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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7일 광주 민주항쟁 전야제에 있었던 이른바 <386세대 정치인들의 술자리 파문>은 이들 젊은 세대들의 정치생명에 적지 않은 타격과 흠집을 내면서 한국사회를 술렁거리게 했다.

이들 젊은 정치인들에게 건 기대가 워낙 컸고, 특히 이들의 정치적 발판의 역사적 근원이 광주민주항쟁이라는 점에서 엄숙하고 경건하게 지내야 할 광주 항쟁 전야제를 그런 식으로 지냈다는 점이 일반시민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자아냈다고 하겠다.

개별적인 이유와 상황 여하를 떠나서 일반대중들의 기대를 한 몸에 모으고 있던 이들 젊은 정치인들이 광주 전야제에 보다 진지하고 깨어 있는 자세로 임하지 않고 술자리를 가졌다는 자체는 다른 변명의 여지없이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는 누가 이를 문제삼건 아니건 간에 스스로에게 자문하면서 자신들의 정신이 혹 해이해진 점은 없는지 살펴보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이번 사태의 정치적 곡절이 향후에 큰 힘이 될 것이며 민족의 앞날을 위해 보다 견고하고 진지한 정치적 역량을 갖는 일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번의 이 사건이 일어나고 전개된 추이를 보면서 우리는 다음의 점들을 주목하게 된다. 첫째, 386 세대라고 불리우는 젊은 정치인들의 움직임에 한국사회가 매우 민감해졌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들의 움직임은 한국사회의 현재와 미래에 중대한 비중을 갖는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이들 젊은 세대들은 보다 진중하게 자신들의 행동을 결정해나가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이는 이들이 보다 성숙한 정치적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치루어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이들의 정치적 성장에 타격을 주려는 세력의 존재이다. "386 세대의 도덕성 위기"라고까지 사태를 확대 해석하면서 이들의 정치생명이 이로써 중대한 파산에 이른 듯한 쪽으로 몰고 가려는 움직임이 있는 점은 이들 젊은 정치인들이 앞으로 감당해야 할 도전이 얼마나 극심할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마치 이들 젊은 정치인들이 "희대의 위선자"들인양 비난하고 매도하고 있는 상황은 이들의 도전이 결과할 기득권에 대한 위협을 저지하고 이들의 기세를 꺽기 위한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그나마 있는 싹을 잘라버리겠다는 식의 이러한 움직임에 한국사회가 이런 식으로 휘말려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이자 한국사회의 자해(自害)행위이다.

셋째, 한국사회의 집단적 매도 메카니즘이다. 사건의 전후좌우를 자세히 살펴보거나, 혹 전달과정에 문제가 없었는가 또는 다른 상황적 불가피성이 있지는 않았는지 고려해보는 여지가 없다. 일단 "이거다"라고 찍으면 3족을 멸했던 왕따의 역량이 최대한 발휘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태의 해명은 구차한 변명으로 여겨진다. 이것은 본의 아니게 억울한 사람들을 양산한다. 가령, "저 자는 빨갱이다"라고 찍으면 움쩍달싹할 수 없이 그렇게 당하고 마는 시대가 있었다.

누군가가 그렇게 지목되면 그 지목의 표적이 되는 상황에서 빠져 나오는 것은 어렵다. 그러한 과정에서 한국사회는 무수한 인재들을 잃었다. 그리고 이러한 집단적 매도의 분위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들의 교묘한 농락에 의해 한국사회는 그때 그때마다 일시에 정치적 히스테리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번 사건의 보도만 보더라도 술자리를 만든 사람은 따로 있는데 그는 전혀 문제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며 함께 한 선배 정치인들도 비판의 표적에서 벗어나 있다. 즉 보도의 밑바닥에 일정한 의도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도에 따라 기득권 세력의 발판을 위협하게 될 이들 젊은 정치인들의 길들이기가 시작되고 있다고 하겠다. 개혁세력의 도덕성을 제물로 하여 개혁의 칼 끝을 무디게 만들고 이들을 대중적 불신의 대상으로 만들어 기득권 질서를 방어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이들 젊은 정치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이 되었을 것이며, 앞으로 어떤 자세로 정치적 덫에 걸리지 않도록 할 것인가에 대하여 크게 배우게 했을 것이다.

나사렛 예수가 자신의 제자들을 세상에 내보내면서 뱀과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수를 지향하라는 가르침을 주었던 것과 다를 바 없이 이들 젊은 정치인들이 역사적 순수와 열정을 잃지 말고 그와 함께 악한 세력들의 올무에 걸리지 않도록 지혜롭게 성장하기를 바란다. 보다 겸허하고 보다 진지하며 보다 총명해져야 할 것이다.

실로 작은 실수와 잘못을 빌미로 이들의 정치적 장래와 그것이 가져올 민족사적 의미를 깍아 내리고 가로막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이들이 발휘하게 될 힘을 미리부터 자르고 보자는 세력의 의도에 끌려 들어가는 일이며, 그로써 그나마의 정치적 희망을 분질러 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광주항쟁의 과정에서 침묵했던 언론들, 그리고 오늘날 그 광주항쟁의 진정한 의미는 외면하고 있던 기존의 보수언론들이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면서 광주항쟁이 낳은 아들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다.

이들이 다소간의 잘못과 실수가 있더라도 이들을 질타중에도 끝까지 감싸고 격려하며 새롭게 길러나가도록 하는 것은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이다. 자랄 만하면 꺾어놓고 짓밟아버리는 우리 역사의 그 비극적 습성이 재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집단 매도의 메카니즘이 종교적 정죄주의와 결합하여 개혁세력을 공격의 목표로 삼을 때, 그것은 자신들을 도덕적 순결성을 가진 자들로 포장하려는 기득권 세력의 전략임을 우리는 혼란없이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당사자들의 회개와, 이들을 제물로 삼는 희생제의 논리는 그 정치적 의도에 있어서 분명히 다르다는 점을 우리는 직시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주간내일신문(5월30일자)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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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기자는 경희대 교수를 역임, 현재 조선학, 생태문명, 정치윤리, 세계문명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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