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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27일 오후 8시 20분] 27일 오후 7시 30분 현재 경찰은 한겨레신문사 앞에서 시위중인 고엽제 전우회원들을 강제 연행,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에 따라 오후 8시께 한겨레 사옥 주변에는 100여 명의 전우회 소속 시위대들이 남아 있는 상태이나 사실상 시위가 마무리된 상태다.

이에 앞서 한겨레신문사 5층 광고국에서 열렸던 한겨레와 전우회 대표들 간의 협상은 전우회쪽의 일방적인 욕설 등이 이어지며 분위기가 험악한 가운데 별다른 결론없이 끝났다.

한편, 27일 오후 8시 현재 한겨레 임원들은 사장실에 모여 이번 사태에 대한 향후 조처 등에 대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27일 오후 7시 15분] 27일 오후 7시 10분 현재 한겨레신문사 5층 광고국 사무실에서 고영재 '한겨레' 편집국장과 고엽제 전우회 양상규 회장을 포함한 8명의 대표단이 협상을 벌이고 있다.

한겨레쪽은 시위대 즉각 해산, 전우회쪽은 베트남전 관련 기사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7일 오후 7시 5분] 한겨레신문 6월28일자 초판은 대한민국 고엽제 후유의증 전우회의 한겨레신문사 항의 시위기사가 1면을 장식했다. 한겨레는 <'고엽제 전우회' 본사서 난동>이라는 기사를 사진과 함께 5단으로 실었다.

신문이 나오자 시위대는 이곳저곳에서 신문을 들고 읽었다. 자신들이 지금 벌이고 있는 행위가 1면을 장식하고 있는 것을 본 한 예비역 대위는 "논평할 만한 가치도 없는 기사"라고 주장했다. 그는 "왜 우리가 여기에 왔느냐. 원인 제공을 한 사람이 누구냐"며 흥분했다.

[27일 오후 7시] 오후 6시 45분 현재 제작을 마친 내일자(27일) 지방판 신문이 첫 수송용 트럭에 실리기 시작해, 오후 7시에 대구행 첫 신문 수송용 트럭이 한겨레신문사를 빠져나갔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경찰의 큰 충돌은 없었으며, 경찰은 시위대의 신문사 집입을 막으며 수송용 차량 통행 공간을 확보해놓은 상태이다.

[27일 오후 6시30분] 시위대는 "우리는 국가가 원해서 강제로 파병되었다"며 "베트남은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힘든 상황이었기에 살인자로 취급한다는 것은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

지금 보훈병원에서 달려왔다는 한 시위가담자는 바지를 올려 썩어 가는 다리를 보여주며 "정식 사과가 없으면 한겨레가 없어질 때까지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는 국가에 충성한 일등 공로자인데 이에 대한 대접이 소홀하다"며 "5·18 희생자들을 국가유공자로 만들면서 우리는 뭐냐. 앞뒤가 바뀌지 않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27일 오후 6시10분] 고엽제 전우회의 한겨레신문사 난입으로 '한겨레' 내일자(27일) 신문 제작에 차질을 빚고 있다.

27일 오후 6시가 약간 넘어서야 신문 인쇄에 들어가 가판(지방판) 제작이 30분 이상 늦어진 상태다. 또한 전우회원들이 윤전기와 연결된 콘솔박스(전원 장치)와 신문 운반용 콘베이어 벨트 2대를 파손시켜 신문 수송 등의 일정도 불가피하게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신문 이용기(33, 판매국 발송부) 씨는 "현재 비상 전력을 이용해 신문은 제작중이나 콘베이어 벨트를 수리중이어서 적어도 1시간 가량 늦게 신문이 수송 차량에 실릴 것"이라며 "그러나 신문이 제작된다고 해도 현재 수송 차량이 제대로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어서 가판 배달이 더욱 늦어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27일 오후 6시 현재 한겨레신문 사옥 안에 있는 한겨레 편집부 한 기자는 "현재 신문사 편집국에는 70-80명 가량이 있으며 외부로의 출입이 어려워 거의 갇혀 있는 상태"라며 "항의 표시는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겨레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는 시위가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으며 신문사 간부와 전우회 대표가 시위 수습을 위한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대한민국 고엽제 후유의증 전우회(회장 양상규) 소속 회원 2천여명은 27일 <한겨레>와 <한겨레21>에 실린 베트남전 관련 기사가 자신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한겨레신문사 사옥 안으로 난입, 집기를 부수는 등 폭력 시위를 벌였다.

