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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배우들이 부자간에도 비슷하게 생겼었지만, 옛날에는 아버지 따로 아들 따로 전혀 닮지 않은 배우들이 나왔었다.'
40여년전 '피아골'을 봤었다는 김재국(65,무직)씨는 당시 영화들을 생생하게 기억해 냈다.

제1회 전주 국제영화제의 첫 번째 시민 프로그램은 황금기 한국영화의 명배우 회고전,
그 첫 영화가 바로 흑백영화 '피아골'이다.

흔히 한국영화의 최고의 황금기로 불려지는 50년대 중반에서 60년대,
이 시기에 영화는 서민들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대중매체로 자리를 잡았었다.

"촌에서 여름에 마을에 무대가 설치되면 몇 십리에서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구경했다. 꼭 지금 여기서 하는 것 마냥 그때도 그랬다."고 김씨가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피아골'은 당시 전라북도 경찰국 홍보실에 근무하던 김종환씨가 빨치산 토벌 실제사례를 바탕으로 쓴 시나리오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다.

이 영화가 빨치산의 생활을 리얼하게 다루었다는 이유로 개봉당시 검열에 문제가 생겨 상영금지 되었다가 결론부분에 여주인공이 자유의 품에 안긴다는 내용을 집어넣고 태극기와 오버랩 시키는 장면을 추가하면서 3개월만에 상영이 허가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이처럼 수난을 받아야 할 부분은 영화 어디에도 없었다. 전쟁 후에도 지리산에 남아 있어야 했던 빨치산들을 영화 '피아골'에서는 성욕, 식욕 등의 본능에 허물어져가는 포악한 '인간상'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이 영화를 봤던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빨치산이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가를 알기 전에 얼마나 나쁜 사람들이었는가를 알았다고 이야기한다.

'피아골'을 보기 전에는 빨치산을 몰랐다는 김씨는 "당시 '피아골'을 보고 나서야 빨치산이라고 하는 것이 약탈하고 사람 죽이는 나쁜 부대라는 것을 알았다."며 "지금 다시 보니 새삼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가족들과 함께 영화제 구경하러 나왔다가 낯익은 영화가 보여 발길을 멈췄다."면서도 "자식들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영화는 요즘 얘들하고는 안 맞는 것 같다."고 말하고는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야외 상영장을 떠났다.

김아무개(22,학생)씨는 영화제 측의 기획의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며
"상영금지까지 된 영화라고 해서 반공영화가 아니라 당시 수준에서 의식이 깨어 있는 영화가 아닐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보러 왔는데 소재만 빨치산일 뿐 내용은 여느 반공영화와 다를 게 없어서 볼 가치를 못 느꼈다." 고 영화를 보던 중간에 자리를 떠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영화상영 내내 지나가다 새롭게 자리를 잡고 앉는 시민들만큼이나 도중에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시민들이 많았다.

'피아골'은 전형적인 반공영화의 형식에서만 벗어났을 뿐 역시 또 다른 반공영화였다.

하지만 내용적인 면을 떠나서 생각한다면 지리산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전주에서 만들어진 대표적인 영화 중 하나이고, 특히 허장강을 비롯한 당시 잘 알려진 배우들이 출연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도 나이 지긋한 아버지, 어머니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병석(47,농사)씨는 "그 때는 '이동 홍보관'이 다니면서 촌에서 무료로 영화를 보여주었다."며 ''어렸을 때 보지는 못하고 말로만 들었던 '피아골'을 오늘 보게 되어서 감회가 새로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아주머니는 "야외 상영장이라서 소리가 잘 안 들렸지만 옛날 생각난다."고 말했다.

한국영화회고전은 30일 '살인마', 5월 1일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외 초창기 한국영화', 2일 '삼등과장', 3일 '마부'가 매일 밤 8시에 덕진공원내 야외상영장에서 무료로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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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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