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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만나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첫 번째 만남은 3년전 이뤄졌었다. 나는 환자였고, 그는 맘씨 착한 침술사였다. 그리고 오늘, 그와 나는 기자와 취재원으로 다시 만났다.

한동안 오마이뉴스 탑을 장식했던 '남북정상회담 개최'기사와 관련하여 다양한 반응들이 터져 나오는걸 보면서 난 우리보다 더 절실한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분단의 직접적인 피해자들, 분단을 온몸으로 거부했던 이들.
이들에게 6월 남북정상회담은 어떤 의미일까.

사람들은 그를 '비전향 장기수'라고 부른다.
김영태, 나이 71세. 평양북도가 고향인 그는 1954년 한국전쟁에 인민군으로 참가하여 포로가 된 후 이제껏 남한에서 살고 있다. 물론 감옥과 감옥밖을 오가며 말이다.

그는 변함없이 광주 산수동 빛고을 탕제원에서 환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길 염원하고 있는 그에게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 소식에 대한 소감부터 물었다.

미리 당부하고 싶은 것은 그는 '남한 사람' 아닌 '북한 사람'이란 점이다.

"반갑지만 덤덤하다. 지난 94년에도 YS와 이북의 수령님은 정상회담을 하기로 한 적이 있었다.

(다소 흥분하기 시작하며)수령님은 그를 영접하기 위한 장소를 확인하다가 돌아가셨는데 YS는 조문은 커녕 조문하라는 학생들을 다잡아 가뒀다. 뭐라고 말할 가치도 없는 인간이다. 한마디로 의리도 없는 인간이다.

DJ는 YS와는 조금은 다르겠다는 생각에 반갑다. 그저 하루빨리 고향으로 가고 싶은 맘 뿐이다."

- YS에 대한 실망이 매우 컸던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그에게 모욕적인 말이 되겠지만 그는 대통령될 자격이 없는 인물이다. 기회가 좋지 않았는가? 세계각국에서 조문을 했다는데 한국과 대만만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사람은 안갔더라도 YS는 갔어야 옳다. 그리고 자기만 안가면 됐지 재야학생들을 다 가뒀다. 민족적 견지에서 그는 통일할 의사도 없는 인물이었다."

_ 남북정상회담 개최의 의미를 나름대로 정리한다면.

"당사자가 YS라면 아마 장군님도 안만났을 것이다. DJ이니까 만나는 것 같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한반도에 총부리를 겨누는 상황에서 남북의 지도자들이 민족의 문제를 가지고 얘기를 시작했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제 시작했으니 민족의 분열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가 오갈 것이다."

- 남북정상회담에서 주요한 의제로 무엇이 다뤄졌으면 좋겠는가?

"(초반의 흥분을 진정하는 긴 한숨부터 내뱉었다)통일이죠. 갑자기 통일할 순 없는 일이기 때문에 서로 내놓은 통일방안에 대해서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이산가족을 포함한 호상교류에 대한 얘기가 오갔으면 한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가장 크게 가로막고 서있는 것이 국가보안법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북에 갔다와서 있는 그대로를 말하면 그는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 고무찬양죄다.

국가보안법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강요하는 매우 나쁜 법이다.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두고 반국가단체인 이북과 통일을 하자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 현재 광주지역에만 총 6명의 비전향 장기수가 있다. 이들 대부분이 이북이 고향이고 또 송환을 원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송환문제 진전에 기여할 것으로 보는가?

"기대가 크다. (김정일)장군님도 당연히 회담에서 거론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남측에서는 보내달라고 하기 전에 보내줬어야 되지 않는가?

국제포로협정도 위반이고, 정전협정도 위반이다. 포로의 몸을 감옥에 가둘 수 있는가. 포로에게 전향 안한다고 고문하고, 나온 사람을 사회안전법으로 또 가두고 민주주의국가라고 하면서 그럴 수 있는가."

- 어떤 식으로든 송환이 결정되면 북으로 돌아갈 것인가?

"당연히 간다.(그리고 그의 눈에 이슬이 맺히더니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상정이다. 젊음을 감옥에서 다 보내고 이렇게 늙어 나와서 세상을 산다는 것이 참.... 어떻게 생활이 되겠나?

당장 내일이라도 내가 어떻게 장담할 수 없는 늙은 몸이다. 사회체제로 보더라도 난 자본주의에서 살고 싶지 않다"

- 이북엔 누가 살고 있나?

"아들하고 며느리, 손자 셋이 있고 동생 둘이 있다. 누님이 한 분 계셨는데 작년에 돌아가셨다. (다시 그의 눈이 붉어졌다) 영태 오면 보고 죽겠다고 하셨다는데....작년에.... 그만...."

- 송환문제와 관련해서 남한 정부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 오랫동안 옥고를 치르고 나왔고, 나이들이 70을 넘지 않았는가. 오늘 내일 하는 사람들이 북에 가면 뭘하고 여기선 뭘 하겠는가."

- 이북에 돌아가게 되면 제일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

"이북의 시책이 65세 이상이면 노동을 하지 않는 거로 알고 있다. 가면 지도자 동지는 당연히 만날 것이고.... 일가 친척들을 제일 만나고 싶다.

그리고 이북이 고향이어도 금강산, 백두산에도 가보지 못했다. 거기도 가보고 싶다. 사실 여기 살면서도 제주도 한라산 한번 가보지 못했다. 기독교 인권위에서 계약했는데 경찰에서 못가게 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남북정상회담 개최 발표 시기를 둘러싼 세간의 논란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적반하장이다. 과거 정권들은 선거만 있으면 이북을 자극하는 행동들을 경계선에서 수없이 해댔다. 그러면 이북이 가만 있겠나? 그렇게 공포분위기 조성해서 선거를 치렀다.

그와 정반대다. 김대중 정권은 총질보다 평화를 택했다. 그것이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남에 살면서도 주민등록증이 발급되지 않는 사람.
이남에 살면서도 이북의 체제, 주의, 권력을 옹호하는 사람.
그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가서 혈육의 맨 살에 볼을 부비고파 한다.

'빨갱이'이라면서 계속 그를 이 땅에 묶어 두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남북 정상회담 개최 소식이 귀에 쟁쟁한 날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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