다음은 이 사건과 관련한 <인터넷 한겨레>의 보도 내용 전문이다

대한민국 고엽제 후유의증 전우회(회장 양상규) 회원들이 27일 오후 한겨레신문사 사옥 안으로 난입해 컴퓨터 등 집기를 부수고 직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등 난동을 부렸다.

이 단체 회원 2400여명은 이날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앞에서 “'베트남 참전용사에 의한 베트남 양민학살' 보도가 전우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신문사 입구에서 종이를 쌓아놓고 불을 지르는가 하면 일부는 신문사 옆 전신주에 올라가 전원을 차단하는 등 신문제작을 방해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3시께부터 회사 진입을 시도해 4층 주차장에 붙은 민가의 담을 허문 뒤 승용차 2대를 전복시키고 4층에서 7층 편집국 창에 돌을 던져 유리창을 깨는 등 난동을 부렸다. 이들은 이어 각목과 지팡이 등을 휘두르며 경찰 저지선을 뚫고 8층 논설위원실과 5층 출판국 등으로 난입해 컴퓨터 등 집기를 부쉈다.

이들 가운데 20여명은 신문사 1층 발송장의 철제문을 완전히 파손시킨 뒤 난입해 주차돼있던 업무용 등 차량 10여대를 각목을 휘둘러 파손시키기도 했다.

또 다른 일부 회원은 4층 주차장에 주차돼 있던 개인용 차량 2대를 파손시킨 데 이어 돌멩이를 던져 4~5층 유리창 10여장을 부수는 등 사옥 곳곳에서 폭력을 휘둘렀다. 이들은 회사 정문 앞에서 직원들의 출입을 막아 신문 제작에 차질이 빚어졌으며, 일부 직원들을 막대기 등으로 때려 10여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또 이에 앞서 오후 1시께는 업무상 한겨레신문사에 들어오려던 한국통신 소속 직원 1명을 에워싸고 3분여 동안 집단구타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날 한겨레신문사 주위에 14개 중대 2240명의 경력을 배치했으나, 난입을 제지하지 못했다.

이들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현지 주민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인데도 한겨레신문사가 마치 참전용사들이 고의적으로 베트남 주민들을 학살한 것처럼 보도해 전우들의 인격을 매도했다”며 보도중지와 사과 및 배상을 요구했다.

이에 앞서 후유의증전우회는 지난 4월 한겨레신문사에 보낸 공문에서 “한국 군인이 베트남전에서 양민을 학살했다는 <한겨레21>의 `엄청난 일들, 34년만에 말한다'와 이를 함께 보도한 <한겨레>의 `베트남전 참전 중대장의 고백'등 일련의 베트남 관련 특집기사에 대해 "뚜렷한 물증 없이 구두진술에 의해 보도됨으로써 99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32만 월남참전 전우를 분노하게 하고 있다"며 사과문 게재와 정정보도를 요구해왔다.

<인터넷 한겨레>에 실린, 전우회 서면질의에 대한 한겨레신문사의 답변

베트남전에서 민간인들에 의한 살상행위는 일부 참전군인들에 의해 이뤄진 것입니다. 가족을 잃은 현지 피해자들의 증언이 베트남전 종전 24년만에 처음 나왔고, 살상행위에 참여한 참전군인들의 고백이 나온 상황입니다. <한겨레21>은 이 문제를 통해 베트남전 참전군인 또는 상이용사들 전체의 명예를 훼손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한겨레21>은 이 문제를 다루기 이전 월남전 참전 피해자들의 고통을 화보로 다룬 적이 있으며(96년6월13일자 '이 고통은 나눠야 한다'), 정부가 이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것을 보도(99년12월30일자 '참전군인들의 서러움과 분노)한 바도 있습니다. <한겨레21>은 베트남 민간인들의 피해와 아픔 뿐 아니라, 국내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고엽제 환자 및 전쟁불구자들의 구체적 실상도 곧 취재 보도할 계획입니다.

