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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또 다시 재연 다큐멘터리가 텔레비전에서 비중을 높여 가고 있다. MBC의 간판 재연 다큐멘터리 ‘성공시대’의 성공과 롱런이 부러웠던지 SBS에서는 ‘인생 대역전’이라는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사람들의 인생이 어떤 계기나 어떤 노력 등이 요인이 되어 바뀌는 것에 착안해서 이를 재연을 통해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다. 다분히 MBC의 ‘성공시대’를 염두에 둔 프로그램인 듯하다. 그래서 오늘은 다큐멘터리라는 영상장르의 표현요소 중 재연과 인터뷰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 한다. 주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놓고 이야기를 하겠지만 모든 다큐멘터리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사실 뉴스사이트에서 다룰 만한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약간 전문성이 있는 이야기지만 최근 방송 시청자들의 수준을 생각해 보면 무리가 없는 이야기 일 수도 있다. 이 글을 통해서 방송 시청자들과 일반적인 다큐멘터리 관람객들의 수준이 한층 더 높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두 번째 이야기는 이것으로 정했다. 보는 사람의 수준이 높아지면 만드는 사람의 수준은 당연히 거기에 자극을 받게 되어 있다.

영상장르 대부분이 그러하지만 다큐멘터리에는 표현을 위한 구성 요소가 몇 가지 있다. 그리고 그 구성 요소는 영상의 기술적인 발전에 힘입어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초기 다큐멘터리 작품인 플레허티의 '북극의 나누크/1922'의 경우에는 무성 영화였다. 이 말은 이 시대까지만 해도 다큐멘터리에 현장음 혹은 대사, 내레이션 등의 소리 표현요소가 없었다. 다만 자막과 음악,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영상기술의 발전을 선도했던, 아니 사실 영상분야라고 해봐야 영화가 고작이겠지만 좌우지간 영화의 발전과 더불어 다큐멘터리 또한 수많은 기술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그리고 텔레비전의 출현은 다큐멘터리 전체의 발전과 더불어 기술적인 발전에 한 층 더 기여했다. 나아가 기술적인 발전은 표현요소의 다양화를 가능케 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현실 세계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존재나 가상의 존재 또한 표현 가능하게 되었다. 종종 텔레비전을 통해 구경할 수 있었던 공룡 관련 다큐멘터리가 바로 그런 대표적인 예이다. 공룡의 생태, 생김새 등을 화석과 전문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종합해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해내고 있을 정도다.

이럴 경우 약간의 공룡 실물 모형과 자연 배경으로 쓰일 공룡생존시대와 유사한 자연배경만 있으면 실제 세계보다 더 리얼한-더 리얼하다는 의미는 실제 세계에서 공룡을 촬영할 경우 불가능한 카메라 조작까지 표현해 내기 때문에-공룡시대가 탄생되곤 한다.

그러나 이런 영상기술의 발전이 가능하게 해주는 표현요소의 다양성이 곧바로 다큐멘터리의 작품성을 담보해 주지는 못한다. 여전히 작품의 완성도와 작품성은 연출자의 감각과 끝없는 고민 그리고 스텝들의 창의성과 성실함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표현요소가 다양해 진 만큼 작품 내에서 보여질 수 있는 표현력이 풍부해 질 수 있기에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좀더 섬세한 감정 혹은 쉬운 이해를 가능하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때로는 기술적으로는 고난위도지만 잘못 사용되어 사족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없다고 할 수 없다.

대개 이런 새로운 영상 표현 기술은 실재하는 현실을 좀더 리얼하게 보여주거나 특별한 의미로 보여지게 하기 위함이거나 아니면 이야기 되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체가 없어 인위적으로 가시화 시키는 과정에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 최근에 논란을 불러 일으킨 것이 재연이다. 재연은 은밀히 말해 인터뷰를 대체하려는 새로운 시도였다. 보여줄 게 없을 경우 관련당사자나 전문가의 인터뷰를 사용하는 것이 통상적인 방법이었다면 재연은 그들의 증언을 대역 연기자들을 사용해 재현해 내는 것이다. 한동안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이런 재연기법이 각광을 받았지만 저간에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런 류의 다큐멘터리는 다큐멘터리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또한 지나치게 드라마틱해 지는 경향이 결국 이야기의 신빙성을 잃게 하고 흥미위주의 다큐멘터리를 지향하게 하는 폐해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폐해가 범죄 수법을 그대로 재연해서 보여주는 다큐와 인간세계의 신비하고 미스터리한 초자연적 현상을 다룬 다큐멘터리였다.

전자가 범죄수법의 모방이라는 문제가 있었다면 후자는 민심을 흉흉하게 하는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사람들을 현실과 유리시키고 초자연적 세계에 몰입하게 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들 다큐멘터리에서 재연이라는 방법을 쓴 것은 그 만큼 재미만을 추구했기때문이었다. 물론 여기에도 인터뷰라는 요소가 삽입되어 있지만 그것은 구색맞추기에 불과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약간의 행간을 읽을 필요가 있다. 재연기법이 활발해지게 된 데는 다큐멘터리의 자체의 역사성에 근거한 발전 논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상업적인 미디어로서의 방송의 논리가 있었다.

방송이란 기본적으로 아주 쉬워야 한다. 그리고 적당히 흥미로운 화면을 구성해 시청자들의 눈도 잡아 두어야 한다. 이런 논리 때문에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재연이 한동안 붐을 이룬 것이지 다큐멘터리 발전의 한 줄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거기에 적당히 게으른 연출자들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어렵게 정서까지 담아가면서 실체 없는 이야기를 전달하느니 차라리 적당한 재연과 적당한 인터뷰를 섞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기본은 한다는 생각이 팽배했는지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정석에 조금 더 충실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본 기자는 이야기가 잔가지를 치는 면이 있지만 인터뷰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한다.

