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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 루트·전시관’이냐 ‘공비토벌 전시관’이냐.

경남도가 99년 6억여원을 들여 하동 함양 산청에 새 관광 자원 개발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빨치산 루트·전시관’ 건립 사업의 이름을 어떻게 하고, 관리를 누가 맡을 것인가를 두고 말이 많다.

경남도는 한국전쟁 50주년을 맞아 지리산을 무대로 활약했던 빨치산과 토벌대의 행적을 찾아서 소개하는 관광코스를 개발해 ‘안보교육장’으로 활용하기로 하고, 구체적 사업은 하동군청과 산청군청, 함양군청에서 실시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세 개 자치단체가 저마다 올해부터 공사에 들어가거나 일부 마무리를 해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함양군은 백무동계곡 일대에 ‘빨치산 루트’ 설치공사를 완료하고 지난 21일과 22일 이틀동안 “제1회 지리산 천왕축제”를 열어, 시설물을 일반에 공개했다. 천왕축제는 한국전쟁 당시 지리산 일대에서 숨진 주민과 빨치산, 토벌군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마련한 행사로, 전통 불교식으로 재를 올리고 위령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산청군은 중산리에 전시관을 짓기로 하고,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며, 내년 상반기에 개관할 예정이다. 산청군은 전시관에 선보일 전시물 확보를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최근 한국항공(주)와 자유총연맹측(창원)에 전쟁 당시 사용된 항공기 모형 제작과 대여 등을 교섭하고 있다.

하동군은 2억여원을 들여 전시관을 짓기로 하고 올해 9월 입찰을 실시,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 하동군이 입찰 공고 당시 붙인 이름은 ‘지리산 공비 토벌 전시관’이다. 최근 함양에서 ‘빨치산 이동 루트’라는 단어를 쓰며 천왕축제를 열어 이름 사용에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함양의 천왕축제에서 ‘빨치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자 군 당국에서 심한 거부감을 보이며 시기상조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연합뉴스> 10월 16일자에 따르면 39사단 등 군 당국은 "빨치산은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양민을 학살했는데도 전시관을 건립할 경우 국민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 주는 등 이념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남북간에 군사가 대치하는 등 냉전이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지금 빨치산과 관련한 전시관 건립은 시기상조다"”라고 밝혔다.

군 당국의 이런 지적에 대해 함양군 관계자는 “공비토벌전시관이란 말은 반공 이념이 짙어 당초 계획했던 관광사업과는 거리가 멀고, 대통령이 북한에 가고 북·미 관계가 진전되는 화해 분위기 속에서 군 당국이 아직도 시대 흐름을 못 읽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

‘공비’라는 말은 ‘공산당의 비적’이란 뜻으로 감정적이고 매도하는 뜻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경상대 역사교육과 김준형 교수는 “동학농민항쟁 때 동학세력을 ‘동비’라고 불렀다. 이는 동학세력을 매도하려는 용어로 쓰였던 것이다. 이처럼 ‘비’자는 도적이라 하여 특정집단을 나쁜 세력으로 매도하는 감정적으로 쓰인 용어다. 민족화해를 지향하는 시점에서 감정적인 용어를 쓰는 일은 적절치 못하다. 민족 갈등이 심했던 한국전쟁 전후 사정과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는 지금의 사정은 다르기에, ‘반공 이데올로기’가 남아 있는 단어보다는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교수는 “‘공비’라는 말보다 ‘빨치산’이라는 말이 더 낫다”고 말했다.

이들 ‘빨치산 루트·전시관’ 관리를 어느 단체가 맡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다. 현재까지 이들 3개 자치단체는 자체 관리를 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지만, 관련 단체에 위탁 운영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산청군 관계자는 “위탁 운영을 할 것인지, 입장료를 받을 것인지에 대해 결정을 본 바가 없다. 하지만 여러 가지 방안을 검토 중이다”라고 말했다.

경남지역의 한국전쟁 관련 기념관에 대한 위탁 관리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것은 거제포로수용소도 마찬가지다. 거제시는 2003년까지 2차 사업을 벌여 규모를 확대해 위탁관리하는 문제도 검토하고 있다. 거제시 관계자는 “위탁 관리 문제에 대해 결정된 바가 없다. 다만 위탁운영을 할 것인지, 위탁을 하더라도 어느 단체에 할 것인지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리산 빨치산전시관과 거제포로수용소 관리를 반공우익단체가 맡을 경우, 반공이념교육장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보고 있다. 진주시민노인대학 정구현 학장은 “민족 화합을 이루어야 하는 마당에 전시관으로 인해 오히려 갈등을 조장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기념관 운영을 객관적인 단체에 위탁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자치단체가 관리를 맡는 게 바람직하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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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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