<한겨레21>은 참전군인들의 잔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이 문제를 보도한 것이 아닙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이 자신의 집권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한국의 젊은 청년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므로, 참전군인들 역시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한겨레21>이 이 문제를 보도한 것은 불행한 전쟁의 비극이 다시 되풀이돼선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1세기 평화시대로 가기 위해서 베트남전을 교훈으로 삼자는 것입니다.

질의1. 확실한 물적증거도 없이 참전자 개인의 허튼 소리를 진실로 보도하였는데 지역과 지명 및 기타학살 증거 자료를 제시하여 줄 것.

"<한겨레21>의 보도는 참전자들의 증언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현장전투를 지휘했던 한 중대장은 살상행위를 인정했습니다(<한겨레21>305호 참조). 또한 자기 중대에서 50여명의 민간인들을 집단사살했다는 해병 제1대대1중대1소대장들의 증언도 있었습니다(<한겨레21>306호 참조).

그들은 이 문제로 인해 귀국 후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사실이 보도되자 해병1중대 1소대 장교들과 사병들을 직접 조사한 해병 헌병대 조사계장의 증언(<한겨레21>310호 참조)까지 나온 상황입니다.

해병 헌병대 조사계장 역시 집단사살을 인정했고, 이 사건을 '베트콩의 소행'으로 조작한 것에 대해 3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30여년이 흐른 지금, 굳이 학살의 증거를 대야 한다면 참전군인들의 진술 밖에 없을 것입니다."

질의2. 본회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본인도 67년부터 16개월동안 청룡부대 소총소대에서 근무하다 수많은 작전을 치렀는데 작전 1개월 전부터 선무방송을 하여 모든 양민은 특정지역으로 피신하도록 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100명의 적군을 놓쳐도 1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군율 속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귀국하였는데, 만화 같은 이야기를 진실한 보도한 물적 증거를 제시하여 줄 것.

"여기서 '본인'이 누구신지는 모르겠으나 그 분이 그렇게 경험했다면 그것 역시 사실일 것입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참전군인 전체가 학살에 참여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저희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문제는 집단사살 행위를 경험한 참전군인도 분명히 있다는 것이며, <한겨레21>은 이를 보도한 것입니다.(<한겨레21>310호 참조)"

질의3. 한겨레21 주간지 등을 통해서도 수차에 걸쳐 한국군이 양민을 무참히 학살하였다고 보도하면서 당시 23세였다는 월남민의 손가락이 절단된 것을 사진으로 보도하였는데 집단학살을 했다면 어떻게 손가락이 절단되는가.

당시 베트콩으로 참전하여 부상당한 자의 말을 사실대로 보도한 내용은 대한민국의 국위는 물론 참전용사들을 인간사냥꾼으로 묘사하였는데 무엇으로 이런 기사를 사실화했는지 규명하여 줄 것.


"아마도 <한겨레21> 273호 46쪽에 보도된 응웬탄쭝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는 집단학살 현장에서 총을 맞았다고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략촌에서 나오다가 총을 맞았고, 베트콩인지 아닌지 심문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 기사의 목적은 베트남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기탄없이 들어보자는 데 있었습니다.

베트남에서 작전을 한 일부 한국군들이 베트콩이나 적 통치지역의 민간인들에게는 야수처럼 보일수도 있었겠지만, 사실은 사람이었듯, 상대방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도 한국군에 의해서 피해를 많이 당한 것이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나 베트남전 종전 이후 한번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인 적이 없었습니다. 한국과 베트남간의 진정한 화해를 위해 그들의 증언을 존중한 것입니다."

질의4. 사실적인 물적증거도 없이 허황된 영웅심에 정신병자 같은 말을 지껄이는 것을 사실인 양 확인 검증도 없이 보도하게 된 경위를 규명하게 해 줄 것.

"공식 질의서에 이런 식으로 질문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한겨레21>305호에 보도된 김기태씨를 말하는 듯한데, 그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해 66년부터 67년까지 베트남 쿠앙응아이 지역에서 해병2대대 7중대장을 역임했으며, 귀국 뒤 파월특수교육대 교관, 김포 보안부대장, 해군첩보부대장을 거쳐 82년 국방부 대간첩본부 정보과장(대령)으로 전역했습니다. 그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며, 단지 그가 경험한 극한의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2000년 6월16일

한겨레신문사 출판국 한겨레2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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