 게시판에서 두 축으로 나뉘어 나타났다.
학생운동 관계자 L씨는 12일 진보넷 게시판에 "진심으로 사과한다. 뼈를 깎는 마음으로 뉘우치며 살겠다"는 공개사과의 글을 올렸다. 반면 P씨는 "사실은 내가 피해자다"라며 1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반증자료를 게시판에 올렸다.

100인위의 발표와 각계의 반응에 대해서 알아본다.

공개된 100인위 자료 어떻게 나왔나

100인위는 운동사회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여성활동가들로 구성된 개인별 네트워크 조직으로 지난 7월 첫모임을 시작했으며,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뽑기'와 '가해자 실명공개'를 당면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1차 공개를 위해 100인위는 10월27일부터 11월15일까지 운동조직 내 성폭력 사례를 접수받았으며, 한 달 여간 자체 조사작업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100인위는 11일 발표자료 서문에서 "운동사회 또한 일반사회인들이 갖는 편견과 자본주의적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라며 "성폭력의 재발을 막기 위해 운동사회 내에서 지금까지 은폐되어 왔던 성폭력의 실상을 알리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100인위는 또 "운동사회 내에서 어렵게 문제제기했던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은 운동과 조직을 떠나거나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반면, 오히려 가해자들은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버티고 있으며 2차, 3차의 가해를 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공개된 1차 명단 및 사례에는 노조간부 5명, 언론사 기자 1명, 학생운동 관계자 7명, 빈민운동관계자 1명, 출판계 1명, 문학인 1명 등이 망라되어 있으며, 성폭력 사례가 구체적으로 열거되어 있다.

사례의 유형

발표된 사례의 유형은
△'뽀뽀해 달라'고 피해자에게 요구 △피해자의 뺨을 때리고, 피해자의 얼굴에 방뇨 △상급단체의 중앙간부를 여관에 끌고 가려는 등 성폭행 △피해자 강간 뒤 '나와 잔 것만으로 영광으로 생각하라' 등의 발언 △만취상태에서 피해자의 입을 맞추고, 더듬는 등 성추행 △피해자에게 수배중이라며 보위를 요구한 뒤 두차례 강간 시도 등 △같은 학교 활동가 4인 상습적으로 성폭력 △토론회 뒤풀이 도중 피해자에게 '자신이 예뻐한다'고 말하며 강제 포옹 및 키스 △'한번 안아봐도 되냐'며 피해자를 껴안고 가슴과 엉덩이를 수십차례 더듬음 △총학생회 선거 준비중에 여자 후배들을 잠자리에서 성추행 △'우리 뽀뽀나 한 번 하자'며 여학생들에게 키스를 하는 등 상습 성추행 등으로 요약된다.

1차 명단에서 100인위가 공개한 16건의 사례들은 지난 6월에 있었던 "이제는 말하자! 운동사회 성폭력" 토론회 등에 실렸던 글과 피해자의 진술을 토대로 작성됐다. 또 피해자 진술은 100인위 사례분석팀이 피해자 주위 사람들을 만나 피해사례에 대한 확인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1차 공개자료 '가해자'로 실명이 거론된 사람들에 대한 100인위의 공식 확인작업은 없었다. 다만 일부 공개됐던 사건들에서 일부 가해자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논란 - 가해자의 진술 왜 빠졌나

100인위의 발표에 대해서는 대부분 '곪았던 일이 결국 터진 것'이라는 분위기다.
다만 앞서 언급한 대로 100인위가 발표한 16개 사례에 피해자들의 구체적인 진술만 열거되어 있을 뿐, 가해자의 입장은 반영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이는 '피해자들이 말한 것만 보고 어떻게 사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제기로 이어진다.

이에 대해 100인위 사례분석팀의 K씨는 "어차피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할텐데 굳이 가해자의 입장을 들을 필요가 있는가"라고 말했다. K씨는 또 "이번 발표에 실명공개된 가해자들의 경우, 대부분 재범, 3범들이며 피해자가 한 명이 아닌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이어 K씨는 "피해자들의 주장이 수치적인 부분에서는 잘못됐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정황은 사실이라고 판단했다"라며 "중요한 것은 성폭행을 당했는가의 여부 아니냐"라고 전했다.

이같은 100인위의 입장에는 100인위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성폭행 사건을 많이 다뤄온 여성단체들도 동조하는 분위기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의 전화 등은 '공식입장'에 대해서는 보류하고 있으나 "가해자의 얘기 들어봐야 뻔한 것 아니냐" 또는 "100인위는 처음부터 피해자 진술을 중심으로 하겠다고 밝혔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의 금박병헌 씨는 "2, 3차 발표까지 보면서 우리 단체에서도 자체조사를 거친 뒤 입장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가해자의 입장 누락은 곧바로 법적인 부분으로 이어진다.
가해자로 실명거론된 한 당사자는 "100인위와 진보넷을 대상으로 명예훼손을 걸겠다"고 밝히며 "우선 '게재중지 가처분 신청'을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100인위 관계자는 "가해자 실명공개를 하면서 명예훼손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라며 "명예훼손 소송에는 100인위가 집단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명예훼손 여부'에 대한 변호사들의 법해석도 조금씩 다르다.
배금자 변호사는 "수사기관으로부터 '죄가 있다'는 확정판결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실명을 공개할 경우 100%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배변호사는 또 "100인위와 100인위에 공개하도록 진술해준 피해자들, 진보넷 모두가 명예훼손에 걸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참여연대의 하승수 변호사는 "사실의 내용을 공개한 것이라도 명예훼손이 성립될 수는 있지만, 공공의 이익이라고 판단될 경우에는 위법이 아닐 수도 있다"며 "100인위원회가 사적인 감정으로 공개했다고 볼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밝혔다. 하 변호사는 또 "공개된 사건들이 법문제로 확대될 경우에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 사안은 고소전으로 가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한편, 100인위는 2차, 3차 공개작업을 통해 계속적으로 운동사회 내 성폭력 사건과 가해자를 공개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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