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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가요계의 황제’로 불리는 남인수(1919~1962)의 성씨가 강씨가 아니라 최씨라는 주장이 가요계에 제기된 바 있다. 본명이 ‘강문수’가 아니라 ‘최문수’라는 주장이었다.

이는 대중음악평론가 황문평씨가 올해 4월 남인수선생추모사업회(서울)에서 연 “2000 제10회 남인수 음악가요제” 홍보물에서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황씨는 남인수와 관련한 갖가지 일화를 소개한 “서정가요의 대부 남인수”라는 글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족으로 남인수의 본명이 강문수(姜文秀)라고 하지만 일찍 강씨 문중에 양자로 갔다고 한 그의 본성이 최씨라고 한다. 그 증거로는 남인수가 세상을 떠날 때 모든 일의 실질적인 뒷바라지를 최태원(崔泰元)이라는 인물이 도맡아 한 것”이라고 황씨는 주장했다.

남인수의 본성이 강씨로 알고 갖가지 사업을 펼치던 남인수기념사업회(진주)는 최근까지 조심스럽게 그의 가족사를 추적했다.

이창식 회장은 ‘강인수’의 제적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아버지인 강영대의 제적부를 찾아 냈다. 이 제적부에는 강인수는 강영대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또 남인수가 한국전쟁 직후 한때 한빛은행 진주지점 뒷편에서 진주당구장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당구장 사업을 한 적이 있었다. 남인수는 당구가 취미였고 500점을 치는 고단자였다.

남인수는 서울로 가면서 자형(손홍팔)에게 당구장 사업을 넘겼는데, 당시 관리를 맡았던 이홍두씨의 갖가지 증언을 통해 남인수의 본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남인수는 아버지 강영대와 어머니 장하방 사이에 태어났다. 어머니 장하방은 최씨와 사별하고 재혼한 것이다. 전 남편과 사이에 아들(최창도)과 두 딸을 두었는데, 황문평씨가 글에서 인용했던 최태원은 최창도의 아들이다. 최태원은 진양호아세아호텔의 첫 주인이기도 했다.

진주당구장을 이어받아 운영했던 손홍팔은 진주에서 변호사 활동을 했는데, 남인수와 아버지는 다르고 어머니는 같은 누나의 남편이었다.

강영대와 장하방 사이에는 남인수 이외에 형제를 두지 않았고, 강영대가 먼저 사망한 뒤 남인수의 어머니는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이 돌보았다고 한다. 피붙이가 없었던 남인수가 사망했을 때도 일처리를 최씨 가족들이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강영대의 제적부도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강인수’는 1962년 7월 27일 서울 충장로에서 사망했는데, 62년 7월 5일 ‘최정열’이라는 사람이 사망 신고를 해온 것으로 되어있다.

조심스럽게 남인수의 가족사를 파악해 온 이창식 회장은 “남인수 선생을 팔아 돈만 벌려고 생각하는 집단들이 있는 모양이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추모인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며, “가요계에서 잘못 알고 있는 선생에 대한 사실들을 제대로 알리는 일도 기념사업회가 해야 할 일이라서 가족사를 찾아 나서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또 “선생을 추모하는 일은 진주시민 전체가 나서서 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진주강씨 문중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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