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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만에 북녘 땅을 밟게되는 비전향 장기수 전창기(83) 씨는 북녘 땅에 남겨놓고 온 가족들을 만날 생각에 요 며칠 잠을 설쳤다.

전민자(57), 종욱(55), 종국(50), 용숙(48) 그리고 아내 윤순종(82)씨, 이들이 북녘 땅에서 전씨를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이다.

"우린 감옥 안에서 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드시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것이 이제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북송을 신청해 놓은 뒤 제일 먼저 학생들이 쓰는 볼펜을 사러 다녔다. 그를 기다리는 아들과 딸이 대부분 50을 훌쩍 넘어버렸기에 분명 손자, 손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가 손자, 손녀에 애착을 갖는데는 이유가 따로 있다.

노동당에서 일했던 전창기 씨는 자신이 생각하는 통일을 이루기 위해 평양에 가족을 남겨둔 채 1955년 남녘 땅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5달을 넘기지 못하고 연행되어 수감생활을 시작했다.

전씨의 고향은 본래 충남 천안이다. 하나 밖에 없는 전씨의 동생이 죽고, 부모님도 감옥에 있는 동안 돌아가셨다. 모두 합쳐 23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보내고 출소했을 때 그를 반겨줄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에는 우리 같은 사람들 데려다 밥 주고, 도와주면 국가보안법에 걸리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전북 전주에서 문병학이라는 학생이 나를 데려다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전씨는 처음에 문병학 씨를 믿지 못했다. 하지만 그를 만나고 나서 곧 함께 살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 사람이 그러더군요. 죽이면 죽, 밥이면 밥 같이 먹으면서 살자고, 통일되는 그날까지..."

하지만 3년이 지났는데도 통일이 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문씨는 결혼을 해서 딸아이까지 있으면서도 전망 좋고 큰방은 전씨에게 주고, 자신들은 좁은 방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냈다고 한다.

30대 초반의 젊은 두 부부를 보면서 이렇게 지내면 안되겠다 싶어 동료 장기수들과 상의해 거처를 지금의 전북 군산 돌베게 교회로 옮긴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처음 함께 살 때 두 살이었던 아이가 지금은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 아이가 어려서부터 전씨하고 지내왔기 때문에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까지 있으면서도 전씨를 자신의 친할아버지라고 생각하고 따른다는 것이다.

"그 아이의 친할아버지에게는 죄송스럽지만 이젠 내가 그 아이를 못 보면 보고싶어 미치겠어요."
전씨는 군산으로 거처를 옮긴 뒤에도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그 아이를 보러 간다.

"가족들끼리만 이산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남녘 땅에서 맺은 인연으로 저는 새로운 이산가족이 되는 겁니다. 하지만 머지 않아 통일이 돼서 북남 간에 철도가 복구되면 남녘에 있는 내 가족들을 찾아 다시 나타나겠습니다."

파란색 재킷과 파란색 넥타이 때문인지 나이에 비해 유난히 건강해 보이는 전씨의 목소리에는 어느새 힘이 들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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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좋아합니다. 술을 더 좋아합니다. 근데, 밥이나 술 없이는 살아도 사람 없이는 못 살겠습니다. 그래서 기자 하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