인터뷰를 쓰게 되는 경우는 대개 두 가지 정도로 나뉜다. 사건이나 사실에 대해 시간적 경과 혹은 추상성 때문에 촬영할 실체가 없을 경우 관련 당사자나 목격자들의 증언 형식으로 인터뷰를 사용하는 경우와, 작품 내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가의 인터뷰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둘 중 어느것이 됐건 결론적으로는 인터뷰는 작품의 사실성과 신빙성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인터뷰의 역할이 이것만이라면 재연이라는 보조적인 수단에 대해 평가 절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터뷰에는 또 다른 기능이 있다. 예를 들어 살펴보자.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끼리 이념 때문에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했다. 해방직후 혹은 한국전쟁 와중에 실제로 이런 사건을 겪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그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만들려고 한다. 물론 사건의 전말을 약간의 현장 탐방과 더불어 재연을 통해 상세히 전달하고 거기에 구색을 맞추는 몇몇 인터뷰를 집어 넣을 수 있다. 그러나 대개의 작품은 정해진 시간 내에서 소화되지 않고 무한정 길어질 경우 완성도가 떨어지므로 연출자는 결국 인터뷰에 한정된 시간을 할당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기본은 되는 다큐멘터리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절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시간의 제약만큼 축소된 몇몇 인터뷰는 사건의 전말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게다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한줌의 해석의 공간을 제공하지 못하는 재연-재연은 때로는 모든 것을 사실로 믿게끔 하므로 폐쇄적인 표현방법이라고 본 기자는 생각한다-때문에 사건은 하나의 사실로 고착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하고 있는 작업을 생각해 보자. 그것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일들을 재현해 내는 작업이다. 이 경우 어떤 것도 절대적인 사실일 수는 없다. 사실을 바라보는 사람들간의 견해가 다르고 기억의 오류가 없다고 장담할 수 없는 한 그 사실은 사실에 가장 가깝다고 연출자가 생각하는 사실일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라면 좀더 신중한 연출자는 어떤 표현방식의 선택을 해야 할까? 본 기자는 오히려 관련 당사자 혹은 전문가의 인터뷰에 더 큰 비중을 둘 것이다.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과 이와는 좀 다른, 긴 시간 동안 해당 사건을 연구한 전문가의 인터뷰를 충분히 넣음으로써 작품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직접 자신들이 생각하는 사실을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 훨씬 다큐멘터리라는 영상장르에 충실히 하는 것이다.

중요한 또 한가지, 관련 당사자들 특히 예로든 아이템에서 피해자나 가해자, 혹은 그들의 가족 친지들이 살아 있어 인터뷰를 할 수 있다면 그 인터뷰는 단순한 견해나 사실을 전달하는 기능만이 아니라 그들의 현재 감정 혹은 정서를 전달할 수 있다.

인터뷰를 하던 한 노인이 그때 그 사건을 떠 올리며 눈물이라도 흘리기 시작하면 그 사건 자체가 얼마나 이 순박한 사람들에게는 처참했고 어이없고 서글픈 일이었던가 하는 아주 복잡하고 전달하기 힘든 부분을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 자료화면이나 현장탐방, 그리고 일반적인 인터뷰로는 제대로 전달하기 힘든 사건의 분위기, 그 사건의 참혹함 등 미묘한 부분까지 그 하나의 인터뷰로 표현해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바로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면 인터뷰라는 표현요소에는 사람의 감정과 인간성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그걸 아주 적절하게 이용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작년에 MBC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중에서 이와 비슷한 예가 있었다. 기획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제주4.3항쟁'의 진상과 숨겨진 진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이 경우 아직도 생존자들이 많이 남아 있어서 상당히 많은 인터뷰들로 작품이 구성되었다. 그리고 반대되는 쪽의 이야기로 당시 군관계자나 경찰 관계자들의 인터뷰도 담았다. 작품 전체로는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인터뷰의 전개는 아주 적절했다. 그리고 이제 시간이 더 흘러가 버리면 그런 분들의 증언을 들을 수 없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인터뷰들을 담아내었다는 의미에서 그 작품에 개인적으로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인터뷰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다. 잘 기억 나지는 않지만 인터뷰만으로 구성된 아주 잘 만든 다큐멘터리를 본적도 있다. 본 기자보다 시야가 넓으신 분들은 분명 그런 작품을 보았으리라 생각된다.

요컨대 인터뷰는 다큐멘터리의 충실성을 담보하는 아주 기본적인 요소이며 그 자체를 더욱 더 발전시키면 그것만으로도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아주 요긴한 표현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 방송 다큐멘터리에서 재연 다큐멘터리가 지속적으로 각광 받는 것은 대부분의 이유가 시청률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의 표현 요소는 무궁무진하고 제작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고 있지만 이런 재연 방법의 각광은 한번쯤 문제점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거기에 아이템마저 선정적이 되면 재연다큐멘터리의 문제는 다시 한번 예전처럼 불거질 것이다. 걸작 다큐멘터리들 속에도 재연이라는 것이 부분적으로 사용되지만 그것은 영화에서 애로장면과 마찬가지이다. 정말 시나리오상 필요할 때 즉 다큐멘터리 같으면 정말 재연을 써야 하는 부분에서 사용하는 절제가 필요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의 드가가 제공합니다. '드가(박성호)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방문하시면 다큐멘터리에 관한 풍부한 정보들을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http://myhome.shinbiro.com/~fhu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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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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